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 만나는 고운 사람
비가 와서, 바람이 불어서, 너무 추워서, 너무 더워서..
날씨가 좋고, 비누와 나의 상태도 좋은 그런 날을 찾는 건 쉽지 않다.
모처럼 딱 맞는 날에 산책을 나간다.
그날은 천천히 걷지만 제법 오래 집에 들어가자고 하지 않는 비누가 대견했다.
이곳저곳을 탐색하고 들쑤시던 비누가 벤치 앞에 멈춰 섰다.
요즘 산책길엔 비누를 리드하지 않고 무엇이든 하고 싶은 걸 하게 내버려 두는 편인데 비누가 벤치 앞에 멈춰 서더니 좀처럼 움직일 생각이 없다. 그 벤치엔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
요즘 비누는 점점 표정이 없어지고 있다. 노인처럼.. (오해받기 십상이다.)
‘이러면 서로 좀 무안해지는데..’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은데? 내가 여기 앉아 있어서 그런가? “
“나이가 많고 백내장 때문에 눈이 잘 안 보여서 그래요. 기분은 좋은 거예요. “
“응, 너도 나처럼 늙어 그런 거구나. 여기 앉을래?”
하시며 옆자리의 꽃무늬 장바구니를 흙바닥으로 내려놓으려 하신다.
“아녜요. 그냥 두세요. 이제 안고 들어가려던 참이에요.”
“할머니, 조심히 들어가세요. 건강하세요~”
비누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집 앞의 벤치에서 잠시 머물렀다.
크지 않은 동네지만 산책길에 만난 분을 다시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흔치 않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를 할머니로부터 따뜻한 마음을 느낀다.
어쩌면 비누 또는 내가 그 할머니와 전생에 한 번쯤 옷깃을 스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긴다.
우연히 만난 늙은 강아지를 위해 자신의 장가방을 주저 없이 흙바닥에 내려놓으시던 할머니.
꽃무늬 보다 고운 마음에 감사하며
건강을 기원합니다.
(다음 편엔 새 옷을 입힐 수 있길 바라며..)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