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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사이 Dec 08. 2024

비누의 건강 성적표

애들은 꼭 휴일에 아프더라..


비누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한밤중 갑자기 숨을 몰아쉬며 헥헥거리고, 부들부들 떨며 계속 안으라고 했다. 평소에 잘 안기지 않던 작은 아이에게도 가만히 안겨 있었다. 가족들이 돌아가며 비누를 안고 진정시켰다.

다행히 두 시간 정도 후 잠이 들었고, 다음날 오전 내내 잠을 잔다.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으니 조금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같은 현상을 반복했다.

하필 병원의 오후진료가 없는 날이고, 다음날은 휴일이었다.

말 못 하는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낯선 병원을 가는 일은 마음먹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응급상황일수록..

잠시 진정되었다가 같은 현상을 반복하며 밥도 물도 먹지 않는 이틀을 지냈다. 그 시간 국가의 위기도 함께 맞고 있었다.


이틀이 지나고, 병원으로 서둘러 갔다.

희한한 건 아이들이 어릴 때 병원 응급실만 가면 방긋방긋 웃던 것처럼 비누도 그 현상을 보였다.

몸무게는 3.3킬로그램.

5킬로가 넘던 한창때를 생각하면 무척 많이 몸무게가 빠져있어 한참을 안고 있어도 가볍게 느껴졌다.

“비누야, 너를 많이, 오래 안아줄 수 있겠구나.”

그러나 갑자기는 아니고 열 살을 넘으며 먹는 양이 줄었고, 서서히 빠지기 시작했으니 큰 문제는 아닐 듯했다.


“숨소리가 이상해요. 선생님!”  찍어두었던 동영상도 보여드렸다.

의사 선생님은 신중하게 한참 동안 청진을 하고, 열을 재고 이곳저곳 촉진을 하고, 내게 이런저런 문진을 한 뒤 검사를 하기로 했다.

“검사하고, 결과가 나오는데 15분 정도가 걸릴 거예요.”

비누를 검사실로 들여보내고, 애가 탔다.

팔목에 지혈테이프를 감은 비누가 내게 안겨졌다.

해가 환하게 드는 창가에 비누를 안고 앉아있는데 덥다고 내려 달라고 한다. 의자에 내려주니 랄랄랄라 걸어 다닌다.


“비누야, 너 왜 신나 있어?”


몇 분 안 되지만 길게 느껴진 시간이 지난 후 호출이 되고, 두근두근 하는 마음으로 다시 진료실에 들어갔다.

열네 살이란 나이면 무엇이라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다만 큰 문제가 아니기를..’

선생님이 웃으신다. (왜 때문에?)

먼저 비누의 사진을 본다.

평균보다 조금 작다는 비누의 위는 갸름하고 예쁜 모양이며 폐도 내장에도 뼈에도 어디에도 의심으로 보이는 요소가 없다고 하신다.

“아무 이상이 없어요?”

“이제 여기 수치를 보시죠.”

염증수치, 간수치, 콜레스테로, 당뇨, 신장기능....

알 수 없는 수십 개의 검사항목들의 수치가 모두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저도 걱정했던 것들이 있었는데 이 나이에 이 성적표가 흔한 건 아닙니다. 어떠한 조금의 이유로도 약조차 권할 것이 없습니다.”

“혹시 매달 먹는 피부약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은 아닐까요?”

부작용의 증상과 의심되는 항목의 수치를 자세히 설명하며 이상이 없다고 하신다.

“정말요? 그럼 왜 그렇게 숨을 헐떡이고, 떨고, 밥을 안 먹고 그랬을까요?”

“검사결과로는 어떤 병적 요소는 없어요. 무언가 스트레스에 인한 것이 아닐까 외엔 나타나는 것이 없습니다. “

“귓속과 이빨은요?”

그 역시 멀쩡하다니 이젠 왠지 내가 이상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 모습이 과잉보호하는 극성스러운 학부모 같았다.)


모든 것이 정상 범위에 있는 화면 속의 검진 결과표가 아름답게 보인다.

“비누가 저 보다 건강하네요..”

선생님도 처음과 달리 기분 좋게 웃으신다.

우리가 그렇게 아름다운 건강검진 결과표를 받는다면 얼마나 기쁠까?

비누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비누야, 너 정말 건강하대. 네가 기뻤으면 좋겠어. “


그동안 노령견 건강검진을 해봐야 하는가 고민을 했는데 건강검진 한번 잘 한 격이 되었다.

지갑이 가벼워졌지만 속이 아주 후련하다.

그러나 마음속에 조그만 생각이 자리 잡는다. 비누에게 어떤 스트레스가 작용했을까?


“비누야, 금융치료 시원하게 했으니 우리 산책 가자!”



비누야, 왜그래?
우리 비누 어디 아프니?
검사실에 들여보내고 심란한 그림자. 검사실에서 히유히융 아웅아웅.....엄살쟁이
돌아온 비누..“그런데 너 왜 신난거야?”
추운 날씨인데도 씩씩이 비누
“날씨가 좋구만~”
우쭈쭈..우리 비누 아야했어?
건강해서 고마워. 함께 걸어줘서 고마워!
함께 보는 집앞 하늘

비누의 아름다운 건강 성적표는 어느 날 아름답지 못할 수도 있고, 혼자서 만들 수도 없으며 혼자서 지켜낼 수도 없다.

모든 이의 지키고자 하는 진심의 마음과 정성이 들어있어야 가능하다.

그렇더라도 무엇이든 영원함은 없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평정심과 지극한 마음이 중요하겠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이미 작성해 둔 연재글을 발행하지 않겠다고 잠들기 전 생각했었다.

그러나 전날의 인터뷰에 이어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 망망이치던 어제를 지난 새벽에 만난 한강 작가님의 강연은 마음이 진정되게 하였다.

한강 작가님의 조용한 목소리에서 큰 힘이 느껴졌고, 글로 읽으니 더욱 단단해짐을 느꼈다.

말간 정신과 마음에서 별것 아닌 나의 소소한 일들이 제자리를 지키는 것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조그만 결의가 생긴다.

나는 거르지 않고, 연재글을 발행하기로 한다. 몸을 추슬러 다시 산책을 나서듯이..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지.


(중략)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중략)

두 개의 질문을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출처 : 빛과 실. 작가 한강의 노벨상 수상자 문학강연 중에서..


https://www.nobelprize.org/prizes/literature/2024/han/225027-nobel-lecture-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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