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들어가는 문

똑똑! 누구 계신가요?

by 봄비가을바람

제 자신조차도 제 마음을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스스로에게도 말 못 할 일이 무엇일까요.

아직 여전히 아프거나 아픈 이유를 외면하고 싶을 때가 아닐까 합니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습니다.

글눈이 트이고 글자가 쓰인 것은 무엇이든 읽고 또 읽었습니다.

처음 제대로 된 책은 이해인 수녀님의 산문집이었습니다.

"노마"라는 서너 살 아이의 하루 일상과 생활 속 모험이 담긴 글이었습니다.

아마도 어린이의 순수함과 그것을 닮고자 하는 어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려는 이해인 수녀님의 배려가 아니었을까요.

그 책이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자라며 책 읽기의 시간이 우연히 의도치 않게 주어졌습니다.

초등 5년에 담임 선생님께서 책 읽기 습관을 키워주시기 위해서 교무실 책장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책장 사이 작은 틈에 앉아 저학년 도서는 매 쉬는 시간에 한 권씩 읽었습니다.

고학년 도서는 등교하자마자 교실로 가져와 틈틈이 읽어 하루 한 권을 읽었습니다.

지금도 두근거리는 추리 소설에 입덕한 것이 그때였습니다.

<죽음의 T자>, 제목으로도 서슬이 퍼런 추리 소설의 가장 하이라이트인 범인이 현장을 드나드는 절묘한 방법에 따라 발자국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애거사 크리스티.

거의 모든 작품을 탐독하며 생각의 힘을 키웠습니다.



초등 6년에는 책 읽기가 일상이 되었고 생각의 키도 크며 쓰기의 힘도 길러졌습니다.

글짓기 대회 학교 대표 선수를 뽑기 위해 짓기부가 만들어지며 기초부터 쓰기의 기술을 익히고 자신의 글쓰기가 이루어졌습니다.

중고교 시절, 있는 듯 없는 듯 교실에만 있는 아이를 제대로 알지도 못했습니다.

"야, 너 대단하다."

존재를 알린 것도 글쓰기였습니다.

말이 없는 사람이 생각도, 마음도 없는 것이 아닌데 마치 그런 것처럼 간주해버릴 때가 있습니다.

"너 다시 봤다."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의외다."

사실, 보는 사람이 그렇게 봤을 뿐 나는 나였을 뿐인데 알입니다.



글쓰기가 나를 드러내는 전부였는데 그마저 스스로 외면했습니다.

자신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은 무너지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마음의 문을 닫은 자신의 얼굴은 웃고 있지만 늘 울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가 볼 때는 늘 평안하고 즐거운 모습이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는 나는 울고 있었습니다.

"제발 문 좀 열어. 아님 소리라도 쳐!"

귓등으로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는 결국 터져버렸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머릿속 신호는 까만 화면에 꺼진 것도 커진 것도 아닌 휴대폰처럼 어찌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서비스센터에서 나오며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은 휴대폰을 보며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모든 것이 멈춘다고 해도, 남길 것도 아쉬울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억울했습니다.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니야. 결혼을 안 했으니 남편도 없고, 아이도 없고, 아직 강사라 제대로 뭔가 남은 것도 없고 그나마 퇴직금이 있네. 마지막 길 민폐는 안 되겠네."

에이, 그냥 살아.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은 한번 닫힌 문을 열기 힘듭니다.

그 좋던 글쓰기도 멈추었습니다.

쓰면 쓸수록 보태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더 많습니다.

지우고 빼다 보면 덩그러니 날짜만 남습니다.

그럼 그 날짜마저도 지웁니다.

무의미한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멈추었습니다,






http://kko.to/OD85tOge1

<출처/멜론, 먼데이키즈 채널, 가을 안부 2017>



제 마음을 두드린 노래입니다.

글문을 열어 글쓰기를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기대는 것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하나 정리를 해야 하는데 일을 벌였네."

친구들에게 덕질을 고백할 때 한 말입니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입니다.

글은 자신이 쓰지만 결국 다른 이를 위해 쓰는 것입니다.

혹시 나와 같다면 제 글이 마음의 문을 두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 넘어질 테지만 그래도 같이 한번 더 살아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