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날이 흐리더니 점심을 먹고 나니 베란다 창문을 빗방울이 두드리기 시작했다.
믹스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들고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빗줄기를 하나둘 세다 보니 비 오는 날의 교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야, 이 우산 쓰고 가."
"응!? 너는 어떻게 하려고?"
왜 같이 우산을 쓸 생각은 못 했을까.
시간이 지나 그때를 생각할 때마다 머리끝이 찌르르 서는 게 후회와 부끄럼이 함께 뜨거운 입김처럼 훅 올라온다.
"괜찮아."
그리고 그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날아가듯 사라졌다.
"다녀왔습니다."
"비 안 맞았니? 우산을 가지고 가려고 했는데 손님들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아빠 혼자서는 안 되겠더라."
"네. 괜찮아요."
점심시간을 좀 지났지만 늦은 점심을 먹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나 보다.
역시 비가 오는 날에는 칼국수와 수제비가 생각나기 마련이지.
거실에 서서 한참 비가 오는 것을 보니 칼국수와 수제비가 생각이 났다.
머그잔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초록색 우산을 집어 들었다.
멀지 않은 거리이니 휴대폰만 있으면 될 것 같아서 입은 채로 집을 나섰다.
물기가 흐르는 비 오는 거리에는 이제 막 점심을 먹은 직장인들이 우산과 커피를 들고 총총히 회사 건물 안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진작에 나올 걸 그랬나.>
점심시간에 바빠서 허둥댈 연차는 아니지만 이제는 연세가 많아서 좀 힘에 부치는 것 같아 그만두었으면 하는데 부모님 생각은 또 다른 것 같다.
"저, 왔어요."
손님이 휩쓸고 간 가게 안은 멸치 국물 냄새가 뒤섞여 후끈한 열기가 달아올랐다.
가게 안을 둘러보니 점심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짐작이 되었다.
"뭐 하러 나와?"
"칼국수 생각나서 나왔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행주와 쟁반을 들고 손님이 나간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놔둬. 이제 거의 다 했어."
엄마의 잔소리 같은 걱정을 들으며 일찍 나오지 않은 걸 후회했다.
<대문 사진 포함 출처/Pixabay>
"칼국수 먹을래?"
"네."
테이블 정리가 다 되고 엄마가 칼국수를 끓이려고 다시 밀가루 반죽을 꺼냈다.
괜찮다고 하는 것보다 맛있게 먹는 걸 엄마가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앉아서 받아먹기로 했다.
비는 좀 더 올 모양인지 빗방울이 줄지 않고 오히려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서 오세요."
아버지의 인사를 받으며 우산도 쓰지 않은 남자 손님이 들어왔다.
"저, 칼국수 되나요?"
"아, 네. 이쪽으로 앉으세요."
남자는 아버지의 안내에 따라 안쪽 테이블에 앉았다.
"칼국수 하나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는 주문을 받고 반찬을 챙기려고 쟁반을 들었다.
나는 얼른 쟁반을 받아 들고 묵은 김치와 겉절이, 무 생채를 접시에 담고 물병과 컵을 쟁반에 올려 들고 테이블 쪽으로 갔다.
반찬을 하나씩 올려놓고 물병과 컵을 손님 앞에 놓았다.
잠시 후, 칼국수가 나오고 김과 깨를 뿌려 손님 앞에 놓았다.
"칼국수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손님은 칼국수를 앞에 두고 가만히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조심히 먹었다.
또 잠시 가만히 칼국수 그릇을 보더니 은은한 미소를 입술에 가득 머금었다.
엄마, 아버지, 그리고 나는 음식 크리에이터나 음식 블로거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그 손님이 하는 모습을 조용히 보았다.
"똑같아요."
"네!?"
"제가 어려서부터 먹던 칼국수와 맛이 똑같아요."
"아, 네."
별 희한한 손님이다.
엄마의 칼국수를 이렇게 말한 사람이 꽤 있었지만 대부분 연세가 많으신 분이었다.
손님은 칼국수를 먹으며 정말 맛있는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너도 어서 먹어."
엄마가 칼국수 한 그릇을 내왔다.
본의 아니게 그 손님과 마주 앉는 테이블이라 좀 그랬지만 칼국수 국물 한 숟가락을 먹자 그런 생각은 싹 달아났다.
연이어 면을 후루룩 먹는 모습을 보고 그 손님이 가만히 보더니 한 마디 했다.
"정말 옛날 그대로지?"
멍하니 보는 나를 두고 그 손님은 이제는 미소가 아니라 싱글벙글 웃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