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저녁이었다. 해인이, 네 엄마가 남자친구를 데리고 온다고 하더라."
"처음이었지요. 여보."
옆에서 외숙모가 거들었다.
"집에서 여러 번 맞선 말이 있었지만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갑자기 남자친구를 데리고 온다고 하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놀라시며 좋아하셨지."
지하는 엄마의 일기장에 없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엄마 일기장에는 마치 꽁꽁 숨은 사람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나 봐요?"
"처음 우리 집에 다녀 가고 몇 번 더 봤었지. 집으로도 오고 따로 밖에서 나와 술도 한 잔 했고."
외삼촌은 지하의 궁금증을 이해한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2년 정도 연애하며 결혼 말이 오갔지. 해인이도 그 사람, 이지하도 바라고 있었고."
여기까지 얘기하고 외삼촌의 눈동자가 잠시 거실 유리창 너머 어둠 속을 헤맸다.
"그 일이 생기며 모든 것이 어긋났지."
"그 일이요?"
외숙모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일어섰다.
"지하, 배 고프겠어요."
주방으로 가던 외숙모는 고개를 더욱 숙이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출처/Pixabay>
"순식간이었다고 하더라."
잠시 숨을 고르고 외삼촌이 말을 이었다.
"방화인지, 실화인지 모를 불이 났다. 이지하, 그 사람 아랫집에서 불이 시작되어 위층까지 불이 옮겨 붙었다고 했다."
지하는 외삼촌의 말에 숨이 턱 막혔다.
"부모님을 연이어 일찍 여의고 홀로 살던 아파트가 몽땅 타버렸고 그 사람도 그 안에서 산화했다."
"빠져나오지 못한 거예요?"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현관 앞에서 발견됐는데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었지. 연락받고 달려갔는데 이미 늦었지."
지하는 이제 더 이상 외삼촌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엄마는 어떻게 되었을지. 그것만 걱정이 되었다.
"엄마는요?"
"해인이는 불길이 치솟는 아파트로 들어가려는 것을 겨우 주저앉혔는데 실려 나오는 그 사람의 주검을 보고 바로 모든 걸 놓아버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