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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이름 15장

다시 시작하는 관계

by 아티크 Artique

15장. 다시 시작하는 관계

1995년 여름, 서울


에밀리는 여전히 잠들기 전마다 그날의 감정을 되짚었다. 엄마를 다시 만난 지 며칠이 지났지만, 마음은 아직도 어딘가 먼 곳을 맴돌고 있었다.

만남은 따뜻했다. 그리고 슬펐다.
엄마는 말했다.
“매주 수요일, 낮 2시에 여기서 만나자. 집에서 너무 멀면, 우리도 힘드니까.”

서울 외곽의 조용한 카페. 약속한 장소였다.
그곳은 아무도 그들을 쳐다보지 않고, 두 여자의 이야기를 조용히 받아주는 곳이었다.

통역자 미영은 여전히 두 사람 사이의 다리를 놓고 있었다.
에밀리는 그게 미안했다.

“통역 계속 부탁해서 미안해. 언젠가는 내가 엄마와 직접 말하고 싶어.”
“괜찮아. 근데 너도 힘들겠다. 한국어는 쉬운 언어가 아니니까.”
“맞아. 발음도, 문법도, 감정도… 너무 달라.”
에밀리는 웃었지만, 눈빛은 진지했다.
엄마의 말을 통역 없이 알아듣고 싶었다. 딸로서..

통역을 통해 전해지는 마음은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누군가가 자기들의 이야기를 아는것을 좀 불편해했다.


매주 한 번의 만남이 전부였다.
엄마는 여전히 지금의 가족에게 사실을 알릴 수 없다고 했다.
에밀리는 이해했다.
"그냥 얼굴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매주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라고 말했지만, 그 말은 절반만 진심이었다.

이제 남은 건 미순이었다.
혜순보다 세 살 어렸던, 울면서 떠나가야만 했던 동생


“엄마, 미순이 어디로 입양 보낸 거예요?”
“모른다… 복지회에서 알아서 했다고만 들었어.”
“기관 이름이라도 기억 안 나세요?”
“그때는… 그냥 먹고사는 것만도 벅차서…”

길은 막막했다.
에밀리는 한국에 있는 입양기관들을 알아보고 있었지만,

그녀의 기록은 ‘정미’였기에 법적으로는 언니도 아니었다.

그녀 자신도 신분이 바뀌었는데 미순이 어떤 신분으로 입양갔는지도 알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하나의 결심을 했다.
DNA 검사로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미순이 언젠가 자신의 DNA정보를 등록할 수 있다면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인터넷이 아직 자유롭지 않았던 시대.
에밀리는 희망을 걸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며 쌓은 정보력이 그때야말로 빛을 발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서울의 여름은 무더웠고, 그늘은 부족했지만,
에밀리의 마음속엔 다시 시작하는 수요일들이 있었다.

조용한 만남.
짧은 대화.
통역을 거친 안부.

하지만 그것이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증거였고,
그리고 사랑이기도 했다.”


에밀리는 DNA관련한 책을 읽고 관련 논문을 조사하며 이 방법이 대중화 되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가족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아직은 DNA 검사 등의 범죄 현장 조사 등에서 사용하는.
대중적이지 않은.것이었지만 에밀리는 이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새로운 꿈을 꾸는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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