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삶은 기다림이다.

by 봄비가을바람

방학이 되어 버스 배차 시간이 더 늘어나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연차가 많아져서 익숙해진 기다림이지만 요즘 같은 폭염에는 좀 힘들다.

버스 정류장은 늘 마음이 바빠서 그런지 시간을 재촉하는 조급증도 더 심해진다.




<출처/Pixabay >




삶 속에서 기다림이 빠지면 재미도 덜 하고 사는 맛도 덜 하지 않을까 싶다.

"어! 문에 걸쇠를 해 놓으셨네요."

일 때문에 방문한 집에서 들어올 때에는 몰랐는데 나갈 때 보니 흰색 플라스틱 걸쇠를 해 놓았다.

"아기가 문을 열 수 있어요."

제법 손 힘이 생겨 미닫이 문을 열 수 있나 보다.

"아빠가 퇴근할 때쯤에 문을 밀어서 열고 현관문 앞에서 기다려요."

삑삑 삐비빅!

소리로 아빠의 귀가를 알아챈 아기는 아빠와 감격스러운 포옹을 준비한다.

그런 딸의 마중을 받는 아빠는 세상을 다 는 기분이 들 것이다.

이제 12개월이 된 아기도 아빠 퇴근 시간에 맞춰 기다릴 줄 아는 걸 보면 기다림의 능력은 태생부터 생겨난 것일까.



여동생 둘이 차례로 결혼을 하고 조카들이 하나둘씩 태어날 때마다 입덧 대기조와 산바라지를 맡아해야 했다,

둘 다 요란하지는 않았는데 입덧을 멈춰줄 엄마 음식을 해 줄 있는 사람이 나뿐이니 어쩌면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산바라지는 산후조리원이나 각자 시어머니의 도움으로 삼칠일을 지내지만 출산 후 몸조리는 그 이후에 더 필요하다 보니 시어머니의 부재에는 뛰어가야 하는 일이 빈번했다.

서로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나 가끔 서글프고 "왜 나만"이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첫째 동생이 첫아이를 낳았을 때였다.

밤새 진통을 하다가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에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신생아실 유리문으로 갓 세상으로 나온 신생아를 보는 순간 "이제 우리 다음 세대가 시작되었구나."

하는 거창한 생각이 들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 큰 일을 해낸 동생 내외가 위대해 보이기까지 했다.

산모가 누워있는 방은 9월이 시작되었지만 후끈후끈 숨이 막힐듯했다.

10개월을 고생하고 애쓴 기다림을 한순간에 벅찬 감동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 동생은 지난밤 진통과의 사투를 늘어놓았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못 하겠지만 아무튼 뭔가 대단한 것은 분명했다.

그런 동생이 상한 데는 없는가 살피는데 매부가 동생 엄지발가락 끝에 눈곱만큼 묻은 피를 닦아내고 있었다.

"나는 못 봤는데."

결혼 전 배앓이를 자주 하던 우리 자매는 밤새 배 쓸어주고 등 두드려주고 손 주물러 주었었다.

보기만 해도 어디가 불편한지, 아픈지 다 알았는데 이제는 그 공이 다른 곳으로 넘어가버린 것 같았다.

탄생의 능력을 발휘한 두 사람의 힘은 막강했다.

한편으로는 곁에 믿을만한 구석이 있다는 것이 안심이 되었다.

든든하고 커다란 지붕인 엄마를 잃은 우리는 각자 견뎌내야 하는 슬픔 때문에 남매들이 함께 나눌 수는 없었다.

같은 슬픔을 나누는 일은 오히려 배로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진하고 쓴 커피 맛을 제대로 알게 되면 진정한 커피인이 되는 것처럼 슬픔을 견디고 기다림에 익숙해지면 슬픔도 달게 느낄 있을까.

기다림이 상처를 덮고 엷게 하는 것뿐 없애지는 못 할 것이다.

하지만 기다림이 앞으로의 시간을 위한 면역은 만들어주지 않을까.

견디고 기다리면 오늘 같은 무더위도 곧 가실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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