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래지 않기를 바랐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지만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도 있다.

by 봄비가을바람


바래지 않기를 바랐다.




장마 보내고 여름빛 쨍쨍한 날

옷장 열어 열빛을 쐬었다.

작년 하늘하늘 한번 입은 원피스

3년 전 제법 돈들인 검은색 코트

5년 전 고운 사람이 전해 준 연핑크 스카프

10년 전 여동생이 은근슬쩍 넣어준 정장




한 시 두 시 셈을 하던 시곗바늘도 쉬고

시간 셈 다 세지 못 한 손가락으로

옷장 안에 묻은 바랜 시간의 찌꺼기를

긁어 내 품 속에 안았다.




옷 하나에 시간을 바라고

고운 색 위에 그대를 향한 엷은 웃음

오래오래 바래지 말라고 꾹꾹 눌러

바라고 바라는 원(願)을 담았다.




시간이 날아가고

색이 바래도

온기 안고 사랑 품었던

찰나의 그날 그 빛은

바래지 않기를 바랐다.




# "바래다"와 "바라다"

의미가 다른 두 말이 발음과 맞춤법으로 헷갈리는 일이 많아 쓰게 된 시입니다.

"바라다"는 원하다, 소망하다의 의미이고 "바래다"는 "색이 변하다, ", "낡고 해지다"의 의미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바래지는 것이 더 많겠지만 바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을 바라며 적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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