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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블랭크 Nov 30. 2021

숙소에 머무는 것이 여행이 되는 시대, 로텐바움&웻에버

스테이 로텐바움과 웻에버

관광 없이 하루 종일 숙소에 머무르는 것을 여행이라 칭해도 어색함이 없는 시대다. 한적하고 편하게 머물며 쉬고 싶지만 매일같이 일상을 보내는 집에선 좀처럼 기분이 나지 않는다. 예고 없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바이러스는 스테이케이션의 유행을 가속화시켰고, 이 흐름 속에서 숙소라는 카테고리의 공간도 함께 진화했다.

웻에버와 로텐바움, 공간 기획 프로젝트 그룹 27club이 탄생시킨 이 새로운 스타일의 숙소는 우리를 익숙하지 않은 시공간으로 끌어들인다. 부산과 전주의 어느 낡은 공간에 27club이 새 숨결을 불어넣으며, 캐릭터와 서사가 더해져 완성한 재생 건축 공간. 숙소로 구분되는 수많은 새로운 공간들이 있지만, 이 두 공간이 특별하게 주목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스토리텔링이 있는 공간은 몇 번이고 다시 해석될 수 있으니까.


전주 한옥마을 숙소 로텐바움(rotenbaum)
부산 광안리 숙소 웻에버(wetever)


낯선 시공간 속으로의 여행


27club을 세상에 알린 첫 프로젝트 웻에버(wetever)는 부산에 위치하고 있다. 광안리 해변 근처에서 조금만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면 주변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문을 마주할 수 있다. 이 문을 열고 가파른 계단을 한층씩 올라서면 1960년대 미국 볼티모어 바닷가 마을의 어느 집 안이 눈 앞에 펼쳐진다.


비 오는 날이 어울릴 것 같이 축축하게 가라앉은 무드의 집은 지어진 지 30년 넘은 건물을 재탄생시킨 결과이다. 이 공간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Shape of water>를 핵심 모티브로 한다. 공간의 면적을 넓게 차지하는 청록색의 벽지와 낡은 듯 어두운 색감의 목재 바닥이 공간의 무드에 굵은 인상을 준다. 마음에 드는 목재를 찾느라 폐교의 바닥을 뜯어와 일일이 갈아내고 시공한 에피소드는 웻에버 제작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됐다.


부산 광안리 숙소 웻에버(wetever)


그리고 2년 뒤, 독일과 프랑스 국경 사이 알자스로렌 지역에 위치한 친구 집에 사진작가 조르그(Zorg)[1]가 잠시 머무르게 되면서 두 번째 공간인 로텐바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집이 물리적으로는 전주 한옥마을 근처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은 잠시 잊어도 좋다. 이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당신은 구석구석 디테일하게 쌓아 올려진 이 이야기에 금세 스며들 테니까.


Dear Tyson,
오랜만에 연락하는 것 같네. 나는 요즘 겨우 집을 구하게 됐어. 알자스 로렌의 리드 스트리트에 말이야. 대문이 아주 멋진 집이야. 사실은 요한이 살던 집이지. 그 친구가 LA로 장기 출장을 가서 내가 그 집에 살게 되었어. 정원과 집을 수리해주는 조건으로. 아주 좋은 조건이지. 좀 멀긴 하지만 자네가 괜찮다면 집 수리를 조금 도와줬으면 하네. 오랜만에 만나서 못한 이야기를 하자고.
Zorg

*출처: @zorg_rotenbaum 인스타그램 계정

[1] 조르그(Zorg)는 27club이 만든 로텐바움의 페르소나인 가상인물이다.


전주 한옥마을 숙소 로텐바움(rotenbaum)


어둡게 침잠하는 분위기 속 사색에 빠지는 것이 어울렸던 웻에버와는 달리, 로텐바움은 거실과 부엌, 각각의 방과 심지어 욕실까지 벽면을 최대한 활용한 넓은 창을 통해 햇살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이 어울리는 공간이다. 27club은 웻에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로텐바움은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재건축에 가까운 대대적인 공사를 진행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사소한 것 하나까지 직접 손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 보일러 배관을 깔고, 벽을 쌓았다. 오래된 천장을 꼭 살리고 싶어 전부 갈아내고 앓아 눕기도 했다. 그렇게 27club은 열정과 집념으로 부산과 전주에 낯선 시공간으로 통하는 비밀스런 문을 냈다.


