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달콤한 간식

고염(고욤나무의 열매)

by 봄비가을바람

초등 시절, 방학이면 여름에는 외갓집으로, 겨울에는 친가로 아니면 한 번씩 바꿔서 보내졌다.

보내진 게 맞는 것 같다.

아이 넷이 방학 때 한 곳에 있다는 건 엄마로서는 힘겨운 일이었을 것이다.

맏이인 나와 동생들 중 하나를 방학이 끝나기 전 날까지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오고 가는 날에는 막내 삼촌이나 서울에 올라와 있던 외사촌 오빠들이 담당했다.

오빠들이지만 엄마가 외가에서 막내라서 나이 차가 많아 지금껏 "오빠"라고 편하게 불러본 적은 없다.




<한 5년쯤 전에 아파트 단지 내에 고욤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 늦은 가을까지 몇 알이 매달려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겨울 방학에 시골은 밖으로 놀러 다니는 건 좀 어려웠다.

아이들이 많지도 않았고 춥기도 해서 집안에서 놀았다,

본래 집 한 채에 창고와 외양간이 있는 집이었는데 아버지가 나중에 내려오시려고 뒷집을 사서 담을 터 뒤채로 리모델링을 했다.

그야말로 집이 놀이터가 되었다.

숨바꼭질을 해도 한나절 지치지 않고 할 수 있었다.

쉽게 찾아지지 않으니 둘이서도 충분히 신났다.

시골집은 비밀을 간직한 숨은 장소가 많았다.

방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하나의 방 문이 다른 방으로 이끌었다.

본채에서 밖으로 나와있는 누마루는 꼭 베란다처럼 문이 달려 있었다.

요즘 집들처럼 여러 가지 짐이 있었는데 대부분 옛날 고서들과 자기류, 등잔 등 예전 생활용품들이 있어서 숨바꼭질이 시들해지면 소꿉놀이를 했다.




널따란 마당 끝 외양간 옆에는 할머니의 곳간이 있었다.

길쭉하고 무직한 쇠로 만든 열쇠로 철커덕 열리면 꽁꽁 얼린 홍시, 곱게 껍질을 벗고 하얀 분을 바른 말랑말랑 곶감, 곶감 껍질, 가을 한낮 할아버지 허리 아프게 주운 알밤, 아직 황토를 뒤집어쓴 고구마와 감자, 이웃 과수원에서 나누어준 사과,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할머니 표 식혜.

하지만 우리에게 곳간은 숨바꼭질 최적의 장소였다.

작은 몸이 숨기도 좋고 혹시 한참 동안 못 찾아도 먹을 게 많으니 꼭꼭 숨어 배 부르고 졸려 깜박 잠들었다가 동생이 울고불고 할아버지 손 잡고 찾아 나선 후에야 숨바꼭질이 끝났다.




곳간에 아무리 먹을 것이 많아도 최고의 겨울 간식은 고염이었다,

본래 고욤나무의 열매인데 할머니는 고염이라고 했다.

가을날 작고 귀여운 단지에 고염을 따다 채우고 뚜껑을 꼭 닫아놓았다가 겨울에 서로 엉겨 붙어 형체도 없어진 고염을 큰 숟가락으로 떠서 조금씩 할짝할짝 먹었다.

진한 곶감 맛에 곶감보다 부드러워 녹진한 엿처럼 끈적끈적하고 달큼한 맛이 자꾸 숟가락을 내밀게 했다.

"할머니, 더 주세요."

"안 된다. 너무 많이 먹으면 아침에 똥꼬 막힌다."

매일 딱 한 숟가락을 푹 떠주시면 아끼고 아껴 먹었다.

추운 겨울 찬 바람이 불면 고염이 생각이 나고 할머니가 보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할머니도, 고염도 볼 수 없다.




할머니는 엄마를 한 시도 못 쉬게 시집살이를 시켰다고 했다.

시골에서 방학을 보내는 건 4학년으로 끝이 났다.

그다음 해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된 할머니는 시골 살림을 정리하시고 할아버지와 올라오셨다.

추운 겨울을 여섯 번 지나는 동안 엄마한테 모질게도 하셨다.

달달한 고염을 잊을 만큼 할머니를 미워하게 하신 건 아마도 정 떼기를 하신 건 아닌 지.

하지만 찬 바람이 불어오면 어김없이 고염과 할머니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