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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가을바람 Jun 08. 2024

라벤더 향기 9

들을 수 없는 목소리

똑똑! 똑똑!

어디선가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여울은 방 한쪽에 놓여 있는 침대에 누워있다가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잠이 들다니.

침대 끝에 앉아 소리가 나는 쪽을 살폈다.

똑똑!

또 한 번 소리가 났다.

창문이 눈높이보다 높아 밖을 살필 수도 없다.

창문틀 아래를 지나 벽에 귀를 대고 침대 반대쪽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똑똑!

바로 옆 방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여울도 벽을 두드리려고 했지만 마땅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

잠을 자던 중이었으니 신발도 신지 않았고 주먹 쥔 손은 아프기만 하고 소리는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았다.

방 안을 둘러보던 그때, 침대 옆에 놓인 은으로 된 물컵이 눈에 들어왔다.

똑똑!

여울도 벽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똑똑!

그러자 반대편에서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있어. 나 말고 나처럼 여기에 온 사람이 있어.>

 하지만 벽을 두드리는 것뿐 말을 할 수도, 얼굴을 볼 수도 없었다.

 그때였다.

여울의 방 앞으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지고 문이 살며시 열렸다.

 <식사하시지요.>

아까 여울을 이 방으로 안내한 사람이 빵과 물병을 들고 들어왔다.

 "저, 돌아가고 싶어요. 돌아가야 해요."

 "때가 되면 성주님께서 찾으실 겁니다."

 "그럼, 밖에라도 나가게 해 주세요."

 "그건 안 됩니다. 성주님이 여기에 머물라 명하셨습니다."

안내인은 더 이상 전할 말이 없다는 듯 가볍게 목례를 하고 나가버렸다.

철커덕!

그리고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빵을 한 조각 떼어 오물오물 씹었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아무 맛도 없네.》

여울이 퇴근 시간을 서둘러 사 온 추어탕을 한 숟가락 뜨던 아버지는 입맛이 없다면 더 드시지 않았다.

금요일 업무 마감으로 정신없는데 전화와 메시지로 사 오라고 해놓고 결국 한 숟가락밖에 안 드셨다.

 《순댓국이 먹고 싶네.》

며칠 전부터 아버지는 자꾸 뭔가 먹고 싶은 것을 이야기했다.

여울의 귀가 시간을 기다리고 텔레비전을 켜 놓고 무심히 앉아서 생각은 먼 곳으로 가 있었다.

퇴근을 서두르고 있을 때쯤 언제나 메시지가 왔다.

 "언제 오냐?"




<대문 사진 포함 출처/Pixabay lite>



 여울은 장례식장 주차장 구석에 있는 화단 난간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아서 지난 휴대폰 메시지를 보고 또 보았다.

마지막 통화에서도 여울의 심장을 흔들었던 그 말.

 "언제 오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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