전주 한옥마을 숙소 로텐바움(rotenbaum)


완벽한 허구가 만드는 오리지널리티


관객이 해석할 여지를 여기저기 숨겨둔 영화는 볼수록 매력이 배가된다. 27club이 만든 두 개의 공간은 찬찬히 다시 뜯어볼 수록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지는 영화를 닮았다. 컨셉이 강렬한 두 공간은 마치 잘 꾸며진 영화 세트장 같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정말로 살았을 것 같은 실재감을 디테일로 전달한다. 음악, 책, 향 등, 공간을 기획하는데 영감을 주었던 요소들이 집 안에 자연스럽게 놓여 공간을 찾은 이 또한 이 무드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도록 한다. 시대적 배경과 자신들이 그려내는 컨셉과 무드를 충실하게 구현해 줄 빈티지 가구들로 공간을 채웠다. 스위치, 잠금장치, 손잡이 등 디테일에서 차별화되는 한 끗이 생긴다.


웻에버와 로텐바움엔 저마다 예술이 넘실대며 흐른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이 있고, 빼곡하게 꽂힌 LP와 사운드가 아름다운 턴테이블, 스피커가 있다. 눈 닿는 곳 어디에나 그림과 사진이 있다. 이것들은 이 집에 살았을, 혹은 살고 있을 인물을 입체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게 한다. 로텐바움의 가장 큰 방 책상에 제도기와 건축 관련 서적, 옷장 속 건축도면 같은 것들로 우리는 이 공간에 머물던 조르그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다.


완벽하게 만들어진 허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갖는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존재했을 법한, 순수한 결정체 같다. 그래서 방문객으로 하여금 단순한 숙박이 아닌 새로운 형식의, 아주 촘촘히 설계된, 디테일하고 밀도 높은 경험을 가능케 한다.


어쩌면 27club이 만든 공간은 숙소라는 속성보다는 그 자체로 완성도 높은 콘텐츠에 가깝다. 웻에버와 로텐바움이라는 자신들만의 색이 뚜렷한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콘텐츠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여행’에 나선다. 그리고 우리가 각자의 방식과 관점으로 공간을 향유할 때마다 한 편의 새로운 영화가 만들어지고, 우리는 낯선 주인공이 된다. 머무는 내내 어디에서도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귀한 시간들이 쌓인다.


부산 광안리 숙소 웻에버(wetever)


|  INTERVIEW

                                           

                                                                                                          - 27 club X the blank_ 에디터 김지영


Editor’s comment: 한번도 본 적 없는 영화가 공간이 된다면 이런 느낌일까? 웻에버와 로텐바움을 ‘창조’해낸 27club과의 대화는 한 편의 영화상영을 마친 후 듣는 감독의 코멘터리 같았다. 젊은 창작자들이 모여 만든 이 공간들은 협업을 통해 만들어낸 하나의 공동 예술작품이다. 27club에서 기획과 디자인을 맡고 있는 한규철, 제작과 시공을 총괄하는 손태엽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27club 한규철(왼), 손태엽(오)


Q. 27club은 어떻게 구성되었고 각자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요?

한: 저희 둘은 초중고를 같이 나온 오래된 친구예요. 졸업을 하고 나서 각각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함께 살다가 우연히 일을 같이 시작하게 됐어요. 드라마틱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요리를 전공해서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공간을 만드는 일에 더 흥미를 많이 느껴서 이 일을 시작했어요.


손: 저는 건축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건축을 전공하고 시공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설계로 방향을 틀고 시골로 내려가서 건축사무소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공간을 같이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았죠. 저희 둘 외에 촬영과 마케팅 쪽을 맡고 있는 친구를 포함해서 프로젝트 단위로 다양한 밀도로 함께 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모두를 27club의 크루라고 보고 다양한 형태로 협업하고 결합하는 구조예요.


Q. 유연한 방식의 결합도 인상적이에요.

한: 일을 대하는 방식도 유연해요. 제가 영화를 만들 듯 공간을 기획한다면 태엽은 공예처럼 공간을 만들고 찬웅은 마케팅을 사진으로 풀어내는 방식이죠. 특히 느슨하게 일하는 방식에서 네트워크는 큰 힘이 돼요. 친구들이 로고 제작이나 마케팅 등 여러 분야에서 선뜻 도움을 내어 줬어요. 서로의 역할이 필요할 때 흔쾌히 같이 작업하고 크레딧을 함께 가져가는 공동작업물의 형태가 되는 거죠.


