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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닮다 Aug 26. 2022

16. 담배 피우는 엄마


 스물셋, 어느 날 직장 동료 언니와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언니가 내게 물었다. 


 "미주야, 언니 담배 피우는 거 별로지?"


 뜨끔, 그동안 말을 하진 않았지만 아주 많이 별로였다. 나도 흡연자이긴 하지만 그 언닌 아이가 둘이나 있는 아이 엄마였고 꽤 골초였다. 언니의 물음에 나는 '아니, 애들 앞에서 피우는 것도 아닌데요 뭐' 하고 관대한 척했지만 사실 난 '담배 피우는 엄마'인 언니를 좋게 보지 않았다. 


 '그래도 애 엄만데 담배는 좀 그렇지 않나? 나는 나중에 결혼하면 끊어야지.'


 인간은 망각의 동물, 직접 겪어봐야 아는 동물이라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나는 나중에 ~하지 않을 텐데'와 같이 미래에 대한 섣부른 확신을 가지면 안 된다. 

 나는 내가 '담배 피우는 엄마'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역할을 꽤 잘하리라 생각했다. 아니, 행여 내가 '좋은 엄마'가 되진 못할지언정 설마 하니 담배를 끊지 못하는 엄마가 되리라곤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사람들은 길을 걷다 떼를 쓰는 아이와 그 옆에서 쩔쩔 매고 있는 부모를 보면 '애 하나 제대로 케어 못하고 뭐 하는 거야? 나는 저렇게 떼쓰는 아이로 키우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한다. 그와 반대로 공공장소에서 아이를 엄하게 혼내는 부모를 보면 사람들은 또 이렇게 생각한다. '애를 너무 다그치네. 혼내려면 집에 가서 혼내야지, 뭐 이런 곳에서.. 나는 유연한 부모가 되어야지.' 사람들은 남의 일이라고 매우 쉽게 이야기하고 남의 일에 '자신'을 빗대어 미래를 고민 없이 확신한다. 나도 고민 없이 확신하는 사람 중에 하나였고 지금은 그때 확신한 미래에서 한참 벗어나 살고 있다.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 엄마, 잔소리하지 않는 엄마, 올곧은 엄마, 담배 피우지 않는 엄마' 

 내가 함부로 확신한 내 미래는 보기 좋게 예상을 빗나갔다.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렸던 육아와 결혼은 현실과의 괴리가 엄청나게 컸고 내가 확신하던 것들은 모두 추상적인 엄마의 모습이었다.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너그럽고 관대하며 올곧은 엄마라는 것은 모두 추상적인 개념에 속하지만 담배 피우는 엄마는 말 그대로 '담배를 피우는 행위' 그 자체로 생각을 했기에 행동만 통제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행위 자체를 모두 끊어냈으면 될 일이다. 그럴 수 있었다면 나는 지금 '추상적인 엄마'와 '행위하는 엄마'라는 이상한 변명들을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통제하지 못하고 행위하는 엄마, 그게 지금의 나다.

 

 큰 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퇴근을 하고 돌아온 내게 안겨 입을 맞추더니 날 빤히 바라보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엄마한테서 아빠 냄새 나."

 처음엔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하자 아이가 내게 다시 말했다. 

 "엄마도 담배 피워? 엄마한테서 맨날 담배 냄새 나." 

 아이쿠야!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갓난쟁이 일 때는 행여나 남편 몸에 베인 담배냄새라도 들이마실 새라, 아이를 낳고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을 땐 행여나 아이 옷에 냄새가 배길까 퇴근 후 뿌리던 향수도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뒤엔 아이 앞에서만 피우지 않는다면 괜찮을 것이라는 내 생각은 아주 큰 오판이었다. 아이는 크면 클수록 더욱 예민해지고 이젠 물을 수도 있게 된다. 행위 자체를 하면서도 아이의 입에서 나올까 봐 가장 무서운 그 말. 


 "엄마도 담배 피워?" 


 그 질문을 받는 것이 그렇게나 무서우면서도 왜 나는 여태껏 아이가 크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나는 아이에게 딱 잡아떼고 이야기했다. 


 "아니야, 아빠한테서 나는 냄새 아니야? 엄마는 담배 안 피우는데 담배냄새가 왜 나~" 


 평소엔 하지도 않는 오버스러운 표정까지 지어가며 아이를 안심시켰다. 행여나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아이의 입을 통해 '우리 엄마는 담배 피운다'는 말이 튀어나올세라 아이에게 나는 열심히 변명을 해댔다. 그러면 그럴수록 방 안에 앉아있던 남편의 얼굴도 덩달아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 얼굴 위로 '그러게, 끊으랬잖아!' 하는 분노의 말풍선이 그려지는 듯했다. 

 몇 번이나 금연하라는 남편의 권유에 '너 끊으면'이라는 말로 나의 흡연을 정당화했다. 내가 나를 안심시켜 놓으면 뭐하겠는가, 정작 아이의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올까 봐 매번 조마조마한 것을. 

 아이는 한 해 한 해 커 갈수록 엄마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엄마의 말을 믿었던 아이도 점차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변명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수록 엄마에 대한 신뢰까지 바닥을 쳐 내렸다. 내가 숨기고 싶어 했던 것은 '흡연자인 엄마'였지만 그것을 숨기기 위해 간과했던 것은 '거짓말을 하는 엄마'였다. 

