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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가을바람 Aug 11. 2024

라벤더 향기 28

가족이라는 이름

 복도에서 안간힘을 쓰며 버텼지만 방으로 끌려 들어와 또다시 무거운 문 안에 갇혔다.

분명, 옆 방 남자는 여울이 일곱 살 생일쯤의 아빠였다.

늦은 저녁 엄마가 담근 알록달록 김치와 보라색 라벤더 빛 원피스를 가지고 온 그날의 모습이었다.

생일날 아빠는 여느 때와 달랐다.

여울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밝은 모습이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한껏 가벼운 어깨를 펴고 큰 소리로 여울을 부르며 집안으로 들어서는 아빠는 너무나도 행복한 모습이었다.

라벤더 향기를 따라온 성안, 이 방은 무슨 비밀이 감춰져 있는 것일까.

성주와 차를 나누는 그 거실은 무슨 의미일까.






 잠깐만 볼 수 있을까?


여러 번의 부재중 전화에 이어 문자 메시지가 왔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엄마를 통해 운을 띄웠는데 아무 응답이 없자 오빠가 연락을 했다.


아파트 공동현관 앞에 있어.


여울은 오빠를 집으로 들이고 싶지 않았다.

소영의 배려로 살고 있지만 이 집은 오롯이 여울을 위한 공간이었다.

자신을 늘 고통 속으로 떠밀어 넣는 사람의 발자국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내려갈게요.



"미안해. 매번 부탁을 해서. 이번 한 번만 더 부탁할게. 달리 말을 꺼낼 가 없어."

세상을 사는 게 남한테, 특히 여울에게 폐만 끼치는 사람인데 주위에 사람이 있겠나 싶었다.

그래서 여울에게 매달려 가족이란 이름으로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이 더욱 진저리가 났다.

 "수술밖에 방법이 없대. 그러면 살릴 수 있대. 제발 한 번만 도와줘."

여울도 이렇게 삶이 간절할 때가 있었다.

어릴 적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랬고 아빠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 오빠라는 인간은 모두 외면했었다.



<대문 사진 포함 출처/Pixabay lite>




 "왜 항상 내가 도와줘야 하지? 나를 단 한 번도 가족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잖아. 그래서 나도 마찬가지야. 아빠도 없이 아무 기댈 곳도 없는 나를 가족이라서 내쫓았나?"

 "여울아, 미안해. 정말 내가 나쁘다는 거 알아. 하지만 재훈이는 아무 잘못 없잖아. 죄는 내가 받을게. 재훈이 좀 살려줘."

 "알겠어. 그 죄, 받으면 되겠네. 가족이 아닌 내가 선뜻 나설 일은 아니네."

여울은 매몰차게 돌아섰다.

그 순간, 여울의 머릿속에는 병실에 누워 있는 재훈이가 아닌 마지막 안간힘으로 허름한 빌라 현관에 쓰러져 있던 아빠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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