Q. 부산과 전주에 각각 공간을 만들었는데요. 서울이 아닌 지역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한: 막연히 오래된 집을 고쳐보고 싶다는 생각 정도를 가지고 부산으로 정했어요. 공간을 서울에서 시작하는 것에는 부담이 있었거든요. 서울에선 모든 게 너무 빠르고 모방도 많이 일어나요. 지역 재생이라는 관점을 생각하게 된 것은 오히려 나중 일이고 오래된 집을 고치면 예산적으로 덜 부담스럽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했어요.


손: 부산으로 내려오면서 여러 군데를 가보면서 위치를 고민했는데 민락동이 마음에 들었어요. 관광지인 광안리와는 다르게 좀 노후한 공간이어서 해볼 수 있는 여지가 많을 것 같았죠. 바닷가와 가까운 위치나 동네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어요.


Q. 오래된 집을 고치는 과정은 새 집을 만드는 것과 맞먹는 노력이 든다고 하는데, 구조 안에서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점이 어렵기도 할 것 같아요. 어땠나요?

손: 웻에버는 일단 그 집을 찾는데 까지도 오래 걸렸고, 막상 오래된 집을 구하니까 저희 둘 다 전공자도 아니어서 모르는 것도 많았고, 직접 만들어보는게 처음이라 완성까지 거의 1년반 이상 걸렸어요. 일단 부딪치고 공사를 하면서 모르는 건 유튜브나 해외 서적을 보면서 공부하면서 만들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더라고요. 특히 로텐바움은 거의 다 부수고 시작해서 정말 재건축에 가까운 작업이었죠.


한: 저는 아무래도 기능보다는 미적인 관점에서 공간을 보는데요. 그러다 보니 우선 도화지를 만들어 놓고 시작해요. 벽 같은 구조물은 다 부수고 새하얀 도화지 위에 스케치를 그리기 시작하는 거죠. 공간의 스토리와 콘셉트 정도를 정한 상태에서 시공을 시작하고 태엽과 같이 이야기하면서 작업을 진행했어요. 영화 콘티를 짜듯이 장면을 캡쳐한 내용을 바탕으로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면서 완성된 그림을 함께 맞춰 나갔어요.


Q. 공간의 컨셉과 스토리가 독특한데 어떻게 기획을 하시나요? 공간을 만들면서 영감을 받은 다양한 콘텐츠들을 공간 이곳저곳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도록 배치한 것도 인상적이에요.

한: 저는 원래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인지 시나리오를 쓰듯이 공간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잠을 자는 숙소이지만 일반적인 숙소 느낌보다는 영화 세트장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누군가 진짜 살 것 같은 집, 그리고 거기에 살고 있는 인물을 상상하며며 시놉시스를 쓰죠. 실재하진 않지만 어딘가 존재할 것 같은 인물이길 바랐어요. 로텐바움에서는 그 대상이 조르그라는 이름을 가지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냈죠. 공간을 구상하면서 써두었던 텍스트들이 조르그를 이루는 바탕이 되고 있어요.


부산 광안리 숙소 웻에버(wetever)


Q. 그런 영감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잠깐 머무르고 가는 전시장이 아니라 숙박을 하면서 24시간을 머무는 공간이기 때문에 고려할 점이 많을 것 같아요.

손: 완성도에 있어서 완벽히 만족하기는 힘든 것 같아요. 디테일하게 하려고 하면 그만큼 시간과 자원이 많이 드는 거니까요. 디자인적으로 구현됐으면 하는 것들이 시공할 때는 굉장히 까다로워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 창문 뷰가 깨끗하고 예쁘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그러려면 방충망을 빼야 하는 거예요. 시공하는 입장에서는 벌레와 공기 순환 문제를 같이 고려해야하는 거죠. 결로도 신경 써야 하고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것이 많아요. 또 완전히 새로운 것을 구현하겠다고 그림을 가져오면 찾아볼 수 있는 레퍼런스도 없는 거죠.


Q. 시공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친절한 기획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작하는 과정이 꽤 까다로웠을 것 같은데요.

