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가 아닌 이름 13장

엄마에게 쓰는 편지

by 아티크 Artique

서울의 여름은 미네소타와 달랐다. 후텁지근한 공기와 소란스러운 골목, 어딘가 바쁘면서도 덜 정제된 리듬이 에밀리의 걸음을 따라왔다.

방송 출연 이후 시간이 흘렀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아니, 오지 않을 거라 마음을 먹으려 애썼지만, 가슴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작은 종이 울렸다.


네 방송을 못보셨을것같아”

미영은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조심스럽게 에밀리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에밀리는 미영에게 말했다.

“내가 다시 방송에 나가고 싶어. 이번엔… 나 혼자 말하듯이 하고 싶어.”

“정말 괜찮겠어?”

“응. 엄마가 지금은 나를 못 만나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야. 그러니까… 그냥, 내가 편지를 전하는 마음으로 해보고 싶어.”


미영은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사촌언니를 통해 방송국과 연결됐다. 이전보다 더 간단한 분량, 에밀리 혼자 앉아 말하는 형태로 짧은 인터뷰를 찍기로 했다. 방송 제작진은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그녀의 진심이 묻어난 대본을 보고는 결국 촬영을 허락했다.


촬영 당일, 에밀리는 흰 셔츠에 머리를 단정히 묶고 조용한 스튜디오에 앉았다. 미영은 통역을 맡았다. 인터뷰는 조용하게, 감정을 억누른 채 진행됐다.


“어머니, 혹시 이 방송을 보고 계신다면, 그냥 제 목소리만 기억해 주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원망하지 않아요.


어머니가 지금은 가족에게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으실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합니다.


저는 그저… 어릴 때 어머니가 저를 안아주던 그 기억 하나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기억이 없었다면 저는 살지 못했을 거예요.


아직도 기억나요. 엄마가 가던 날, 저는 울면서 가지 말라고 했어요.


저는… 그날 이후 한 번도 엄마를 잊은 적이 없어요.


지금도 괜찮아요. 그런데 한 번만, 단 한 번만… 얼굴 보고 인사하고 싶습니다.


전화번호나 주소를 주지 않으셔도 돼요.


그냥, 엄마가 편한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시면 저와 통역 선생님 단둘이 조용히 가겠습니다.


저는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서… 엄마랑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날을 꿈꾸며 열심히 한국어 공부할께 요.


어머니, 보고 싶어요.”




말이 끝나자 조명이 꺼지고, 스튜디오에는 정적이 흘렀다. 미영은 천천히 에밀리의 손을 잡았다.


“진심은 전해졌을 거야.”

에밀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리고 방송은 며칠 뒤, 조용한 저녁 뉴스 끝 무렵에 짧게 나갔다.

복희는 식탁에 앉아 조용히 화면을 바라보았다.

남편과 자녀는 아직 퇴근하지 않았다.

그녀는 손으로 입을 막고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끝내 눈물을 흘렸다.


“혜순아…”




그녀는 울음을 삼키며 손을 떨었다.

전화기를 들고, 다시 내려놓고, 다시 들고는 결국 번호를 눌렀다.

그날 밤, 미영의 집 전화기가 울렸다.

keyword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