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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블랭크 Feb 22. 2022

어쩌다 보니 아지트가 된 철공소 거리의 카페, 문래방구

복합문화공간 문래방구

어쩌다 보니 아지트가 된 철공소 거리의 카페, ‘문래방구’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은 철도를 이용한 물류 운송이 원활해 오래전부터 철강 기반의 산업이 발달한 지역이다. 비록 1990년대 이후 정부가 주도한 수도권 공장 이전 정책으로 인해 대형 공장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그 영향력이 줄어들었지만 아직까지도 국내 대표 공업지역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대규모 공장의 이전과 함께 텅 비어진 여러 철공소는 홍대와 대학로의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해 내려온 예술가가 하나둘 점유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그래픽 아티스트, 설치 미술가, 공예 디자이너 등 다양한 영역의 예술가가 문래동에 작업실을 차리면서 이곳은 ‘문래창작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2020년 11월, 영등포구가 공개한 빅데이터 자료에 따르면 300여 명의 예술가가 120여 개의 작업공간에서 활동 중이라고 한다. 그들이 운영하는 예술공간은 단단한 도구로 강철을 두드리는 소리, 엄청나게 높은 열로 철재를 지지며 튀는 불꽃을 피하다 보면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다. 익살스러운 표정의 캐릭터가 반겨주는 카페 ‘문래방구’도 그렇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로 가득한 카페지만, 문래방구는 원래 커피를 판매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고 한다.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 이준환은 여행 삼아 떠난 네덜란드에서 제조산업으로 활발한 지역이 예술 스튜디오와 공생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아, 귀국 후 문래동에 작업실을 차렸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예술가가 완성된 결과물을 만들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디자인에 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것을 손에 잡히는 무언가로 만들어내는 그 지난한 과정을 견디기 위해서는 카페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문래방구를 작업실로 사용하는 다섯 명의 예술가도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 커피를 자주 마셨는데 그렇게 나가는 비용이 상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음료 지출비를 줄이려 업소용 커피 머신을 들여왔는데 문래방구를 카페로 착각한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들은 작업실로 찾아오는 사람을 일일이 반려하기 어려워 테이블과 의자를 하나둘씩 놓으며 공간을 조금씩 카페 분위기로 바꿨다.

 


문래방구에 가면 예술을 전공한 친구의 작업실에 놀러 온 듯한 기분이 드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커피를 마시며 주변에 놓인 작품을 살펴보고 가까이에서 작업 중인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일은 흔히 할 수 없는 경험이다. 그 익숙하지 않은 경험을 가볍게 할 수 있다는 점이 문래방구의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커피를 마시는 영역과 작품을 전시하는 영역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은데 이러한 경계 없음은 태생적으로 넓지 않은 공간을 점유한 것에서 비롯됐다. 문래방구가 위치한 장방형 건물은 여느 문래동의 공간처럼 잘게 나뉘어 점유되고 있다. 건물을 임차하고 있는 여섯 주체가 사용하는 면적은 좁게는 169 제곱미터, 넓게는 238 제곱미터다. 약 60평의 공간을 아우르는 문래방구의 모습은 문래동의 인더스트리얼한 감성에 걸맞게 다소 거친 듯한 인상이다. 천장을 올려다보면 박공 슬레이트 지붕 아래 환기용 팬이 돌아가고 있고, 주위를 둘러 보면 콘크리트 벽돌이 군데군데 쌓여 있다. 콘크리트 벽돌은 한 곳에 뭉쳐 탁상이 되기도 하고 공간의 테두리를 두르며 벤치로 기능하기도 한다. 그 옆에는 원형의 철제 사이드 테이블이 놓여 있는데, 서너 개의 벽돌이 얇은 부재로 만들어진 사이드 테이블을 고정하기 위해 가구 하단에 괴어 있다.



커피를 음미하고 작품을 구경하는 카페 너머에는 전혀 다른 성격의 공간인 작업실이 운영되고 있다. 작업실은 카페 운영을 담당하는 사무실과 각종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실습실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는 디자인 회사 초록스튜디오와 미술 교육 기업 아트콜라보랩이 가죽 공예와 드로잉 클래스를 번갈아 제공하는 중이다. 초록스튜디오는 3~4 시간 가량 소요되는 원데이클래스를 통해 명함 케이스, 카드 케이스, 접이식 지갑, 여권 케이스, 노트 커버 등을 제작할 수 있도록 한다. 아트콜라보랩은 마카쥬 클래스 같은 가벼운 수업을 운영하며 비전공자가 미술을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예술로 향하는 문턱을 낮추려는 그들의 노력은 창작물을 소개하는 여러 행사의 개최로도 이어진다. 지난 8월에는 서울과 한글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브랜드 ‘플러스 팔이공이(+8202)’와 함께 어릴 적 모여 놀던 문방구의 기억을 추억하게 만드는 팝업스토어 ‘그로운 칠드런즈 스테이셔너리 숍(Grown Children’s Stationery Shop)’을 열기도 했다. 현장에는 자체 제작 티셔츠, 핀업 배지를 판매하는 코너와 함께 동대문 완구시장에서 판매하는 옛날 놀이용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마련됐다. 이후 12월에는 비주얼 아티스트 플랫폼 ‘픽스필즈(pixpills)’가 제작한 새해 일력을 공개했다. 문래방구가 공간을 내어준 덕분에 183명의 국내외 아티스트가 그린 아트워크가 많은 사람들에게 가 닿을 수 있었다.



문래방구가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복합문화공간 특유의 억지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공간을 운영하는 주체와 콘텐츠의 알맹이를 가지고 있는 주체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복합 문화공간이 있지만, 그중 여러 곳은 스스로 많은 프로그램을 담는 그릇이라 자부하며 자체 콘텐츠를 만들지 않고 있다. 결국에는 그러한 태도가 공간을 지속할 힘을 약화시킨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복합 문화공간이 여러 성격을 취할 수 있지만 그 장점이 공간 프로그램의 근간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복합 문화공간을 운영하거나 소비하는 사람들이 그 부분에 대한 해답을 문래방구에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글. 김예람 에디터/ 사진. the blank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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