손: 저희는 사실 매일 싸워요. 그렇다고 단열이나 일조량 계산 같은 걸 다 하면서 그림을 그릴 수는 없다는 점은 이해해요. 우리에게 공간을 만든다는 건 예술적인 상상과 기술적인 구현 사이에서 우리 둘 사이의 협의점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기도 해요. 얘기를 하다 보면 양측에서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 드러나고 그 선에서 협상이 되는 것 같아요.


Q. 다른 건물이나 공간이 아니라 예술작품을 레퍼런스로 삼다 보니 따라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는 점이 오히려 27club의 공간을 남다르게 만드는 지점인 것 같아요.

한: 색깔이 독특한 변기나 오래된 라디에이터, 수전, 문 손잡이, 실링팬 전부 다 해외에서 어렵게 공수해온 것들이에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해외 경매 사이트를 확인해요. 보통은 한국은 배송을 안 해주는데, 그럼 이메일로 싸워서라도 받아냈죠. 손잡이 하나는 기껏 힘들게 샀는데 규격이 안 맞아서 계속 가지고 있다가 이번에 로텐바움 대문에 달았어요. 이렇게 가지고 있는 것들이 많은데 언젠가 다 쓸 수 있는 때가 오겠죠?


27club 손태엽(왼), 한규철(오)


Q. 공사나 운영을 하는 동안 지역에서 생긴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해요. 지역과의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 가고 계신가요?

한: 웻에버의 경우는 공사하는 건물에 아예 살면서 작업을 하니까 지역과의 스킨십이 특히 더 많았던 것 같아요. 1년 가까이 공사를 하다 보니 주변에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궁금해하시고 자꾸 들여다보시더라고요. 처음에는 멀리서 보시다가 점점 친해지면서 도와주려고 하시기도 했죠. 저는 장사가 잘되고 공간이 인정받는 것도 좋지만 동네 할아버지들이 반갑게 인사해주실 때 정말 기분이 좋고 자랑스러워요.


손: 웻에버 웰컴티로 제공하는 드립백도 공사하는 기간 중에 알게 된 부산의 카페 브랜드에요. 전주의 경우도 작업할 때, 회의하러 자주 갔던 까페의 원두를 로텐바움에서 쓰고 있죠.


웻에버 웰컴티(왼), 로텐바움 원두(오)


Q. 지역에서 공간을 만들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어떤 건가요?

손: 웻에버가 위치한 민락동은 재개발 이슈가 있어요. 그래서 장기계약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건물주분을 열심히 설득했죠. 처음엔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지금은 결과물이나 운영하는 모습을 보면서 응원을 많이 해주고 계세요. 이 주변에도 하나씩 가게가 들어오고 조금씩 무언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Q. 재개발이 진행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같은 건 없었나요?

한: 재개발 이야기가 나온 지는 사실 오래됐는데 된다고 해도 10년은 걸릴 것 같아요. 사실 저희는 재개발이 안 됐으면 좋겠어요. 사라져버리면 아까울 것들이 너무 많잖아요. 그런 마음에서 웻에버 같은 공간을 만들어요. 저희가 열심히 만든 공간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 주시는 분들이 생기고, 그러면서 동네 상권이 회복되고 인위적인 재개발 대신 자연스럽게 도시가 살아났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처음 오픈했을 때만 해도 골목에 가게들이 많이 없었는데, 지금은 상가들이 많이 들어온 것처럼요.


손: 골목에 새로운 콘텐츠와 브랜드가 들어오는 흐름이 계속되어서 재개발에 대항하는 새로운 흐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가뜩이나 요즘엔 메타버스가 유행하면서 공간도 온라인으로 들어가고 있어서 아날로그 공간이 더 필요하다고 느껴져요. 오래된 공간과 도시의 느낌은 확실히 다르잖아요. 저는 구도심과 신도심의 차이도 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아파트가 꽉꽉 들어선 새로운 도심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골목골목 걸어 다니며 같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거리를 지켜내고 싶어요. 그게 저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도시재생인 것 같아요.


