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인데, 평양 측에서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한국여자프로골프대회의 개최와 중계방송을 끝내 허가했다. 북한 여자복싱의 프로 진출을 이끌어낸 평화자동차의 박상권 사장의 계속된 노력으로 복싱 경기는 계속 이어져 왔고, 더 나아가서 프로 골프대회로 까지 발전한 것이다. 통일 마라라톤 대회는 유엔사와 군사정전위원회의 합의 등 산적한 문제도 있었지만 내밀하게는 북측이 언더 머니(Under Money)를 과도하게 요구하여 당시 거액의 스폰서 협찬이 어려워 사실상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에서 남북통일기금을 지원해 주는 것도 어렵고, 언더 머니에 대한 영수증 처리의 곤란성 등으로 거의 성사 단계에서 포기했다. 마지막 남은 KLPGA(한국 여자 프로골프협회) 대회를 평양 근처 태성군에 있는 평양골프장에서 개최하는 것만 남은 것이다. 2005년 8월 28~29일 양일간 2라운드, 총상금 1억 원의 KLPGA대회가 평양골프장에서 개최되고, KBS 계열사인 KBS N이 중계 방송하기로 합의했다. 프로골프대회에는 늘 이벤트 행사로 프로암(프로 선수와 아마추어 선수의 혼합 경기) 대회를 메인 경기 전에 개최하는데, 이것도 허가가 이루어져서 남한의 기업인들을 대거 대동하고 평양골프대회가 성황리에 개최되게 된 것이다.
<평양 순안공항은 썰렁하게 북한 고려항공 비행기 몇 대 만이 구석에 서있었다.>
2005년 8월 26일, 드디어 반세기 이상을 가고 싶어도 맘대로 갈 수 없는 금단 지역인 평양을 방문한다는 설렘으로 잠을 설쳤다. 6시까지 인천 공항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5시에 일어나서 준비한 후 공항고속도로를 가벼운 마음으로 달렸다. 공항 로비에서 방북증명서와 비행기 티켓을 받고, 보딩 수속을 하는데 인천 평양 간 직항로라서 별도의 창구를 이용한다. 해외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서 골프채의 세관 신고도 생략하고, 보안검색과 출입국 신고도 직원 전용창구를 이용하였다. 여권도 필요 없고 다만 통일부 장관이 발행한 방북증명서에 스탬프를 날인하는 것으로 출국수속은 끝났다. 수십 차례 인천 공항을 들락거렸지만 이렇게 간편하게 끝나기는 처음이다. 면세 구역에서 보딩 시간을 기다리다가 현지에서 마실 생각으로 양주를 사려고 했으나 평양으로 가는 승객은 면세점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서점에서 Dan Brown의 "Digital Fortress"를 사서 평양에서 읽기로 했다.
<평양 순안공항 청사를 배경으로>
보딩을 알리는 안내 방송을 듣고 11번 출구로 가서 아시아나 OZ-1338에 탑승했다. 이번 방문단은 최초로 개최되는 KLPGA평양골프대회에 참가하는 여자 프로골퍼 30명과, 프로암대회에 참가하는 기업인 90명, 대회 중계를 담당하는 우리 방송사 직원, 기타 대회 주관사와 협회 관계자 등 130여 명이다. 모두들 최초로 개최되는 이 대회의 참가와 처음으로 평양으로 간다는 약간의 들뜬 표정이다. 일행 중 전에 평양을 방문한 인사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처음이고 이렇게 직항로를 통해서 가는 것은 처음인 듯하다. 8시 10분경에 활주로를 이륙한 비행기는 서해안 영공을 날아서 북측으로 들어간다. 직항로라 하지만 휴전선을 넘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서해안을 이용하다 보니 1시간 정도 비행시간이 걸린단다(직선 항로일 경우 30-40분 정도 걸릴 거리이다) 다른 국내선과 달리 비행기가 괘도에 오르니까 기내식을 제공한다. 국내선이지만 국제선처럼 대우를 하는 것이다. 식사 서비스가 끝나자마자 평양 순안공항에 착륙할 예정이란다. 창문으로 내려다 보이는 공항 주변의 모습은 야산과 밭이 펼쳐져 있고, 밭에는 주로 옥수수가 재배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