 

 요즘 아이들은 내가 자랄 때보다 훨씬 더 어린 나이에 훨씬 더 많은 교육을 받고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한다. 매달 한 번씩 소방대피 교육을 받고, 2주에 한 번씩 각 연령 수준에 맞춰 성교육을 받으며, 나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었을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관해 한 달에 한 번 꼴로 영상교육을 듣는다. 아이들의 집중력은 아주 짧기에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주 임팩트 있는 수업을 받게 된다. 보통 노래와 율동이 섞인 안전송, 소리로 자극을 주는 호루라기 부는 법 등. 

 큰 아이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는 우리 몸에 해로운 물질들(?)에 관한 노래를 내 앞에서 흥얼거릴 때도 있었다. 왜 그런 노래를 내 앞에서 불렀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음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노래 가사는 또렷하게 기억난다. 

 

 '나는 담배냄새가 싫어요. 나를 위해 그만둬주세요.' 


 아이는 나에게 경고를 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작년 봄쯤, 2학년이 된 아이가 내게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했다. 


 "나 엄마 담배 피우는 거 다 알고 있어. 엄마 가방에 담배 있는 거 봤거든."


 아이의 눈빛은 몇 해 전처럼 어설픈 거짓말로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주 단호했고 확신을 가지고 있는 말투였다. 감추고 감추며 혹여나 시어머님께 아이가 이야기 하진 않을까, 학교에 가면 이야기하지 않을까, 나는 그 상황에도 그런 생각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주 뜻밖이었다.


 "엄마가 숨기고 싶어 하는 거 같으니까 얘기하진 않을게. 근데 나는 엄마가 담배 안 피웠으면 좋겠어."

 

 이젠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아이의 손을 붙잡고 어색하게 웃으면 물었다. 


 "... 왜?"


 나의 물음에 아이는 마치 나에게 확답을 받은 것이 못내 뿌듯한 듯 입을 앙 다물었다가 다시 이야기했다. 


 "담배는 몸에 좋지 않아. 아주 해로운 거래. 일찍 죽을 수도 있다고 했어. 나는 엄마가 일찍 안 죽었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담배 피우지 마."


 엄마가 담배를 피우는 일이 어쩌면 아이에겐 창피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다른 친구들 엄마는 분명 안 피우는 것 같은데, 다른 엄마들 품에 안기면 포근한 냄새가 날 텐데 우리 엄마에게선 담배냄새가 난다는 게 굉장히 불편하고 싫은 일이었을 거란 걸 모르지 않았다. 

 나는 아이가 담배를 싫어하는 이유를 나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있었고 내가 생각하는 이유가 맞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아주아주 뜻밖이었다. 엄마가 일찍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담배는 몸에 좋지 않은 거니까 엄마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 말이 나를 아주아주 부끄럽게 만들었다. 

 담배는 기호 식품이니까, 남/녀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 피울 수 있는 거라고 가르쳐 주려고 했던 이 어리석음을 어떻게 미안하단 말로 풀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거짓말해서 정말 미안해. 음.. 어.. 미안해.."


 '네가 싫어할까 봐'라는 핑계를 댈 수가 없었다.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나를 위한 것이었다. '아이 엄마'라는 사람이 담배를 피운다는 사회적인 지탄이 무서웠던 것이다. 

 그럼 '아이 아빠'는 피워도 되는 것이냐, 라는 질문을 던지기 전에 한 번만 생각해보자. 우리는 구시대적인 성차별적 단어들을 쓰지 않고자 하지만 사회적인 통념은 아직까지도 구시대적 관념에 머물러있다. 흡연을 하는 남자는 미혼, 기혼 관계없이 그러려니 하는 정도이지만 흡연을 하는 여자는, 아니 특히 아이 엄마는 흡연을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그 인식은 흡연을 하는 나조차도 알고 있는 부분이고 그래서 더더욱 숨기려 들었다. 구시대적 관념 비판이나 남/녀를 구분 짓자는 의미로 꺼낸 말이 아니다. 지혜롭지 못해 어떤 단어들로 나의 생각들을 간추려야 할지 알 순 없지만, 아이에게 사과해야 할 일은 흡연을 하는 행위보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일관된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던 것, 그리고 아이에게 흡연에 대해 정당화를 하기 전에 아이가 흡연하고 있는 나를 보는 마음이 어땠는지 알아봐 주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순간들을 놓쳐 아이의 입에서 먼저 나의 치부를 보인 셈이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아이는 나를 금연하게 만들었다. 엄마가 일찍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아이의 말에 나는 지금 한 달째, 금연 중이다. 아이를 임신했던 중에는 냄새가 아주 역했기에 끊었다기보다 피우지 못했다는 말에 더 가까울 것 같고, 현재는 피우지 '않고' 있다. 

 금연은 생각보다 그렇게 나를 괴롭게 하지 않는다. '금단현상'이나 '폭식', '군것질'등은 일절 없는 편이다. 평소에도 군것질을 좋아하지 않았고 금연껌, 금연초 등 어떤 수단도 없이 이제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물론 며칠 되지 않았을 때, 위태위태한 순간도 있었다. 밥 먹고 나면 한 번만? 하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그것도 물을 벌컥이며 참아내다 보니, '엄마가 일찍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아이를 떠올리자니 두 눈 질끈 감게 되었다. 마의 3개월이라는데, 여전히 유혹의 순간들은 많고 위태롭지만 아이에게 약속 지키는 엄마, 거짓말하지 않는 엄마를 보여주고자 꿋꿋이 참아내는 중이다. 


 아이를 키우던 여러 밤이 힘들고 고되었지만 나는 열심히 아이와의 약속을 지켜내고자 노력 중이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신뢰회복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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