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으로 먹는 세계
다이어트 비법을 묻는 인터뷰에서, 많은 연예인들이 ‘먹방을 보며 식욕을 참았다.', '먹방을 보며 대리 만족을 느꼈다.’라고 말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누군가 고기를 구워 먹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허기를 달랬다는 의미인데, 내겐 그 말이 늘 와닿지 않았다. 배고픔은 분명 내 몸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먹는 모습을 본다고 해서 내 속이 든든해질 리가 있을까? 화면 속 음식은 향도, 온기도, 질감도, 맛도 없는 영상일 뿐이니 말이다.
대신 나는 먹방을 볼 때 귀가 반응한다. 음식이 씹히는 리듬, 젓가락이 그릇에 닿는 미세한 울림, 국물이 후루룩 넘어가는 소리…. 그 소리들은 내 위장을 자극하진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에 만족스러움을 주었다. 그 리듬 속에는 묘한 평온과 충만함이 스며들어 있었다.
1. 귀로 삼키는 맛
즉 내가 흥미를 느낀 건 정확히 먹방이 아니라 음식 ASMR이었다. ASMR은 ‘자율감각 쾌락 반응(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약자인데, 특정 소리나 영상이 머리와 목덜미를 따라 퍼지는 따뜻하고 저릿한 기분좋은 감각을 유발한다. 흔히 이 것을 ‘팅글(tingle)’이라고 부른다. 김치가 도마 위에서 사각사각 잘릴 때, 초콜릿이 또각하고 부러질 때, 치즈가 늘어지다 툭— 하고 끊길 때. 통대창을 씹는 쫀득, 삽삽, 탁탁 소리, 젤리를 베어 물 때 속이 터지는 푹 소리, 기름에 지글지글 구워지는 고기의 치익 소리. 심지어 분필을 씹는 기묘한 소리도 낯설지만 매혹적이었다. 이런 순간 음식은 내게 단순히 배를 채우는 물질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악기였다. 감자칩 껍질이 부서질 때 나는 사각사각 소리는 금속 타악기처럼 또렷했고, 구운 빵의 껍질이 깨질 때 나는 크랙-크랙 소리는 목관악기처럼 깊었다. 나는 그 리듬 속에서 혼자 작은 오케스트라의 한가운데 앉아 있는 듯했다.
밤이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이런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에 빠져들었다. 씹는 소리는 자장가처럼 단조로운 리듬을 만들고, 칼끝이 도마를 가르는 소리는 머릿속 불필요한 생각을 하나씩 잘라냈다.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반복되는 소리 패턴이 집중의 끈을 붙잡아 주었다. 들뢰즈가 말한 ‘차이와 반복’처럼, 단순한 반복 안에서 미묘한 변주가 오히려 쾌감을 키워주었다.
음식 ASMR을 들은 이후에는 나 혼자 음식을 먹다가 의외로 좋은 질감의 소리를 내면 머리끝에서 척추로 번져 내려오는 작은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한번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저렴이 마이크를 사고, 휴대폰 삼각대를 세우고, 집에서 혼자 음식 ASMR 영상을 찍었다. 내 입 부분만 나오게 포커스를 맞춘 다음 다양한 젤리를 천천히 씹었다. 편집하면서도 내 귀가 먼저 팅글을 느꼈다. ‘이거 엄청 좋은데?’라는 생각에 유튜브에 올렸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열흘 동안 조회수는 고작 두 자릿수. 누군가 들어와 댓글이라도 달까 시간이 날 때마다 내 유튜브 채널을 들락날락거렸는데 최종적으로 아무도 댓글을 달지 않았었다. 한 번에 포기하기엔 이르다 생각했다. 다음에는 마트에서 커다란 알로에를 구입해서 천천히 써는 영상도 찍었고, 짜파게티를 먹는 영상도 찍었지만 너무나도 반응이 미비해 뻘쭘해진 나머지 결국 영상을 지워버렸다. 내 도전은 그렇게 끝났지만, 세상은 더 발전된 음식 소리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2. 존재하지 않는 소리의 향연
