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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가을 독서일기

by 그사이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프랑수아즈 사강

프랑스 문학이 주는 오묘한 감정이 있다.

그 느낌이란 짙은 안갯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하면 비슷하다.

글을 읽다가 만나는 여백에.

샹송의 간주 부분에.

어린 왕자의 예쁜 말 뒤에.

소피 마르소의 눈빛에.

언제나 무언가 할 말이 더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오묘한 감정과 여백의 감정을 느끼고 싶은 가을날에 이 책에 손이 갔다.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제목은 독자를 끌어당기기에 충분하다.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차이콥스키가 아닌 왜 브람스일까?

브람스가 사랑한 슈만의 아내 열네 살 위의 여성 클라라 슈만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이 책을 읽는다면 제목의 의혹이 풀린다.

책을 열어 만나는 첫 구절은 손에서 떼지 못하고 하루 만에 읽어버릴 만큼 흥미롭게 만든다.

어찌 보면 통속적이고 짧은 기간의 일탈 같은 사랑이 소재이다. 자칫하면 흥미를 떨어뜨릴 수도 있는 소재를 작가는 섬세한 표현으로 설레고 안타까우며 아름답게 느껴지게 한다. 책을 덮고 나면 사랑에 대한 감성과 이성 사이의 고뇌를 통해 인간의 심리와 관계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물음은

“사랑은 무엇일까요? “라는 뜻으로 해석하게 된다.


폴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녀는 이런 경우 흔히 갖게 마련인 신랄함이나 당혹감이 아니라 조심성에 가까운 차분함을 가지고, 좌절로 얼룩진 거울 속의 얼굴을 서른아홉 해로 나누어 보았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p.9
해가 동쪽에서 비추는 아침
잿빛 보도, 행인들, 주위의 자동차들이 그녀에게 문득 구체적인 시대에 속하지 않는, 양식화되고 고정된 배경처럼 여겨졌다. 그들은 이 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다시 음울하고 시끄러운 현실 속의 거리로 돌아오기 전에, 의식 가장자리에서 깨어 망을 보고 있는 동안, 시몽은 한걸음에 내디뎌 그녀를 품에 안았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p.103
일찌감치 해가 서쪽으로 가버린 늦은 오후
저녁 8시.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기도 전에 그녀는 로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미안해.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해. 좀 늦을 것 같은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p.158

“헉! 늦는다고?”

충격적인 결말.

만원의 프랑스 여행

책을 덮는다.




독서 그 후. 라기보다는 이 가을 프랑스 여행.


책 또는 영상작품을 볼 때 프랑스 작품은 언제나 알 수 없는 느낌을 가지고 만나게 된다.

무언가 몽글거리고, 무언가 안개가 끼어있는 것 같은 몽환적인 기분이 된다. 더불어 정신적인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그런 기분을 처음 느낀 건 어릴 적 읽은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였다. 만인이 사랑하는 이야기임에도 여전히 내겐 그 글이 이상하고 난해하게 여겨진다. 어렵다. 어린이가 읽기에 적당치 않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을 한다.

프랑스는 언제나 환상이나 환각 같은 도시로 생각된다. 역시 개인적이지만 누군가는 실제로 가본 적이 없어 그렇다고 말할는지도 모르겠다.

단, 나는 그 뿌연 몽롱함을 느끼게 하는 깊고 모호한 프랑스 문학이 가끔씩 그리워진다는 거다.


자신감에 차있는 미국적 정서가 물씬 묻어나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독서를 마치고 나니 프랑스 문학이 만나고 싶었다. 고전으로..

얼마 전 약속이 광화문에서 있었다.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도심의 약속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큰 서점과 영화관이 여러개 있는 광화문과 종로는 내겐 일주일에 한번쯤은 꼭 가는 문화도시였다. 지금처럼 손가락을 움직이기만하면 집앞으로 배달이 되는 것은 호사이기도 하지만 즐거움을 빼앗긴 일이기도 하다.

나는 부러 일찍 도착하여 서점으로 가 시간을 보냈다. 선채로 책을 읽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인데 이젠 오래 서있으면 허리가 아픈 것은 슬프기도 하지만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고통을 동반한 즐거움이란 얼마나 좋은 것인지 오랜만에 만끽해 본다.


올해의 노벨문학상 작가인 라슬로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저항의 멜랑콜리>와 브런치 이웃이신 BOX작가님의 <아주 잘 노는 어른이 될 거야>를 발견하여 반가운 마음으로 읽다 보니 어느새 약속시간이 되었다.

서점에 가면 꼭 무언가를 사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가지고 있다. 약속장소에 늦게 도착할까 걱정되는 조급한 마음으로 쇼핑백 필요 없이 작은 뜨개가방에 쏙 들어가기에 알맞은 책을 사들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오래전에 읽어 기억이 나지 않으니 선택하기에 필요충분했다. 집에 돌아와 당장 읽고 싶었으나 모처럼 가을볕을 많이 쐰 덕분인지 잠을 아주 잘도 잤다.

개운하게 아침을 맞고 책상 위에 놓인 독서대 위에 책을 올려 사진을 찍은 후 치웠다.

책을 한 손에 들고 햇빛 아래서도 읽고, 소파에 느른하게 누워서도 읽으며 자유롭게 프랑스에 닿아본다.


폴과 로제.

누가 여자이고 남자일까?

첫 장에서 시작되는 이름에서부터 낯설고, 알 수 없는 고민을 하게 된다.

“그렇지. 바로 이것이 나의 프랑스지.”

프랑스의 낯선 지명들과 센강이 언급될 때 얼마 전 다녀온 오랑주리-오르세 미술전에서 마음에 들어 오래 머물었던 <센강의 바지선> 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르누아르가 바라보았을 센강 옆의 우거진 나무들 사이를 폴과 시몽이 걸었을까?

언제나 그렇듯 이야기에 빠져들어 상상을 하고, 천천히 거리를 숲 속을 거닐게 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는다는 것은 머나먼 프랑스를 당일치기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얼마나 좋은가?


이 가을엔 프랑스로 멜랑꼴리 한 여행을 떠나본다.




멋진 도시 서울의 가을 사진 몇 장..^^

서울 도심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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