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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The Bankers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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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Feb 25. 2022

학군지 갭 투자?

소설 The Bankers_ESG Bond


‘카톡’     


부장님, 제가 PPT 작업 마무리할게요.
주말인데 아이들과 보내세요.
저는 어차피 출근해야 해서요.    



이런 고마운 막내를 보았나. 최 대리가 본인을 희생하여 나의 주말을 지켜주겠다고 아침부터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월요일에 출근하면 최 대리의 점심도 간식도 모두 사 주겠노라 다짐하 아이와 놀이터로 향했다. 아이는 요즘 서서 그네 타기에 재미를 붙였다. 이번에는 시소를 타자고 해서 한참을 기우뚱기우뚱. 그다음에는 미끄럼틀을 타겠다고 뛰어갔다. 갑자기 근처에서 웅성웅성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설명을 늘어놓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아시다시피, 여기는 직주근접이 강점이죠. 버스정류장이든 지하철역이든 아주 가까운 편은 아니지만, 여의도와 광화문 쪽 출퇴근이 모두 편해요. 10년 안 된 아파트여서 조경도 잘 되어 있고 놀이터도 깔끔하구요. 신혼부부나 아이가 어린 맞벌이 부부가 살기에 좋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직주근접. 살다 보니 나무와 놀이터가 많고 소아과와 마트도 잘 되어 있더라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아이가 미끄럼틀 위에서 나를 불렀다.


     

“아빠! 내려간다! 잘 보고 있어!”     



아이의 목소리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길을 재촉했다. 그 순간, 나는 눈을 의심했다.


     

‘박 이사…? 인사팀 황 대리…?’     



부동산 중개인이 신혼부부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여자 친구도 없는 줄 알았던 박 이사가 사내연애를?

아. 나는 또 월요일이 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오늘 북빌딩 괜찮은데? 역시 ESG Bond에 관심이 많긴 많아.”

의자를 잔뜩 뒤로 젖히고 다리를 꼰 채 모니터를 보고 있던 김 전무가 말했다.

“Revision Call 때 미국채에 55bp 정도로 낮출 수 있을 것 같아요.”

박 이사가 최초제시금리에서 35bp를 빼고 불렀다.

“그 정도 되겠어. 8억 달러 모집에 벌써 15억 달러 정도 주문을 확보했으니…. 이따가 미국에서도 오픈하면 상당히 괜찮겠는걸. 얘들아 새벽 한 시 전에 집에 갈 수도 있겠다. 그럼 계속 모니터링해라. 나는 회의 간다.”

김 전무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갔다.     



“ESG Bond 심사 준비에 한 달 동안 공들인 것을 생각하면, 아이고, 전 ESG 다시는 하기 싫어요.”

기특한 최 대리가 엑셀 화면과 씨름하며 말했다. 심사 준비를 보조하느라 최 대리의 일이 많았다. 최 대리의 책상은 언제나 서류로 뒤덮여있다. 저 속에서 마우스가 움직이는 것이 신기하다. 최 대리는 슬리퍼를 벗고 발을 까딱이고 있었다.



“발행사는 ESG로 인정받고 싶어 하고, 심사기관은 깐깐하게 평가하고. 우리만 중간에서 새우 등 터지는 거지. 강 부장과 최 대리가 고생 많았어.”

김 전무의 지령대로 투자자 모집 현황을 주시하던 박 이사가 한마디 해 주었다.


     

그와 인사팀 황 대리의 뒷모습을 떠올리고 있던 나는 황급히 대답했다.

“ESG가 기업의 스펙처럼 자리 잡는 느낌이에요. 이번에는 Green과 Social에 집중해서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올해는 ESG bond가 더 많아지겠어요.”


     

모니터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던 박 이사가 갑자기 의자를 돌리며 나를 불렀다.

“참, 최 대리가 그러는데 강 부장이 엑셀의 신이라며? 이것 좀 봐줄래?”


 

먼지가 미끄럼틀 타듯 사라지는 박 이사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다행히 그의 고민은 금방 해결해 줄 수 있었다. 자리로 돌아오려는 데 예전에도 본 적 있었던 ‘학군지도’가 구석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어보았다.


     

“저 책 어때요?”

“집 사기 전에 한번 보라고 누가 추천하더라고. 근데 책에서 나오는 동네는 벌써 엄청 올랐어. 미리 생각했으면 좋았겠지. 아, 강 부장은 애들이 있어서 학군에 관심이 많겠네. 필요하면 가져가.”

“아직은 어려서요. 그런데 집 사시게요?”

집 보러 다니는 것 같더라는 말은 꿀꺽 삼킨 채 서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나도 나이가 나이잖아. 더는 부모님 집에 얹혀살 수 없서 말이야. 대선 이후에 부동산 시장과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좀 보려고. 참, 강 부장. 혹시 지금 시간 있으면 나랑 잠깐 얘기 좀 할까?”


