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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두열매 Jun 22. 2024

아침 여름

그 가지런한 빗질이 남아있는

@father7576 열매 그림일기

“어떤 계절이 좋아?” 하고 물으면  주저 없이

“추운 거보다는 더운 게 나아” 하고 말한다.

주택에서 나고 자라 30년 넘게 산 친정집은 겨울엔 늘 추웠다.

가끔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도 외투를 벗지 않았다.


또 이것저것 챙길 것 많은 겨울보다는 반바지에, 티셔츠 정도 입고 어디든 나갈 수 있는,

여름이 좋다.


특히나 봄부터 파릇파릇해서 한여름 짙은 녹색의, 나뭇잎을 휘날리는 커다란 나무를 보는 게 좋다.

언제부턴가 여름이 너무 뜨거워져

그냥은 견딜 수 없을 정도의 날이 된 것이 아쉽다.

여름 중에서도 ,

가장 즐기는 여름은 새벽의 여름이다.


40년 넘게 올빼미 생활을 하다가

고군분투하며 매일 맞이하는 아침

여름의 아침은 7시만 좀 넘아가도 햇살이 따가워지기 시작한다.

대신 5시~6시쯤은  선선한 공기와 함께

아침 운동을 나갈 수 있다.

예전 살던 집은 대문을 열고 횡단보도만 건너면 도봉산과 연결되는 산기슭이었다.

이른 시간에도 산에 오르는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더위가 시작되기 전.

한여름밤의 열기가 가라앉고 다시 시작하는 아침.

적당한 온도의 아침 공기.

하늘을 뒤덮은 나무들이 나를 살랑이고

바닥의 흙은 적당하게 까슬하고 시원하다.


이때다.


나는 신발을 벗고 산에 오르기 시작한다.

어릴 때부터  놀던 앞산은 오르기 힘든 산도,

이상한 사람을 만날까 무섭지도 않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곳이다.


둘레길과 연결되는 산길을 맨발로 걷다 보면 입에서 절로 감탄사와 함께

감사가 흘러나온다.

흙과 초록나무들이 주는 에너지로 덩달아 충만해진다.

또 맨발로 걷고 있는 다른 분들을 만나기도 하고

기분 좋게 인사를 나눠주시는 분들도 만난다.

15분 정도 걷다 보면 보이는 배드민턴장 앞길은 이미 가지런하게 빗자루질이 되어있다.


그 가지런한 빗질이 남아있는 흙길을 볼 때

나 또한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싶다.


세상 어디에 이보다 더한 충만감이 있을까.......

 

지난여름 아파트로 이사를 와서  너무 더워진 날씨에

자연의 여유보다는

집 앞 체육센터에서 새롭게 배우는 수영과

잘 갖추어 시설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운동 후 하는 샤워, 매일 머리 감는 상쾌함, 규칙적인 운동, 언제나 그 자리를 성실하게

지켜가는 사람들.


더워진 날씨에  "더워* 더워 *더워!" 불평만 했다.

그렇게 나에게 충만감을 안겨주던 아침 여름을 잊고 있었다.


조그만 소홀히 해도

다른 일에 밀려 잊혀 버리는 일상의 순간들.


그 무엇보다 악착같이 붙잡고 싶다.

느끼고 감동하고 그 에너지를 뿜으며 살고 싶다.


푸르른 나뭇잎처럼.

적당히 가슬 거리는 흙처럼.



 


 


토닥 한 줄

뒤로 물러서 있기
땅에 몸을 대고
남에게
그림자 드리우지 않기
남들의 그림자 속에서
빛나기

                                     -라이너 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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