요즘은 AI 덕분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음식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투명한 유리 과일을 칼로 자르면 쩍— 하고 금이 가는 소리가 터지고, 씹으면 사각사각 유리 조각이 부서지는 듯한 울림이 이어진다. 분명 유리인데도 과일의 소리처럼 느껴지는 그 모순이 신기했다. 또 어떤 영상에서는 빵으로 만든 키보드가 등장했다. 크루아상빵이 엔터 키가 되고, 바게트빵이 스페이스바가 되었다. 딱, 바삭, 와삭. 키보드를 칠 때마다 빵을 부수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심지어 용암을 먹는 소리까지 있었다. 부글부글, 치직. 누구도 먹을 수 없는 것을 귀는 태연히 삼켜버렸다. 현실에서 한 번도 맛볼 수 없는 음식인데도, “아, 용암을 먹는다면 정말 저런 소리가 나겠구나.” 하고 납득되는 순간이 즐거웠다. 이 지점에서 음식은 실제 물질이 아닌 경험의 시뮬레이션이 되었다. 음식이 현실의 제약을 벗어나 상상적 쾌락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확실히 음식은 혀로만 먹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3. 향기로 흔들리는 기억
미국 모넬화학감각센터 연구에 따르면, 냄새는 뇌의 해마와 편도체 감정과 기억을 관장하는 중추와 직접 연결되어 있어 시각보다 기억을 더 강하게 불러낸다고 한다. 그래서 수제비 냄새는 어린 시절 부엌을 떠올리게 하고, 레몬 껍질 향은 여름날 햇살을 되살린다. 내가 한우를 처음 먹어본 건 고3 수능 전날이었다. 부모님이 “오늘은 잘 먹고 푹 자야 한다”며 특별히 사 온 최고가 소고기였다. 뜨거운 불판 위에 고기가 닿자 곧 고소한 향기가 집 안 가득 퍼졌다. 시험 긴장으로 잔뜩 굳어 있던 내 어깨가 그 향기에 슬며시 풀어졌다. 입에 넣기 전부터 코끝이 먼저 안도감을 삼켰다. 그날의 냄새는 단순한 음식 향이 아니라, 부모님이 건네준 응원이었다. 지금도 한우 고깃집 앞을 지날 때 고소한 냄새가 풍기면, 순간적으로 그때의 기분이 되살아난다. 주머니 속 수험표, 달력을 바라보던 긴장된 마음, 가족이 함께 앉아 있던 식탁까지. 코끝의 향기가 오래된 기억을 열어젖힌다.
향기는 단순히 기억을 흔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2021년 교토대학은 바닐라·시나몬·구운 빵 냄새 같은 특정 향기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고 뇌파를 안정시킨다고 보고했다. 음식의 향기는 부차적인 장식이 아니라 감정을 움직이는 매개체였다.
4. 눈으로 즐기는 맛
나는 아니지만, 시각으로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도 분명 많다. 먹방을 보거나 예쁜 음식 사진을 찍는 일은 이제 유행을 넘어 하나의 문화가 됐다. ‘먹방(mukbang)’이라는 말도 전 세계적으로 쓰인다. 심리학·뇌영상 연구에 따르면 음식의 시각적 이미지는 뇌의 보상, 동기 관련 영역(복측선조체, 편도체, 섬엽 등)을 자극할 수 있어, 실제로 맛보지 않아도 먹고 싶다는 기대나 쾌감을 일부 경험하게 만든다고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먹방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꼈다’는 말은 설명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시각 자극은 대체로 식욕을 자극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가 많아서, ‘먹방을 보며 식욕을 억제했다’는 경험은 개인차의 영역에 가깝운거 같다.
그리고 눈이 만족했다고 해서 혀가 늘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식당광고 사진에 여러 번 속았다. 화면 속 초밥은 광택이 번쩍이고 고기는 작품처럼 빛났지만, 실제로 마주한 초밥은 말라버려 퍽퍽했고 고기는 너무 질겨 먹다 턱이 아픈 경험도 있었다. 사진 속에서 눈으로 먹었던 건 음식이 아니라 단지 기대감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먹방영상에서 만족감을 덜 느끼는 거일지도 모르겠다.
5. 감각의 합이 만들어낸 환상
미각이 중심이던 세계에서 귀와 코, 눈이 하나씩 합류하며 하나의 오케스트라가 완성되었다. ‘맛’은 결국 감각들이 서로의 언어를 조율하며 빚어내는 화음이다. 그 화음 속에서 우리는 단순히 음식을 먹는 존재가 아니라,
맛을 즐기는 존재 더 나아가 감각을 통해 맛과 이어지는 존재임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