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1)
일요일 아침. 우리는 슬슬 여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 독일로 돌아갈 준비를 하였다. 우리는 돌아가는 것도 프랑크푸르트에서 돌아가게 일정을 짜 놓았기 때문이다. 여행도 정점을 맞이하고 슬슬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여행을 비행기 삯을 아끼기 위해 50일 이상씩 하는 경우가 있다. 대단한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혼자서 50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베를린은 강인한 게르만 민족의 정신이 그대로 녹아있는 도시다. 도시 규모도 여타 도시에 비해 매우 거대했고, 건축물 하나하나 웅장하기 짝이 없었다. 오스트리아의 빈이 검소하면서도 세련되었다면, 베를린은 검소하면서 웅장했다.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차이가 이것일까.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는 처음부터 거대한 제국인 반면 베를린을 중심으로 하는 프로이센은 작은 소국에서 독일 북부를 통일시켜가는 대기만성형 제국이다. 그러한 차이가 건물에도 드러나는 것 같았다.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역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여장을 풀었다. 메이닝거 호스텔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크라쿠프에서 만났던 대원외고 학생을 만날 수 있었다. 베를린 구경을 끝내고 학문의 도시, 하이델베르크로 떠난다고 한다. 우리는 더운데 아이스크림이라도 먹고 가라고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고3에 유럽여행이라니 크게 될 놈이라고 생각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베를린 장벽 박물관, 체크포인트 찰리, 브란덴부르크 문 등 독일 분단과 관련된 유적을 찾아 다녔다. 체크포인트 찰리에서는 구소련의 비자도 찍어주고 있었다. 나는 2유로를 주고 그 비자를 찍고 말았다.
이후 종범이는 앞서 언급한 브리쉘 방화여인이 해놨다는 낙서를 찾기 위해 장벽미술관으로 가자고 법석을 떨 었다. 아오 나는 박물관의 섬에 가고 싶었지만 콩깍지가 쓰인 종범이를 위하는 마음에 장벽미술관에서 2시간동안 그 낙서를 같이 찾아주었다. 장벽미술관은 아직 남아있던 장벽을 그대로 남겨두고 각국의 페인터들이 그곳에 그림을 그려놓은 곳을 이른다. 빈곳에는 누구나 낙서를 할수 있게 되어있었다. 우리는 열심히 찾았지만 태극기 낙서는 찾을 수가 없었고, 해가 지기에 우리는 메이닝거로 돌아오기로 결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