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5
제16장 – 데이터 속 혈연을 찾는다는 것
에밀리는 흰 종이에 굵은 마커로 이름을 적었다.
"GENEALINK"
한 사람의 유전자가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갈 수 있는 다리. 그 다리의 이름으로 ‘유전자(Gene)’와 연결(Link)을 결합한 이름이었다.
"우리는 데이터를 통해 사람을 찾을 거야."
그녀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했다.
수년간 수백 통의 편지를 복지회에 보냈고, 방송에 나갔고, 유학 와 있는 한국인들과도 교류해봤다. 미순을 찾기 위한 모든 노력은 벽에 부딪혔고, 이제 남은 희망은 DNA였다. 문제는, 사람들이 아직 이걸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혹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지 몰랐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력이 필요했다.
에밀리는 오래전 학부 시절 수학과를 떠올렸다. MIT에 입학할 수 있었지만 입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겪은 천재 소년, 존 리(John Lee). ‘한국계 입양인 중 가장 똑똑한 개발자’라 불렸고, 지금은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 CTO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녀는 오랜 고민 끝에 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제목: 함께 가족을 찾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습니다
내용: 저는 유전자 매칭을 기반으로 입양인들이 가족을 찾을 수 있는 플랫폼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꼭 필요합니다. 만나주시겠어요? — Emily Sweet
며칠 후, 존에게서 짧은 답장이 도착했다.
재밌는 아이디어네요. 만납시다. 이번 주 금요일, 팔로알토에서.
팔로알토의 어느 조용한 카페,
존은 노트북과 커피잔 하나만으로 테이블을 지배하고 있었다.
"에밀리 스위트?"
"맞아요."
존은 그녀의 프레젠테이션을 조용히 듣고,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사람들이 DNA를 얼마나 자발적으로 제공할까?"
"지금은 아니어도, 가족을 찾고 싶은 사람들은 결국 선택할 거예요. 그게 유일한 희망이 되니까요. 그리고 키트를 집으로 보내주는 시스템이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어요. 비용은 낮추고, 개인 정보는 철저히 보호하고."
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거, 진심이 느껴지네요. 당신은 이걸로 돈 벌려는 사람이 아니군요."
"전 가족을 찾고 싶어요. 그리고 저처럼 찾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존은 손을 내밀었다.
"좋아요. 함께하죠. 대신 개발관련은 제게 온전히 맡겨 줘요."
에밀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거의 매일같이 만나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나갔다. DNA 키트를 어떻게 배송하고, 어떤 방식으로 시료를 받아서 분석할 것인지. 샘플 수가 적을 땐 어떻게 유의미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을지, 개인정보 보호 법안은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그리고 점차, 에밀리는 존의 무뚝뚝함 뒤에 숨겨진 따뜻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말이 없지만, 그녀가 설명하는 미순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관련 법령을 밤새워 정리해오기도 했다.
어느 저녁, 두 사람이 함께 사무실에서 막 나온 늦은 밤이었다.
에밀리가 말했다.
"오늘은 미순 생일이에요. 한국에 있었다면... 서른둘이 됐겠네요."
존은 그녀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그 아이, 꼭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당신이 이렇게까지 하고 있으니까."
에밀리는 가만히 그의 눈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존.”
그리고 그날 밤, 그녀는 처음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잠들었다.
그 희망은 누군가의 데이터가 또 다른 누군가의 삶과 맞닿는 기적의 서막이었다.
그 간절함이 맞닿는 기적을 소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