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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옷과 낡은 옷

너와 나의 산책 복장

by 그사이


비누와 산책을 나갈 때 나는 교복을 입는다.

오래된 낡은 청바지와 베이지색 바람막이 겉옷을 걸치고, 하얀 캡 모자를 쓰고 별무늬 스티치를 이용해 손뜨개로 만든 일명 똥가방을 몸에 크로스로 걸친다. 내 준비는 끝났다.

내 산책 교복을 알아챈 똑똑이 비누가 뱅글뱅글 돌며 보챈다. 이제 비누의 채비가 시작된다.

옷을 입고 연두색 하네스를 걸면 끝.

그리고 나면 나는 낡은 운동화를 신고 우린 문밖으로 나가 산책을 간다.


몇 년 전만 해도 비누는 한겨울을 제외하곤 옷을 입지 않았다.

말티즈의 자랑인 하얗게 휘날리는 털을 치장하는 핀도 싫어하고, 몸에 뭘 걸쳐지는 걸 무조건 싫어했으니 짧은 머리 비누의 나갈 채비는 하네스면 충분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덜덜 떨고 코를 흘리며 추위를 쉽게 느껴 옷이 필수가 되었다.

옷을 입히고 하네스를 착용하면 끝이란 것이 말만큼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입기 싫어하는 비누에게 옷 입히는 절차는........... 아주 어려웠다.

얼굴을 절대 구멍으로 넣으려 하지 않으니 아무리 예쁜 옷도 무용지물이 되었다. 하는 수없이 겨울 패딩 디자인에서 힌트를 얻어 목을 넣지 않고 두르는 형태의 옷을 만들게 되었다. 벨크로의 "찌이이익" 하는 소리도 질색하니 어울리는 단추를 달아 마무리한다.

문제는 내 맞춤 옷가게의 유일한 고객님은 절대 가봉을 해주지 않는 까탈스러운 손님이라는 거다. 완성되고 산책을 나갈 때가 되어서야 옷이 맞는지 안 맞는지를 알 수가 있다.

“이런! 풀고 다시 떠야겠네....."

그럭저럭 비누에게 산책 시 옷을 입는 것을 허락받게 되었다.


재작년에 강아지 옷 뜨기에 심취해 만든 여러개의 옷으로 2년 정도를 잘 입혔다. 최근의 비누는 더 살이 빠지고 등도 굽어 옷이 안 맞고 헐렁해지기도 했고, 너무 낡기도 해서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만 할 뿐 무에 바쁜지 완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며칠 전 날이 더워 옷을 입지 않고 산책을 나갔다. 지나가던 사람이

"어머! 개가 엄청 말랐네. 안 먹나 봐."

"잘 먹는 편인데 나이가 들어서 그래요."

라고 말하고 나니 내가 한 대답에 왠지 섭섭하고 마음이 서글퍼졌다. 나는 왜 자꾸 비누의 나이를 의식하고 남에게 내보이는건지 모르겠다. 나이 먹은게 뭐 자랑이라고.

비누가 귀가 안 들리는 건 다행이라고 생각됐다.

"빨리 여름옷을 만들어야겠다. 예쁘게."

여전히 비누는 가봉에 응하지 않는 까탈 고객님이다. 하지만 고집스러운 까탈이 남아있다는 여전함이 기쁘게 생각된다. 예쁘게 만들고자 하는 생각에 프릴을 많이 달았더니 옷이 묵직해졌다.

"예쁘긴 한데 무거워서 안 되겠다."

프릴을 모두 떼어내고 약간의 장식을 하고 하트 단추를 달아 마무리했다.

드디어 새 여름옷이 완성됐다.


나는 똑같은 낡은 옷을 입고 나서 비누에겐 새 꼬까옷을 입히니 마음이 좋았다.

평소 외출 시 입을 수 없는 나의 낡은 청바지와 운동화는 문제 될 것이 없다.

요즘은 비누를 제어하지 않고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탐색하게 두는 편이니 풀숲도 들어가야 하고 어디든 가야 한다. 추레한 낡은 옷차림과 운동화지만 천천히 걷는 너와 나의 산책길엔 더할 나위 없이 알맞은 낡은 교복 차림새는 딱 좋다.


오래오래 낡은 옷을 입고 산책을 하고 싶다.
비누 너와 함께.
가봉에 비협조적인 고객님
연둣빛 레이스 한단으로 협의
“고객님, 런웨이가 그쪽이 아닌데 어디 가세요?”
“누가 꽃이게요?”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는
나의 낡은 교복과 똥가방
늘 함께 보는 집앞 하늘



이전 글의 새옷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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