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브랜디 한 스푼, 설탕 한 스푼, 보리차 한 스푼
디데이 +2일차.
구급차에 실려 도착한 6인 병실에는 선참자가 있었다. 선참자는 볕이 환하고 밝은 창가 쪽 병상은 젖혀 두고 입구 쪽 폐기물을 수거하는 쓰레기통 앞 공기가 무겁고 침침한 병상에 누워있었다. 창가 쪽에서는 열기를 확확 뿜어 올리는 난방기와 기계 환기로만 병원균의 99.99%를 걸러낸다는 음압기가 작동 중이었다.
음압기는 병실내부의 공기압을 주변실보다 낮춰 공기의 흐름이 항상 외부에서 병실 안쪽으로 흐르도록 하는 장치이다. 바이러스나 세균으로 오염된 공기가 외부로 배출되지 않도록 설계된 시설로 병의 감염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필수시설이라고 한다.
“저어... 안녕하세요?”
2미터 거리두기 안전수칙을 지키려고 세 발짝 떨어진 지점에서 내가 입원 신고를 했다. 하지만 귓바퀴를 잡고 귓구멍에 대고 외친다 하더라도 전달이 안 될 만큼 우렁찬 음압기의 소음이 차단막 구실을 했다. 음압기는 힘차게 고함을 지르면서 부들부들 떨어대는 양철 괴물 같았다.
“음압기 때문에 대화를 못해요. 아마 그쪽 침대에서는 잠도 못 잘 거예요.”
그녀가 마스크를 턱 아래로 내리고 큰소리로 외쳤다. 정확히 맞는 말이었다. 옆에서 헬리콥터 회전날개가 최대속도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와 2미터 이상 거리를 띄우면서 음압기와도 가장 먼 병상에 짐을 풀었다. 저녁식사가 나왔지만 음압기는 실내의 공기도 휘저어놓는지 골수가 흔들려서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화장실에 들락거리며 슬쩍 본 그녀의 침대 발치에 매달린 명찰에 적힌 나이는 나보다 세 살 어렸다. 체격은 다부졌고 무표정했지만 건강해보였다. 아파서인지 기쁜 일이 없어서인지 웃지 않았다.
환자는 하루에 세 번씩 혈압과 체온과 맥박과 산소포화도를 검사기록지에 적어놓고 간호사에게 전화로 보고해야했다. 내 수치를 기록하면서 그녀의 기록지를 슬쩍 보니 체온도 정상치보다 높았고 혈압도 높았고, 산소포화도는 낮았다. 수치대로라면 코로나 전염병이 발현하는 환자임에 틀림이 없었다.
나는 음압기 소음으로 잠이 들 수 없으니 수면제를 주든지, 소음을 줄여주든지, 조처를 좀 취해 달라고 수차례 불만을 토로했지만, 병원 측으로도 어쩔 도리가 없는지 답변이 없었다.
나는 나름 방법을 고안했다. 특별할 것도 없는, 하루 종일 귓구멍을 틀어막고 지내는 방법이었다. 이어폰을 끼고 인터넷 강의를 듣거나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봤다. 한밤중에도 이어폰을 끼고 성우가 읽어주는 소설을 들으며 잠을 청했다. 그래도 거의 사흘을 뜬 눈으로 새웠다. 룸메이트는 나보다는 잘 자는 것 같았다.
소등을 하고 누웠다. 머물지 않고 쓰윽 지나가버리는 잠의 꼬리를 간신히 잡았는가했는데, 잠은 꼬리도 안남기고 미끈한 몸을 빼버렸다. 희뿜하게 밝은 창으로 달빛이 흘러내렸다.
집에서 보던 달과 같은 달이련만, 나 외로운 곳에서 너 외로운 달을 만난 듯 갑자기 외로움이 전염되었다. 달빛은 창에 파도처럼 다가와 방울방울 포말로 흘러내리며 날더러 창밖으로 나오라고 손짓했다. 그 손을 맞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죄를 짓고 자유가 제한 된 감옥에 갇힌 몸이었다.
사진출처:여성동아
“수면제 드려요?”
바로 누웠다 모로 누웠다 뒤척이는 내게 룸메이트가 물었다.
“여기 병원에서 처방한 수면제에요?”
코로나 입원환자에게 수면제까지는 처방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물어본 말이었다.
“아뇨, 모과주에요. 내가 병원에 들어가게 되니까 딸이 챙겨줬어요. 잠 안 올 때 먹는, 집에서 만든 한방음료수라고 설명한들, 알콜도수가 높으니까 들키면 반입이 안 될 것 같아서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왔어요. 병원 코로나 방역 관계자들 눈 속이느라고, 용기 겉면에 샴푸와 린스라고 라벨을 붙였지요.”
술병을 바라보며 그녀가 어둠속에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처음으로 웃었다.
술꾼들은 술에 관한 대화를 시작만 해도 즐거워한다. 술이 눈앞에 놓이면 눈에 생기가 돌고 입에 침이 고인다.
히야, 대단한 술애호가이자 고수군, 이라고 생각했다. 어둠 속에서 나도 그녀를 향해 미소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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