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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가을바람 Aug 10. 2024

라벤더 향기 27

엄마의 김치

 "여보세요?"

 "퇴근하고 잠깐 다녀가라. 김치 좀 담가놨다."

 퇴근 시간을 조금 남겨놓고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김치, 있어요."

 "그래도 니가 좋아하는 거 좀 해 놓았으니 가져가."

 "알았어요."

내키지 않았지만 며칠 전부터 여러 차례 연락이 오는 것을 더 이상 뿌리칠 수 없었다.



 매일 기다리던 퇴근 시간이 고역이 되어버렸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한 손에 건강식품 쇼핑백을 들고 자신을 매몰차게 내쫓은 문 앞에 섰다.

참 망설이다가 현관벨을 눌렀다.

공동현관 비밀번호도 설치되지 않은 오래된 빌라는 현관벨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자 잠시 후, 문이 무겁게 열렸다.

 "왔니?"

 "네."

마치 남의 집에 처음 방문한 사람처럼 어색한 여울을 식탁이 있는 쪽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믹스 커피를 타서 여울의 앞에 내밀었다.

너무 허술한 대접 같지만 믹스 커피는 여울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김이 희미하게 나는 컵을 두 손으로 감싸고 호로록 한 모금 마셨다.



 가만히 여울을 보고 있는 엄마와 눈을 맞추기 어색해서 집안을 들러 보았다.

전과 달라진 것은 없는데 왠지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 보일러를 컬 때는 안 되었지만 바깥공기보다 싸한 공기가 집안에 가득 차 있었다.

오빠 내외와 조카들은 아직 귀가 전인지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저녁은 드셨어요?"

어색함을 깨려고 여울이 물었다.

 "아니. 아직.."

말을 다 맺지 못하고 여울을 한번 쳐다보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여울의 눈치를 살폈다.

 "무슨 일 있어요?"

 "채훈이가 아파. 많이 아파."




<대문 사진 포함 출처/Pixabay lite>




 김치는 핑계였고 여울의 돈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친구 소영의 남은 전세 기간을 채우는 동안 아끼고 아껴 내년에는 자신의 집을 구하려는 꿈을 산산이 부숴버려는 계책인 것이다.

여울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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