     




박 이사가 업무 시간에 자리를 비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박 이사는 동그란 안경테를 위로 슬쩍 올리며 방문이 잘 닫혔는지 확인한 후에 간식 테이블 옆에 앉았다. 나는 정수기에서 물을 한잔 받아 들고 그의 맞은편으로 갔다.



“사실 결혼 날짜를 잡았거든. 석 달 뒤야.”

“네??”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말해줄지는 몰랐다. 나는 최대한 놀란 척했다.


     

“인사팀 황 대리. 본 적 있지?”

“아 네. 축하드립니다.”

“고마워. 그동안 비밀 연애한다고 얼마나 머리 굴렸나 몰라. 그래도 우리 팀은 사무실을 따로 써서 눈을 피하기가 쉬웠어.”

“대단하세요. 아무도 모르는 것 같던데.”

“나이 차가 꽤 나잖아. 안 그래도 사내연애는 입방아에 오르기 쉬운데 나이 차까지 들먹일 것 같아서.”


     

아마도 띠동갑쯤 될 것이다. 새삼 그가 진정한 위너로 보였다.     



“2년쯤 됐어. 황 대리가 입사하자마자 사귀기 시작했거든. 첫눈에 반해서 매일 저녁에 소고기 사 주며 따라다녔어. 근데 강 부장아. 결혼은 원래 이렇게 복잡하냐?”


    

박 이사가 셔츠 소매를 둘둘 말아 올렸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일 얘기를 꺼낼 때 보다 미간의 주름이 더 진하게 잡혔다. 과묵한 워킹머신은 아니었구나.


     

“음…. 글쎄요. 무슨 일 있으세요?”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황 대리 집이 좀 힘들어. 황 대리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일을 그만두신 지 다섯 해 정도 됐어. 황 대리 월급으로 생활하더라고.”     



아버지가 아파서 일을 그만두면 결혼의 결격 사유가 되는 것일까. 내 아버지도 만약 결혼 전에 이렇게 되었다면 아내와의 결혼이 힘들었을까. 씁쓸했다.


    

“이사님이 잘 버시잖아요. 많이 모으셨을 것 같은데.”

“강 부장 그거 알아? 혼자 사는 남자는 돈을 못 모아. 난 부모님 집에 얹혀살긴 하지만 그 돈 다 어디 갔나 몰라.  카이엔만 내 곁에 남았어. 암튼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고.”

“그럼요?”



“황 대리 남동생이 하나 있어. 어린 게 변변찮은 직업은 없고 상습 도박꾼이야. 요새는 휴대폰으로도 쉽게 도박 하나 봐. 처음에는 100만 원, 200만 원 빚지고 그랬대. 그러다가 제2금융권에 손 벌리고, 사채에도 발을 들여서 2000만 원, 3000만 원씩 단위가 커지더라고. 그렇게 돈 빌리기가 쉬운지 참나. 황 대리 부모님께서 혼내기도 하고 울면서 부탁해도 다 안되나 봐. 결국, 황 대리 앞으로 빚이 돌아와. 이걸 어쩌다가 우리 부모님이 알게 되었어.”

“아이고 어쩌다가.”

“응…. 같이 살면 나한테도 평생 짐이 될 거라고, 황 대리가 동생이랑 인연을 끊지 않는 한 결혼은 안 된다고 난리야. 맞는 말 같기도 한데…. 결혼하면 처남이 중요해? 강 부장도 처남 있어?”


    

한 해에 많아야 다섯 번 정도 보는 처남의 얼굴이 생각났다. 아내와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막내여서 그런가 아직도 중학생 티를 못 벗은 것 같은 처남. 가족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것인지 걱정을 한 몸에 받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정작 본인은 별생각 없이 편안하게 사는 듯 보이는 해맑은 청춘이다.


      

“근데 황 대리네도 나를 좋아하지는 않아.”

“음…. 왜 그러실까요?”

“황 대리가 머리 벗겨진 나이 많은 아저씨에게 낚였다는 거지. 딸이 아깝다는 거야. 그리고 이번에 우리 누나 스토리도 알게 되었거든.”

“아. 누나 있으세요?”



“몰랐구나. 누나는 여자가 좋대. 돈은 잘 벌어. 여자친구랑 같이 산 지 6년쯤 되었어. 우리나라의 모든 제도가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구성한 가족 위주로 되어있다고 불만이 많아. 대출도 어렵고 뭘 하려고 해도 다 안된다면서. 그래도 둘이 행복하게 잘 지내. 부모님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하셨지만 그래도 인정은 했어. 어쩌겠어. 둘 다 이 나이 먹도록 손주 하나 안겨주지 않고 한심하게 산다며 한숨 쉬지만 말이야.”

“아 네….”

“황 대리 부모님은 우리 누나가 마음에 안 드나 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황 대리와 나는 꽤 잘 맞아. 왜, 전에 강 부장이 그랬잖아. 강 부장네는 둘이 비슷하다고. 우리도 그런 것 같아. 근데 양가에서 왜 이렇게들 난리인지. 아직 상견례도 못하고 복잡하다.”


