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책 독서를 마친다. 일출 후엔 <삶은 도서관>
지난밤엔 지크프리트 목가(Siegfried Idyll)를 듣다가 잠이 들었다. 여전히 바그너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 과연 내가 소싯적엔 무엇을 알고 연주란 걸 했던 건가 싶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며 부끄러워졌다.
이른 새벽에 눈을 떠 아이들은 출근시키고 나면 잠시 후 깜깜하던 새벽이 어슴프레 밝아온다.
그 시간은 <바그너에 경우> 를 읽는 시간이다. 앞 장으로 돌아가고, 역주를 읽다가 본문을 놓치곤 한다.
‘그럼 어렵지. 쉬울 줄 알았나?’
남향의 내 책상 위로 일출이 시작되면 쾌재를 부른다. “에헤라디야! 얼쑤!” 하고, 바그너와 니체의 수렁에서 빠져나온다. 너무 눈이 부셔서라고 핑게를 대어 본다.
오래전 살던 음악가, 화가, 작가는 모두 분명히 철학에서 작품이 기인했다고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 번도 관심 가지지 않던 위대한 음악가 바그너와 철학자 니체는 어떤 관계일까?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완전한 인간>을 읽고 나서 철학책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이 붙었다.
아쉬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니체에 대한 책이 읽고 싶었고, 좀 다른 니체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러다가 발견한 책 <바그너에 대하여 니체 대 바그너>이다. 제목 자체로 구매버튼을 누르기에 충분했다. 구매력 있는 도서가 아니어서인지 상품준비가 오래 걸렸다.
도착한 책의 표지를 여는 순간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번역가가.. 아는 사람이었다.
“그사이 씨, ㅇㅇ이가 좋아요? 왜요? 어떤 점이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요?”
라고 얼버무리며 지나치려던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집요하게 대답을 요구하던 철학과에 다니던 남편의 친구다. 철딱서니 없이 마냥 봄날이던 스무 살에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첫 만남 이후 “나는 상엽 씨는 왠지 좀 무섭더라.”라고 그를 표현했고, “그 자식이 뭐가 무서워. 엉뚱한 녀석이지.”라고 현 남편(구 남 친)은 대답했다.
남편으로 부터 들은 그와의 첫 만남 일화가 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반편성 시험을 보려고 앉아있는데 처음 보는 인상이 험악한 뒷사람이 갑자기 어깨를 툭툭 치더니 존댓말로 "공부를 안 해서 그러는데 거 혹시 답 좀 보여줄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 그러라고 했단다. 두려워서는 아니고 손해 볼 것도 없을 것 같아서였다고 했다.
"글쎄! 그 녀석이 나보다 한 등수 위가 나왔더라!" 며 흥분했던 기억이 나며 웃음이 나왔다. 그들은 그렇게 친구가 되었고, 함께 늙어가고 있었다.
그리 두껍지 않지만 이 어려운 책에 대한 말을 나누고 싶고, 이젠 내가 집요하게 묻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이른 나이에 그는 세상을 다 알았다는 듯이 홀연히 떠나버렸다.
젊은 철학자였던 그가 번역한 책을 다 읽고 나면 내가 바그너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면 좋겠다.
매달 아이들에게 받는 하숙비로 5만 원을 나만을 위해 소비한다. 이번 달은 가볍게 두 권을 선택하여 비용을 많이 아꼈다. 매달 몇 천 원, 몇 만 원이 남으니 조금씩 모인 돈으로 연말에 흥청망청 책을 살 계획이다.
(얼마나 된다고..)
브런치엔 훌륭한 많은 작가님들이 계신다. 출간 책을 모두 구입하자면 얼마 안 되는 가산을 탕진할 것이 분명하니 집을 나서면 5분 안에 도착하는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편이다. 그리고 부족한 내 글이 누를 끼칠까 싶어 구매와 독서후기를 자제하는 편이다.
브런치 이웃이신 강현욱 작가님의 <살짜쿵 책방러>와 <밥상을 차리다, 당신을 떠올리곤 해> 책 두 권을 유일하게 구입했었다. 작가님의 책을 구매하면 아픈 아이들을 위해 자동 기부가 되어 독자까지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이후 두 번째로 포도송이 인자 작가님의 <삶은 도서관>을 선택했다. 축하 댓글을 쓰며 브런치 작가님 중 책을 구입하는 두 번째라고 썼더니 포도송이 작가님께서 "제가 이인자잖아요." 하셨다. 작가님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는 것이 그만.. 하하.
앗! 제게 애정의 순위는 없는데요.
우열을 가릴 수 없이 애정합니다.
글 스승님들!
내가 추구하는 글은 따뜻하면서도 위트 있고, 너무 감성적이지도 않고 싶다. (잘 안되어 늘 괴로워한다.)
본받고 싶은 따뜻한 작가님들이 기꺼이 곁으로 와 다정한 글 선생님이 되어주시니 한층 가까워진 생각이 든다.
나에게 주는 이달의 선물은 이렇게 두 권이 선택됐고, 일출 전과 일출 후의 독서를 하고 있다.
오후에 독서할 책은 <삶은 도서관>이다.
자꾸만 만지고 싶은 사랑스러운 책. 내 프로필 배경색과 거의 똑같은 책의 표지색이 아주 마음에 든다.
포도송이 작가님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내 삶과 글도 푹푹 맛있게 삶아지기를 바란다.
"알 수 없는 인생'이라는 버스가 다음에 또 나를 어디에 내려놓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두렵지 않다. 예전보다 단단하고 유연해진 마음의 엔진이 내 삶을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게 할 테니까. 이 책이 세상에 나와. 우리 모두의 깊어지는 삶을 응원하는 '프라이드 에이징'의 작은 증거가 되었으면 좋겠다.
<삶은 도서관> 프롤로그 중.. p. 7
이 글은 부탁받거나 홍보를 위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은 독서 일기가 아닌데 어느 게시판에 올려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좋은 작가님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으로 선택했습니다.
https://brunch.co.kr/@kanghyunw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