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비가을바람 Jun 09. 2024

라벤더 향기 10

빈 방

 잠을 자려고 누워도 눈은 더욱 말똥말똥하고 생각은 시간을 둘둘 말았다가 펼쳤다 했다.

여울은 그 시간 속에 늘 같은 자리에 웅크리고

있는 자신을 끄집어내려고 했다.

옷깃을 잡고 손목을 잡아끌어도 꼼짝하지 않는 자신에게 수없이 소리치고 다그쳤다.





<대문 사진 포함 출처/Pixabay lite>





 "어서 여기에 네 이름 적고 인감 찍어."

오빠가 내민 <상속재산분할협의서>를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보듯 시선을 자꾸 피했다.

 "빨리 해."

흰 종이 위에 새겨진 글자들은 여울을 이 집에서 내몰고 있었다.

아버지가 현관 앞에서 쓰러져 상속인들 중 누구에게도 구조를 받지 못하고 삶의 마지막 최선까지도 거부당한 채 스러진 이 집의 상속인은 엄마로 하고 모든 상속인이 동의한다는 내용이었다.

여울은 망설이다가 주춤주춤 이름을 적고 인감을 찍었다.

그러자 오빠는 기다렸다는 듯이 주섬주섬 서류를 모으고 여울을 향해 한 마디 못을 박았다.

 "그리고 너, 방 빼야겠다. 그 방은 본래 네 방도 아니잖아. 내가 살림을 나기 전에 내 방이었으니까. 이제 다시 내가 그 방 쓸 거야. 참, 아버지 방은 우리 애들이 쓰기로 했다."

그런 후, 챙긴 서류를 들고 올케한테 카드를 받아 들더니 밖으로 뛰어 나갔다.

멍하니 그 뒷모습을 보고 있던 여울은 뒤돌아 엄마와 올케를 보았다.

뭔가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두 사람은 여울이 쏘는 화살을 피해 슬그머니 엄마 방으로 함께 들어갔다.



 여울은 눈물도, 생각도 멈추었다.

역시 이렇게..

더 이상 생각을 이어가면 무너질 것 같았다.

아버지와의 사별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올 것이 온 것이다.

여울은 아버지의 건강이 나빠지며 자신의 처지도 함께 염려가 되었다.

이런 일을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정말 그런 일이 눈앞에 닥쳤다.

우선, 머릿속을 차갑게 얼리고 자신의 거처부터 마련해야 했다.



 여울은 전화 목록에서 이름을 하나 찾아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그리고 옷장 안에 있는 많지 않은 옷과 책상 위에 있는 노트북, 몇 권 없는 책, 배터리 충전기를 캐리어 안에 넣고 신발장에서 운동화 한 켤레와 구두 두 켤레를 쇼핑백에 넣었다.

이렇게 된 이상 더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머뭇거리고 주춤하다가 여울에게 그나마 남은 것까지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여울의 휴대폰에 메시지 알림이 왔다.



 빌라 공동현관 앞에 친구 소영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되었네."

여울의 가방을 받아 들고 소영이 앞장섰다.

그리고 세워 둔 차에 가방을 실었다.

"가자."

소영은 조수석 문을 열어 여울을 태웠다.

여울이 차에 오르고 막 출발하려고 할 때였다.

저만치 한껏 신난 오빠의 어깨가 춤을 추며 빌라로 들어가고 있었다.





계속..


 





이전 09화 라벤더 향기 9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