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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사이 May 02. 2024

도시락 이야기 3  

시부모님의 반찬 도시락. 의무와 마음


시부모님의 반찬 도시락


시댁과는 1시간 정도의 거리에 살았다.

시부모님들이 연로해지시니 집 근처로 이사를 하시길 원했지만 두 분은 필요 없다시며 거절하셨다.  

그러나 상황은 순식간에 변했다.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전 수년을 면역력 저하로 인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고, 어머님은 지칠 대로 지치셨다.  


나는 반찬 도시락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버님께서 좋아하시던 곰국을 끓였다.

“파는 것처럼 진한데 깔끔하고 고소해서 맛있다”라고 아버님은 늘 칭찬을 하셨다.  

우족과 도가니, 사골을 번갈아 고아 끓였는데 고기는 사태와 양지, 스지(힘줄)를 넣었다.

압력솥을 사용하지 않으니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다. 밤새 끓이는 장작불 곰탕처럼..

국을 차게 식혀 굳어진 기름을 걷어내고, 한 끼 분량씩 국물과 고기를 골고루 넣고 지퍼백에 담아 냉동을 했다.

파도 송송 썰어 알맞은 양을 챙기고, 고기를 찍어먹으면 입맛이 도는 새콤한 간장도 만들었다.

봄철에 담근 마늘장아찌를 좋아하셔서 그것도 함께 챙겼다.  

항상 5월이면 마늘 한 접(통마늘 100개)을 까서 만드는데

 “아삭아삭하니 간도 딱 맞고, 참 맛 좋다”라고 정확한 매력포인트를 말씀하시며 칭찬해 주셨다.

아버님은 내 음식을 참 맛있게 드셨고, 칭찬을 해주셨다. 그러니 자꾸만 해드리고 싶었다.


두 분은 성격만큼이나 다른 식성을 가지셨다. 어머님의 반찬은 생선과 기름질 한 것을 좋아하시는데

특히 좋아하시는 녹두전을 좋아하시니 부치기도 하고 사기도 하면서 준비했다.  

오가는 거리가 멀어 일주일치씩 해가지고 갔다.

이 시기가 힘들게 느껴졌고, 갈등이 많았지만 먼 거리를 허둥지둥 길 위를 달렸던 남편도 고생을 많이 했다.

두 분의 건강이 안 좋으시니 외식도 못하고 우리 집으로 오시지도 못하니 모든 행사는 아버님댁에서 하게 되었다.

이 무렵의 나는 거의 케이터링의 고수가 되어가고 있었다.


코로나가 심했던 때에 시아버님이 돌아가셨고, 장례식도 조용하게 가까운 가족들과 치렀다.

코로나 시대의 장례식은 남은 가족들의 몸이 덜 힘들었고, 비용도 적게 들었으며 조용히 아버님에 대한 생각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마지막 가시는 길을 너무 외롭고 적적하게 보내드린 것 같아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 만나 뵌 날이 선명한데 돌아가셨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금방 49일째가 되었다.

49제 전날은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하루종일..

이승에서의 아버님과 마지막 날을 위한 마지막 음식을 혼자서 모두 준비했다.

다음날 아버님댁으로 아침 일찍 가야 하니 장만한 음식을 꼼꼼히 다 챙기고 나니 밤 3시가 되었었다.

마지막 도시락이 마련되었다.


서로의 다르게 살아온 날이 긴 만큼 입맛도 서로 다르다.

나도 어머님의 음식이 안 맞고 주시면 난감할 때가 있었지만 신경 쓰며 만든 내 음식을 반기지 않으실 때도 있었다.

김장을 해서 들고 가면 입에 안 맞아하셨다. 오랜 손맛을 어떻게 따라갈까 생각하지만 기분이 상했다.

‘내가 혹시 어머님이 음식을 싸주실 때 싫은 티를 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반찬 가게를 이용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시부모님의 반찬을 만드는 일이 의무만 있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럼 내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흐트러짐도 국물 한방울도 흐르지 않았던 케이터링의 달인이 되었었다.




아버님께 전하고 싶은 말


보통의 사람들이 그렇듯 시댁과의 관계가 굉장히 좋진 않았지만 그래도 시댁가족 중 누가 제일 좋았을까 생각해 보면 시아버님이 떠오른다.

아버님은 배려심이 많으셨고, 어머님과의 사이에서 중재를 잘해주셨다는 것을 느낀다.

내 나이쯤 되셨던 남자 친구의 아버님을 처음 만났다.

그 당시의 나는 아버지가 부재인 상태였고, 남자친구의 아버님은 따뜻하셨다.

‘이 사람과 결혼하면 따뜻하겠다..’ 첫날에 그런 마음이 들었다.

