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얼굴
서울 강남의 한 조용한 찻집. 평일 오후였지만 유리창 너머 거리엔 여전히 많은 사람이 분주히 지나가고 있었다. 이곳은 어머니가 직접 고른 장소였다. 아는 사람을 만날 확률이 가장 적고, 가족들에게 들킬 가능성이 없는 동네였다.
에밀리는 미영과 함께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오늘을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그리고 이 장면을 얼마나 많이 상상해왔는지 스스로도 놀랄 만큼 차분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손끝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안쪽 창가, 가장 구석진 자리.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연보랏빛 블라우스를 입고, 머리는 단정히 묶여 있었지만 눈가에는 지울 수 없는 피로와 불안이 번져 있었다.
“엄마… 맞아요?”
에밀리는 부드럽게 말했다.
여인은 자리에서 조심스레 일어섰다. 마주 선 순간,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낯설고도 익숙한 감정이 밀려왔다. 에밀리는 숨을 삼켰다. 어머니는 한 발짝도 다가서지 못한 채, 입술만 떨고 있었다.
“…혜순이야?”
그녀가 어렵게 물었다.
에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주저앉듯 의자에 앉아버렸다.
“미안해… 미안해, 혜순아… 정말… 정말 미안해…”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미영이 조용히 물컵을 건넸고, 에밀리는 아무 말 없이 어머니 옆에 앉았다.
“나는… 널…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 그런데… 그런데… 이러면 안 되는 줄 알았어… 나는… 엄마 자격이 없어…”
그녀의 고백은 죄의식으로 뒤덮인 독백이었다.
“나는… 미혼모였고, 세상이 너무 차가웠어. 네 아빠는 책임지지 않았고… 너희 둘을 데리고 살 자신이 없었어. 미순이는 너무 어렸고, 너는 늘 미순이를 안고 있었지. 그게 더 미안했어…”
에밀리는 눈을 감았다. 그녀는 그동안 어머니를 수없이 원망했지만, 동시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머니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점점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전 이제 어른이에요.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오늘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어요.”
어머니는 눈을 떴다. 흐릿한 눈동자 속에 복잡한 감정들이 교차했다.
“너를 안아도… 될까?”
에밀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어머니가 두 팔을 벌려 그녀를 안았다.
30년 전, 혜순이 품을 그리워하며 밤을 지새운 그 어머니가,
지금 이 순간, 에밀리라는 이름의 딸을 안고 있었다.
둘 사이에는 말로 할 수 없는 시간이 흘렀고, 그 속엔 상처도 있었고 침묵도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무엇보다도 진실했다.
“미순이는… 꼭 제가 찾을께요.”
에밀리는 속삭이듯 말했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미안해 미안해 우리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