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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가을바람 Jun 02. 2024

라벤더 향기  8

느닷없이 온 이별

이불을 목으로 끌어당기고 왼쪽으로 모로 누웠다.

잠자리에 편한 트레이닝 바지에 후드티로 머리카락을 감싸 완벽한 새우 자세를 만들고 조금씩 잠으로 빠져들었다.

살랑이는 커튼이 눈앞에서 안개로 덮여 희미하게 사리지고 있었다.



 순간, 코끝으로 바람처럼 라벤더 향이 스쳤다. 발끝으로 조금씩 땅을 디디며 걸었다.

손을 뻗어 손가락 사이로 지나가는 라벤더가 코끝에 향기로 묻었다.

후드티의 끈을 느슨하게 풀어 뒤로 젖히고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렸다.

한 올 한 올 라벤더 향으로 트리트먼트를 하고 바람에 날린 머리카락이 코끝과 입술을 간지럽혔다.



불면의 이유가 내 안에 있음을 알면서도 밖에서 탓을 찾아 라벤데 오일 덕분에 잠이 들었다.

하지만 여울은 라벤더가 활짝 핀 언덕을 헤매는 것이 좋지는 않았다.

불면의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뿐이었기 문이다.

불면의 해결책이 더욱 불면을 부추기고 있다.

잠이 들면 영락없이 이 라벤더 언덕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꿈속이 조금씩 익숙해지자 머릿속이 맑아졌다.

자신이 현실에 있는 것으로 착각마저 들었다.

엄마, 오빠, 언니 그리고 아버지.

언제나 가족 안에 속하지 못하는 여울의 손을 놓지 않은 단 한 사람.

아버지는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 양 늘 미안하다고 했다.

고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집, 더욱 차가운 기운이 몸속으로 파고들어 단 하루도 편히 쉬지 못했다.

삐딱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팔짱을 낀 채 앉아있는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까지 해야 했다,

여울이 태어나고 후우울증으로 모든 것을 놓아버린 엄마를 이해해 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어깨에 온 가족이 매달려 다그치는 모습에 여울은 차라리 라벤더 언덕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여울만이라도 아버지의 힘을 덜어드리려 무던히도 애쓰며 살았다.

온갖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버티고 버텼다.

 "여울아, 몇 시오냐?"

아버지의 느닷없는 전화에 여울이 불안으로 심장이 널을 뛰었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다. 그냥 해 봤다. 조심히 다니고. 밥 챙겨 먹어라. 끊는다."

몰랐다.

여울은 그 전화가 아버지와의 마지막 통화라는 것을.




<대문 사진 포함 출처/Pixabay lite>





 "오빠, 집에 좀 가 봐."

 "왜? 나 일 있어."

 "아버지가 이상해. 좀 가 봐."

올케가 출산한 후부터 아예 집으로는 발걸음을 안 하고 손 벌릴 때만 찾는 오빠를 다그쳤다.

불안을 씻을 수 없어 허울 좋은 백수로 사는 오빠라도 집으로 보내야 했다.

  "아이, 싫어. 네가 가."

 "나, 오늘 마감이라 시간을 낼 수 없어. 제발 좀 가 봐."

 "몰라."

신경질적으로 끊는 전화를 재발신을 눌렀지만 오빠는 받지 않았다.



 여울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삐리릭!

현관이 열리고 여울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버지가 현관에 어지럽게 널린 신발 위에 엎드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타닥타닥 기운 빠진 발자국 소리가 여울의 등 뒤에서 멈췄다.

엄마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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