     

하고 싶은 말이 이렇게 많아서 그동안 어떻게 참았을까 싶었다. 박 이사는 나의 의견을 묻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집 말이야. 황 대리네 사정이 저렇다 보니 집이나 가구 그냥 내가 다 해. 이 부분도 우리 부모님이 못마땅해하셔. 그래도 내 나이가 이러니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알아서 하라는 분위기야. 근데 서울 아파트 왜 이렇게 비싸냐? 진작에 사 둘 걸 그랬어. 집 사기 좋은 시절 다 놓치고 이게 뭔가 싶어. 참, 나 강 부장네 아파트도 가봤어.”

“연락하시지 그러셨어요.”

“연락은 무슨. 좋더라.”

매달 대출금 갚는다고…. 암튼 애들 커가니 평수도 넓히고 싶은데 엄두가 안 납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만요.”     

그러게 말이야.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몰라. 예전 같으면 강 부장도 강남 건너가서 살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어쨌든 집 때문에 나도 고민이 생겼어.”



“어떤…?”

“황 대리가 갑자기 학군지에 갭 투자하고 싼 데 찾아서 전세나 월세로 살자는 거야. 재건축 앞둔 아파트는 전세가 싸다면서? 학군지가 더 많이 오를 거고, 애 낳고 돈 좀 모으면 들어가서 키우고 싶대. 나는 이런 생각을 안 해 봤었거든. 강 부장은 어떻게 생각해?”

“음…. 제가 부동산 전문가는 아니어서요. 미래는 알 수 없기도 하구요.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학군지 아파트는 많이 비쌀 텐데요?”

“맞아. 괜찮은 정도 전세 끼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학군지는 나홀로도 비싸더라. 요즘 대출도 어렵고 부모님께 손 벌릴 형편은 안되거든. 강 부장이 둘 키우니까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어.”


     

어려운 문제였다.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결정이 달라질 것이고, 그 결정이 미래의 자산가치뿐 아니라 아이들의 장래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니까. 사실 아내와 나는 둘 다 학군지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아내는 외곽으로 나가 마당 있는 ‘Green’한 주택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학원보다는 텃밭에서 애들과 상추와 오이를 심고 비 오는 날 달팽이를 구경하 사는 삶이 더 ‘지속가능한’ 방식 아니겠냐며 웃었다. 아니지, 초보 엄마의 객기야, 라며 자아성찰을 하다가 갑자기 나의 출퇴근 때문이라고 핑계를 바꿨다. 학군지…. 애들이 조금 더 크면 우리의 생각이 바뀔까?


     

“그 문제는 황 대리와 잘 상의해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아내는 지금까지는 저의 출퇴근이 우선순위라고 했어요. 아이들에게는 놀이터가 중요하구요.”

“그래? 의견 고마워. 그리고 참, 부탁이 있어.”

“무슨…?”

“강 부장 아이들에게 화동을 부탁해도 될까? 물론 코로나 상황 봐서, 애들 컨디션 봐서 취소해도 괜찮아. 내 친구 애들은 너무 컸더라. 강 부장 책상 위에 있는 사진 보니까 부럽던걸. 잘 생각해보고 알려줘. 부탁해.”  


   

아내에게 물어보겠다고 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책상 위의 아이들이 꽃밭에서 웃고 있었다. 박 이사는 다음 달 정도에 청첩장을 돌릴 테니 그때까지 비밀을 지켜달라고 했다. 그나저나 저렇게 일하면서 도대체 언제 연애를 했을까? 아니다. 연애하기 위해서 사무실에 그렇게 남아있었나? 어쨌든 박 이사가 드디어 결혼한다니, 우리 최 대리가 한숨 돌리겠구나.


     

화동이라.

다준이가 뒤뚱뒤뚱 걸음마하며 들어갈 생각을 하니 벌써 웃음이 났다.

다윤이가 드레스를 입은 모습은….

안 된다. 너는 아빠 딸이다.




본 소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연재 예정입니다.

본 소설은 허구의 인물과 사건, 배경을 담고 있습니다.

사진은 Pexels에서 검색하여 사용하였습니다.

북빌딩(Book-Building)은 투자자 모집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발행사는 채권 발행을 공표(Deal announced)한 뒤 시장 상황과 시장 가격(유통금리)을 고려한 채권의 최초 금리(Initial Guidance)를 제시합니다. 금리가 적절하다고 여긴 투자자들은 동일한 금리로 주문(Book)을 넣습니다. 주문이 쌓여 발행예정액을 채우면 북빌딩이 완료됩니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의 주문이 많을 경우 한 두 차례 금리를 낮출 수 있습니다.     
- 매일경제의 2013년 4월 22일 기사, [수요예측 모태 '북빌딩'이란]에서 참고하였습니다.

ESG Bond는 발행자금이 ESG(Environment·Social·Government·환경·사회·지배구조) 분야에 사용되는 채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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