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 어베터플레이스
요즘 사람들이 찾아가는 스테이의 면면을 살펴보면 도시 바깥에 위치하거나 자연을 가까이에 두는 경우가 많다. 숙박시설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고객이 매일 마주하는 주거와 사무실에서 벗어나 일상생활에서 얻기 힘들었던 안온함을 느끼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많은 스테이가 투숙객의 요구를 반영하여 번잡스럽고 시끄러운 환경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우선의 목표로 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과는 맞지 않게, ‘어 베터 플레이스. 401’(이하 어 베터 플레이스)은 서울 종로의 한 먹자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대중교통으로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거리에 있는 편이 교외 스테이보다 투숙객의 휴식 시간을 늘려준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접근성을 택하게 되면 혼잡함과 소음을 얻게 되는데, 어 베터 플레이스를 설계한 유스풀 워크숍(USEFUL WORKSHOP)은 숙소로 오는 과정에 몇 가지 장치를 더해 장소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을 보완하고자 했다.
어 베터 플레이스가 위치한 건물 1층에는 곱창요리 전문점이 자리하고, 그 옆에는 2~3명이 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해서 숙소가 위치한 4층 버튼을 누르면 문이 닫힐 거라 생각하지만, 별도의 비밀번호가 설정되어 있어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엘리베이터는 작동하지 않는다.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는 이 버튼은 먹자골목에서 유흥을 즐기던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방문을 미연에 방지하는 장치이자, 숙소를 예약한 사람이 혼잡스러운 골목으로부터 분리된 세계로 향하는 듯한 기분을 가지게 만드는 매개체다. 투숙객이 호스트에게 미리 안내받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4층으로 올라가면 회색빛 철문과 본인의 이름이 적힌 사이니지를 마주하게 된다. 무거운 문을 힘껏 열고 들어가면 숙소에 오는 과정에서 경험하지 못한 분위기의 공간이 펼쳐진다.
왁자지껄한 대화와 시끄러운 음악 소리,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불빛이 소거된 어 베터 플레이스는 노란 벽과 붉은 주홍의 바닥으로 마감되어 있다. ‘대조되는 경험’을 중요하게 고려한 디자인 스튜디오의 의도가 잘 묻어난다. 이내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면 공간에서 기시감이 느껴진다. 그 이유는 어 베터 플레이스의 공간 구성이 아파트 평면의 원형을 디자인의 근간으로 삼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스테이는 1945년,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전후 복구를 위해 프랑스 마르세유에 설계한 집합주거 유니테 다비타시옹과 닮은 구석이 있다. 공통점은 이 근대식 아파트의 공간 분할에서 찾을 수 있다. 공간을 디자인한 유스풀 워크샵은 유니테 다비타시옹의 장방형 주거 유닛이 상황에 맞게 슬라이딩 도어를 통해 구분되는 것을 보고, 어 베터 플레이스의 다이닝과 침실을 구분하는 불투명한 이동식 중문을 만들었다.
모듈러 가구에 신경을 쓴 부분도 두 공간의 유사점이라 할 수 있다. 어 베터 플레이스의 노란 벽은 기존 벽체와 맞붙게 설치하는 조립식 가구로, 총 아홉 가지 모듈로 구성되어 있다. 책을 켜켜이 꽂는 책장, 전자제품을 작동시키는 플러그, 스마트폰을 충전하는 USB 포트, TV에 부속된 HDMI 단자와 랜선을 감추는 보관함, 주방의 냄새를 없애는 환풍기 등 많은 기능이 노란 벽체에 담겨 있다. 물건을 옆에서 집어 넣고 빼는 구조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정면이 깔끔하게 정리됐다는 인상까지 준다. 어 베터 플레이스에는 지난 10월에 진행된 전시 <집을 위한 물건>을 위해 제작된 조립식 가구 ‘테이블 유니온(Table Union)’도 있다. 테이블 유니온은 자작나무 합판을 동그라미, 세모, 네모의 단순한 형태로 절삭하여 만든 가구로, 이동식 사이드테이블과 티 테이블로 활용 가능하다.
스테이의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디자인한 유스풀 워크숍은 지금보다 더 유용하고 편안한 공간환경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특정 시간대에 조도가 자동으로 낮아지고, 별도의 손잡이나 스위치 없이 문이 열리는 아이디어를 내면서 말이다. 그들의 작업은 근미래 주거에 대한 상상에서 비롯됐다는 것 말고도, 제안하는 생활 솔루션을 주거가 아닌 숙박시설 안에서 보여준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상적인 주거환경을 본격적으로 아파트에 적용하기 전에, 사람들이 디자인 아이디어를 체험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를 만들어 가능한 많은 피드백을 수집하기 위한 방법인 듯하다. 현재 유스풀 워크숍은 서울 종로의 유흥골목에서 시작한 어 베터 플레이스를 도시 곳곳에 추가로 마련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스테이 브랜드의 이름을 변주하며 근미래 주거 시리즈를 이어갈지, 아예 다른 이름으로 새로운 주거대안을 제시할지는 미지수다.
2020년 11월, 유스풀 워크숍이 오래된 DVD방을 단일 스테이로 개조한 이후 비슷한 공간 비즈니스 모델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그 숫자가 빠르게 늘고 있지는 않다. 방 하나만으로 운영되는 스테이가 숙박시설이 아닌 주거 용도로 불법 사용될 수 있다는 당국의 우려 때문이다. 유스풀 워크숍 역시 어 베터 플레이스를 설계하고 시공하면서 지난한 설득의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대안적 주거를 경험하게 만드는 숙박 서비스가 보편화되려면 관련 제도와 법적 기준의 개선이 필요해보인다. 그렇게 된다면 어 베터 플레이스를 레퍼런스 삼아, 새로운 주거 솔루션을 제공하는 공간 서비스가 생겨나지 않을까?
글. 김예람 에디터/ 사진. the blank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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