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기억 : 1994년 6월
낡은 고아원은 지금은 이름이 바뀌어 ‘동방보육센터’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다. 에밀리는 해외입양인연대에서 소개받은 여대생 미영이라는 통역봉사자와 함께였다.
아직 한국어로의 소통은 자신이 없어서다.
동방보육센터는 세월의 흔적이 배인 벽과 문틈, 그리고 담장의 그림자까지—
어딘가에서 본 듯한 기시감이 드는곳이었다.
에밀리는 8살까지 살았다는 그 곳을 돌아보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정미야, 야 김정미 빨리와"
"혜순아, 같이가."
희미한 기억속에 그 8살 소녀들은 학교로 뛰어가고있었다.
관리실 문을 열자, 나긋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그녀를 맞았다.
“어서 오세요. 어떤 일로 오셨나요?”
에밀리는 미리 인쇄해온 입양 서류 사본을 건넸다. 미영은 에밀리의 말을 한국어로 옮겼다.
“제가 입양되기 전에 여기 있었다고 되어 있어서요.
1978년에요. 혹시 당시 고아원에 있었던 아이들 명단을 볼 수 있을까요?”
관리자는 약간 놀란 듯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절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운이 좋다면 일부는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약 20분 후, 노랗게 빛바랜 서류철 몇 권이 에밀리 앞에 놓였다.
1978년.
표지엔 ‘입소자 명단 – 1978’이라는 손글씨가 적혀 있었다.
에밀리는 떨리는 손으로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이름에서 멈췄다.
> 강혜순 (여, 1970년생)
눈이 커졌다.
정미와 같은 해에 태어난 또 다른 소녀.
입소일: 1974년 4월.
퇴소일: 1978년 5월.
퇴소 사유: 친모 인계 – 사유: 경제적 사정으로 일시 보호 후 복귀.
“이 아이… 강혜순이라는 아이에 대해 더 알 수 있을까요?”
관리자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명부를 다시 확인했다.
"글쎄요..78년도에 일하던 선생님 중 한분이 아직 근무하시는분이 한분 계세요. 30년장기근속자에요. 그분이 기억하시려나요. 하도 오래전일이라 기억 못하실 수도 있어요. 지금 부원장님이신데 사실 원장대행이세요. 원장실에 계세요."
에밀리와 미영은 원장실로 찾아갔다. 강혜순을 알고있는지 그녀의 행방은? 원장은 에밀리를 한참쳐다보더니 미영을 돌아보며 한국어로 이분이 강혜순을 왜 찾는지 물었다. 미영은 에밀리의 말을 통역하며 설명했다. 서류에는 자기가 김정미로 되어 있는데 김정미가 아닌 듯하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 당시 상황을 알고 있는 친구를 찾고 있고 같은 나이였던 강혜순이라는 아이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60대의 원장대행은 에밀리를 뚫어지게쳐다보았다.
“김정미라고? 미국 입양간? 네가? 그럼 네가 혜순이니?”
에밀리는 숨을 들이켰다. 자신을 쳐다보며 해순이니?라고 말하는 원장을 보며.
에밀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통역자인 미영은 이분 이름은 에밀리에요. 한국 이름은 김정미로 되어 있어요. 라고 했다.
원장은 그냥 자기 말을 통역해달라고 했다. 미영은 좀 헷갈리지만 원장의 말을 그대로 통역했다.
"제가 혜순인가요?"
원장은 뚫어지게 에밀리를 쳐다보았다.
"혜순아, 선생님 기억안나? 그때 너가 선생님 좋아했었는데. 원장님이 너 정미 대신 입양보내자해서 처음에는 나도 반대했는데 그게 너한테 더 좋은 기회라하셨었어."
미영은 중간에서 이 내용들을 통역하느라 초집중이었다.
그럼 진짜 정미는 어디있냐고 하니 정미는 친부모가 와서 갑자기 데려가버렸다고 한다. 해외입양이 결정된 상태라 친모에게 키우기 힘든 형편이면 해외 입양이 더 나을 수 있다고 설득했으나 안보낸다며 밤중에 정미를 데리고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럼 혜순은 어떤아이였냐고 물었다. 자기가 혜순인데 혜순에 대해 아는게 없다는게 혜순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부원장은 잠시 가만있다가 입을 열었다.
" 기억이 전혀 나지 않니? 그럼 미순이도 기억 안 나? "
미순이라니? 모르는 이름인데 알아야할 이름인것 같은 생각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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