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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블랭크 Jun 08. 2022

의류 브랜드의 경계를 넘어선 일상 제안, 호텔 더일마

복합문화공간 호텔더일마 이야기

  무언가를 구분하지 않으려는 시도는 핵심이 아닌 서로 다른 영역의 끄트머리가 만나는 곳에서 대부분 시작된다. 기존과 차별화된 시도가 이뤄지는 곳은 주류나 본질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다른 속성의 영역과 가까이에 있어 새로운 중심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물리적으로 일어나는 곳을 찾고 싶다면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고 대도시 간의 지리 경계선 주변을 살펴보면 된다. 대규모 인구 수용과 활발한 상업용지 개발로 인해 빽빽한 도심의 모습이 서서히 보이지 않는 지역을 가늠하면 되는 것이다. 서울과 1기 신도시, 부산과 울산, 대전과 세종의 사이를 확대해보면 새로운 시도가 행해지는 공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중 서울 송파와 성남 판교 사이에 위치한 ‘호텔 더일마’는 패션과 식음료 문화의 결합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현재 호텔 더일마를 운영하고 있는 더일마는 경기도 성남을 기반으로 성장한 의류 편집매장 브랜드로, 그의 전신인 서현역 매장은 분당 신도시 개발이 본격화된 1998년에 문을 열었다. 더일마는 스타일링에 포인트가 될 만한 패션 아이템을 주로 선보이며 인기를 얻었고, 소수의 해외 브랜드 제품을 큐레이션 하는 젠더리스 편집숍으로 탈바꿈한 이후부터는 백화점과 쇼핑몰에 입점하며 사업 규모를 키웠다. 이렇게 유동인구로 가득한 도심 속에서 성장한 더일마는 스스로의 큐레이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2021년 7월, 새로운 복합 문화공간 호텔 더일마를 도시 외곽에 개장했다. 스스로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부르면서 자신이 소비자에게 제안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직 많이 남아 있음을 이야기한 셈이다. 다행히 그 메시지가 많은 사람들에게 가 닿았는지, 호텔 더일마는 매장을 찾는 사람들로 연일 북적인다.



  근사한 부티크 호텔처럼 꾸며진 이 복합 문화공간은 정육 가공작업장 겸 판매업소 용도로 지어진 조립식 건물을 리모델링한 결과물이다. 2018년, 더일마는 사무실 목적으로 건물을 매입했지만 법적으로 증축이 불가능해 본래의 목적과는 다른 쓰임새를 고안해야 했다. 밀도 높은 고민 끝에 더일마는 급작스럽게 닥친 위기를 브랜드의 경험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기로 했다. 단순히 옷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브랜드가 추구하는 무드를 음식, 서적, 가구, 음악 등으로도 전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런 이상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빈티지 가구 수입업체인 뉴 모던 서비스(New Modern Service)의 도움을 받았다. 더일마에게 나타난 이 조력자는 우연히 오래된 나무 질감의 바 카운터(Bar Counter)를 발견하고는 호텔 콘셉트의 공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더일마의 새로운 공간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일상에서 벗어난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다른 세상에 도착한 듯한 착각을 일으켜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렇게 호텔은 더일마라는 브랜드의 경험 확장성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다.



  나란히 줄지어 선 호텔 더일마의 아연 기둥을 지나 거대한 회전문을 밀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자. 밖에서 짐작했던 것보다 더 높은 층고의 실내공간이 펼쳐진다. 공간 브랜딩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바 카운터는 방문자를 맞이하는 리셉션 데스크(Reception Desk) 역할을 하고, 라운지 중앙에 심어진 벤자민 고무나무는 풍성한 잎을 자랑하며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식물 큐레이션 스튜디오 파도식물은 20m 이상 자라는 고무나무를 위해 박공지붕의 일부를 도려냈고, 덕분에 라운지에 있는 사람들이 실내에서 따스한 빛을 더 많이 느끼며 커피를 여유롭게 즐길 수 있게 됐다. 라운지에서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더일마의 패션 쇼룸과 리빙 편집숍이 있다. 패션 쇼룸에서는 호텔 더일마를 위한 자체 상품과 스타일링 아이템을 판매하고 있으며, 리빙 편집숍에서는 오브제 큐레이션 브랜드 39etc가 선택한 소품과 사진집 전문서점 이라선이 고른 책을 소개한다.


  라운지 방향으로 다시 걸어가면 가볍게 브런치를 먹을 수 있는 식사 공간이 나온다. 손님끼리 눈이 마주치는 빈도를 줄여 오붓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디자이너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의 조명이 곳곳에 매달려 있다. 식사 공간의 인테리어 또한 오래된 호텔의 한 구석을 연상시키듯, 벽체 마감재가 떨어져 나간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하얀색 페인트로 직사각형의 그리드를 그리고 중간마다 점박이 무늬를 찍은 모습이 마감재를 덧붙이기 위해 바른 접착제의 흔적을 떠오르게 만든다. 한편으로는 시간의 흔적을 연출하면서도, 최근 인더스트리얼한 분위기의 카페가 지적받는 위생 문제로부터 벗어난 대안을 제시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테이블 위에 올라오는 메뉴는 델리 겸 와인 바 먼데이모닝마켓과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그들은 국내 브런치 음식점에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브런치 메뉴를 찾다가 프랑스 가정식인 크레이프와 갈레뜨를 선택했다고 한다.



  호텔 더일마가 제공하는 여러 서비스는 겉으로 보기에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생뚱맞은 풍경처럼 보인다고 말할 수도 있고, 브랜드의 인지도 상승을 위해 기획된 일시적 공간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따로 떨어져 있는 요소를 한 데 모아 생경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정말 그 정도의 의미밖에 지니지 못하는 일일까? 오랜 시간 동안, 어쩌면 아직까지도 통상적인 업역 구분을 벗어난 공간적 시도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우리에게 낯설기 때문이다. 예전에 영화감독 봉준호가 한국 최초로 골든글로브 상을 수상하며 “자막의 장벽을 1cm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그의 말을 공간에 대입하면, 우리는 고정관념을 부술 때마다 주위의 공간을 풍요롭게 누릴 수 있지 않을까?


- 글. 김예람 에디터/공간 사진. the blank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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