처음 뵌 이후 4년이 더 흐른 후 결혼을 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라고 한다.

아버님은 “ㅇㅇ에미야” 가 아닌 “그사이야~” 하고 아이들은 낳은 후에도 언제나 딸처럼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

아버지가 부르는 이름을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나는 이름을 불러주실 때마다 따뜻하고 뭉클했다.

털털한 어머님과 사셨던 꼼꼼한 아버님은 나의 꼼꼼함도 마음에 들어 하셨고,

집안에 물건을 새로 들이는 일과 놓을 자리까지도 내게 의견을 물으셨다.

친 부녀간도 아닌 시아버님과 며느리는 식성도 성격도 많은 것이 비슷했다.

지나고 생각하니 나에 대한 어머님과 시누이의 쌀쌀함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나여도 기분이 상할 것 같다.

결혼해 살면서 외국살이 기간을 제외하면 생신상을 거의 집에서 직접 차려드렸다.

아버님의 생전 마지막 해에도 마찬가지였다.

편찮으셨지만 생신상의 메뉴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일주일 앞두고 일이 생겼다.

바로 전날에 생신상을 차리겠다고 장 보아두었던 갈비가 냉동실에 여전히 남아 있었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1년을 두었다가 버렸다.


돌아가시니  후회가 되는 일과 전하고픈 말이 있다.

“아버님 덕분에 아드님이 결혼할 수 있었어요 “라고 말씀을 드렸어야 했다.

이 말은 편찮으셔서 누워계실 때 말을 할까 몇 번이고 고민을 했었다. 못했다.

그리고,

술 잘 먹는 며느리가 들어온걸 참 좋아하셨는데 분위기 좋은 곳에서 대작을 한 번도 못 해 드린 것이 후회가 되었다.

성묘를 다녀오는 날이면 전찌개를 끓여 거나하게 마신다.

“아버지 제사음식은 네 술안주구나” 남편이 말한다.

“그러게...잘했다 하실걸..“


어른들은 기다려 주지 않으시니 지체하지 말고 마음을 전해야 한다.


딸처럼은 아니지만 남의 집 귀한 딸 대접을 해주셨으니 그거면 충분하고, 다행이었다.

말하기가 쑥스러웠고, 충분히 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못 했던 말..

“아버님, 참 감사했습니다..”




시어머님


자식을 나눠 갖으셨던 부모님 네 분 중 세분이 돌아가셨다.

가장 관계가 어려웠던 시어머님만 남으셨다.

어버이날을 맞아 어머님과 식사를 하며 옆에 앉아 좋아하시는 것들을 챙겨드리다가

더 이상은 때늦은 후회를 하기 싫어 말을 했다

“어머니, 오래오래 계셔야 해요” 말씀을 드리니

 “맘대로 되냐?” 하신다.


어머님은 이제 음식을 만들지 않으신다.

“어머니, 무짠지 어떻게 담그는 거예요?” 물으니

“꼭 김장철 다발무를 사. 깨끗이 씻어. 무청은 떼고 껍질은 까지 말고.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고, 소금물을 붓고 돌로 눌러놔”

“소금물을 찍어 먹어봐서 아이 짜!! 그럼 맞는 거야 “ 눈을 반짝이시며 말씀하신다.

“올 김장철에 꼭 해볼게요”


어머님은 내가 사다 드리는 옷을 좋아하신다. 그런데 한 번도 칭찬을 하신 적은 없었다.

“네가 사준 옷을 입고 나가면 다들 부러워한다. 그렇게 예쁜 옷을 어디서 사 입었냐고..”

“내가 그러지. 다 우리 며느리가 사다준 거라고 “

헤어지며 어머님 옆에서 껴안고 등을 쓸어드렸다.

“저번에 어머니가 옷 사 오지 말라고 하셔서 안 사 왔는데 다음에 올 때 옷 사 올 거예요”

“신경 쓰는 게 힘들까 봐 그랬지. 니가 고생 많이 했잖냐. 어이구! 머리 염색이나 해라 “


고부지간 (姑婦之間)..

신행에서 돌아온 첫날에 “그동안 편히 지냈는데 결혼을 했으니 나는 시어머니고 , 너는 며느리다”라고

어머님은 선을 그으셨고, 나는 그 말씀이 충격적이었다.

신경전이 팽배했던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옛날 사람들이 된 분들의 얘깃거리와 추억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고, 감정도 다 지난 일이 되었다.

어머니 눈에 흰머리 성성한 며느리가 보였고, 내 눈에 귀여운 어머님이 보였다.

여자 둘의 경쟁의 시대가 끝나고, 애정과 우정이 느껴졌다.

시간은 약이었다.

우리 관계는 그만하면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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