Q. 그런 점에서 27club이 만든 공간들이 지역재생의 차원으로 연결되는 것 같아요.

한: 어쩌다 보니 지역 재생, 도시 재생 프로젝트라는 말을 듣고 있는데 사실 그런 말들이 어색하기도 해요. 어찌 됐든 그 도시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 저는 진정한 도시 재생이라고 생각해요. 대신 공공에서 할 수 있는 것과 민간에서 할 수 있는 것의 차이와 한계가 명확하죠.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공간이 있는 이 지역으로 오고 싶게 하는 것 까지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하는 작업을 자꾸 너무 거창하거나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어쨌든 숙소이기 때문에 그곳에 가게 되면 머물면서 그 도시를 구경하고 즐기다 가게 되잖아요. 저희 덕에 누군가가 부산이나 전주에 오고 싶게 되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부산 광안리 숙소 웻에버(wetever)


Q. 하나의 공간에서 계속 확장하기 보다 여러 지역으로 가는 방향으로 전개하고 계신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한: 하나의 팀이 한 지역에서 여러 개의 공간을 전개하는 것은 좀 위험해 보여요. 특히나 로컬과 분리된 형태라면요. 저희는 용기 있게 민락동이라는 새로운 땅에 들어가 깃발을 꽂은 것으로 그 지역에서 저희가 할 바는 다했다고 봐요. 이후로는 자생적으로 모이고 결합해서 지역의 콘텐츠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또 다른 지역을 찾아서 이렇게 계속 모험을 할 것 같아요.


손: 지역에서의 연대는 그 안으로 자연스럽게 녹아 드는 방식으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역에 처음 들어가게 되면 텃세로 힘들 수 있지만 반대로 그 안에 들어가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기도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저희 다음에 오는 팀들은 더 부드럽게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Q. 웻에버와 로텐바움을 완공하기까지, 지난 2년간 변화하는 스스로를 목도했다는 소회를 밝혔어요. 그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세요.

한: 시야가 많이 넓어진 것. 사실 고양이 사다리도 그렇고, 도시재생이나 상생 같은 키워드들도 처음부터 저희가 의도했던 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고, 저희 관심도 그쪽으로 움직이더라고요. 그러면서 성장하고 깊이가 생기는 것 같아요.


손: 경험을 통해서 배운 것들이 많아졌다는 것. 웻에버를 완공하고 운영하면서 피드백 받았던 것, 실질적인 생활 공간으로서 보완할 기능적인 부분 같이 실제로 운영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에 대한 경험을 익힌 게 로텐바움 제작에도 도움이 됐어요. 두 공간은 앞으로도 꾸준히 보완하고, 변화도 줄 예정이고요.


Q. 27 club과 각자의 다음 스텝은 어떻게 예정하고 있나요?

한: 장기적으로는 생각해 놓은 게 아직 없고, 세 번째 공간을 구상 중인 단계인데 지역으로는 강원도로 가려고 해요. 독채 형태가 아닌, 다른 그룹의 사람들이 같이 머무를 수 있는 구조로. 호텔처럼 각 방은 나눠져 있되 로비나 주방 같은 것을 공동으로 쓰는 형태죠. 컨셉적으로는 중동 쪽에 있는 외교 공관 같은 건물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제가 군대 생활을 중동에서 했는데 그때 봤던 건물의 느낌을 구현해보고 싶고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공간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저희 손에서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손: 다음 공간은 방법적으로는 리모델링을 넘어 전면적인 리노베이션으로 가고 싶고요. 아파트 대신 저희가 생각하는 공유주택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버려진 옛날 모텔이나 유스 호스텔 같은 곳에서 이런 것을 구현해보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공간을 찾아보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가구 제작이나 금속, 가죽 같은 공예 쪽도 배워서 스킬업을 해보고 싶고요. 기술자들이 모여서 작품으로 말할 수 있는 자리나 프로젝트에 참여해보고 싶어요.


Pioneer, 새로운 로컬리티를 만들다

민락동(광안리)의 오래되고 조용한 주택가에 웻에버가 문을 연 지 2년, 어느새 골목엔 카페와 칵테일바 등 ‘핫플’들이 생겨났다. 27club은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던 곳, 중심지에서 한 발 물러나 저물어가던 지역에 과감하게 조명을 밝힌다. ‘숙소’는 공간의 성질에 따라 필연적으로 주변 상권과 유기적으로 호흡할 수밖에 없다. 흐름으로 놓고 보자면 숙소가 잘 되면 주변 상권의 흥행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래서 27club은 용기 있게 선두에 서서 도전장을 내밀고, 새로운 로컬리티를 만들어 나간다. 이들의 다음 스텝에 호기심과 기대가 섞인 응원을 보낸다.


전주 한옥마을 숙소 로텐바움(rotenbaum)


- 글. 김지영, 이효진 에디터/ 사진. the blank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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