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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두열매 Jun 25. 2024

까망 밤&파랑 신발

3분도 체 지나지 않았다

@father7576 열매 그림일기

2021년 8월

둘째 딸 8살 여름밤에 일어난 일이다.


습한 날씨에

눈만 뜨면 나오는 코로나 소식까지

집에 가만있기도 힘든 저녁시간이었다.

있는 찬에  저녁을 챙겨 먹고,

두 딸을 데리고 동네  산책이라도 다녀와야지 싶었다.

저녁을 먹은 중학생 딸은 산책 후

제시한 맞춤 혜택에도  꿈쩍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둘째 딸만 데리고 을 나섰다.

10분쯤 걸어 우리 동네 산책코스

중랑천에 도착했다.


올여름 돌다리를 정비해서

천 중간중간에 앉아서 쉴 수도,

천을 바라보며 물멍도 할 수 있었다.

돌다리에서 신발집게, 플래시, 모기약을 이용  아이와 게를 잡는 아빠보였다.


흐르는 물소리와 밤바람이

어찌나 시원하던지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딸의 마음도 그랬을까

돌다리에 앉아서 놀던 딸이 대뜸 물었다.


"엄마  물에 발 담가봐도 돼?"


살짝 망설임 3초 후 대답했다.

"그래 여기 시원하고 참 좋다~ 살짝만 담가봐"

어느덧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발장구까지 치며 놀던 딸은  다시 말했다.


"엄마, 나 신발 벗고 놀래"


살랑살랑 시원한 밤바람

쉴 새 없이 들리는 물소리

낭만 가득 돌다리에 앉은 나는 바로 말했다.

"그래, 한쪽에 잘 벗어놓고 놀아"


물멍에 빠져들 겨를도  없었다.

3분도 체 지나지 않았다.

신발은 돌다리에서 추락사

거센 물줄기를 따라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놀란 나와 딸은 돌다리에서 벌떡 일어나 신발을 잡으려 했지만

돌다리 밑 물은 생각보다 빨랐고

어두워서 깊이를 알 길이 없었다.

낮에는 고작해야 발목 살짝 위로 올라올 높이였지만 밤에 물은  달라 보였다.


신발은 끝내  구하지 못했다.

딸이 전해준 바로는

  번의 시도에도 잡히지 않았던 신발은

꼬르르..... 꼬르르.... 꼬르르....

물속으로 가라앉으며 떠내려 갔단다.


정말 아끼고 좋아하는 신발이라며

남은 한 짝을 가슴에  부여잡고,

신발과  애끓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맨발로 천변을 걸어 나와

왕복 4차횡단보도 건너,

왕복 8차선을  다시 건너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 와중에도 아이스크림은 사 먹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첫째 딸은

역시 안 가기를 잘했다며  자신의  탁월한 선택에

흡족해했다.

판단력, 선택의 갈림길, 절제

세 단어를 가슴에 품고

나와 딸은  발을 닦고 누워  스펙터클한 우리의

무용담을 나누며 잠들었다.


 



토닥 한 줄

무엇을 입어도 좋다
무엇을 벗어도 좋다
밤에는

                                                 -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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