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브랜디 한 스푼, 설탕 한 스푼, 보리차 한 스푼
히야, 대단한 술애호가이자 고수군, 이라고 생각했다. 어둠 속에서 나도 그녀를 향해 미소를 날렸다.
그녀에게는 딸이 온라인 쇼핑에서 시장에서 구입하여 입원실로 배송을 시킨다는 레토르트파우치에 든 강장용 보약이나 주스 등이 차입되었다. 병원은 수제 음식은 반입을 제한했지만, 제조업체에서 완벽 포장되어 들어오는 식품은 검열을 마친 후에 차입시켜주었다.
상용하는 아스피린이나 혈압약 비타민 알약 등은 제한하지 않았다. 어쩐지 그녀의 반입품들에도 술이 섞여있지나 않은지 의심이 들었다.
“딸이요? 딸이 술을 챙겨줘요?”
그녀가 종이컵에 따라 준 모과주를 화장실에 가서 마시고 왔다. 창가 쪽 천장을 곁눈으로 바라봤다. 그곳에는 환자의 상태를 감시하는 CCTV가 부감하고 있었다. 병실에서 술 먹는 불량환자를 잡아낼 능력까지는 없는 카메라일 테지만.
“술이 아니라, 약이에요. 모과에는 비타민 C가 풍부하기 때문에 떨어진 면역기능을 향상시켜주게 된대요. 모과주를 꾸준히 섭취하면 감기 치료는 물론이고 예방 효과까지 뛰어난다고 해요.”
그녀도 감시의 눈을 의식한 듯 CCTV를 등지고 서서 말했다. 입원 당시 병원 측에서는 환자의 비상사태 대비를 위하여 CCTV를 설치하였다고, 감시자의 존재를 알려줬었다.
그녀는 끄응끄응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스트레칭 운동도 했다. 뼈마디에서 우두둑 뼈가 꺾이는 소리가 났지만, 그녀는 힘차게 가랑이도 찢어지도록 벌려보고 위로 팔을 뻗어 하늘에 종주먹을 들이대듯 휘두르기도 하였다.
그녀는 수시로 간호사실로 연결되는 전화통을 붙들고 숨쉬기가 힘 들어 죽겠으니 산소호흡기를 달아달라고 고래고래 악을 썼다.
가족에게도 소나기처럼 불평을 퍼부었다. 목이 아파죽겠다, 잠도 안와 죽겠다, 밥맛이 없어 죽겠다, 음압기 소음에 머리가 폭발해서 죽을 것 같다, 나 죽으면... 등등의 ‘죽겠다’라는 어휘를 남발했다.
그러나 수면제를 마신 뒤에는 “푹 쉬다 가겠다.”라고 끝말을 장식했다.
사람은 잘 먹고 잘 누고 잘 자면 100%건강한 사람이다. 갓난아이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누면, 잘 놀면서 잘 큰다.
영국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고 첫아이를 낳아 기르던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밤새도록 보채기만 하고 잠을 잘 못 이루는 아이 때문에 소아 수면장애 클리닉의 문을 두드렸다.
사진출처:shutterstock
클리닉 원장의 진료실 벽에는 영국 유명의대 졸업장이 걸려있었다. 그녀는 날밤을 새운 쾡한 눈으로 아이의 수면을 유도하는 처방을 구했다.
“집에 브랜디 한 병쯤은 가지고 계시죠?”
아기의 수면장애 때문에 병원을 찾은 아기엄마에게 의사가 웬 술타령을 하나 싶었다.
“꼬냑 VSOP가 좀 있습니다만.”
그녀는 손가락 하나를 세우며 고개를 끄덕거려주었다.
사실 아이가 생기기 전, 낯설고 말도 설은 외국에 달랑 남편 하나 믿고 따라와서 심한 향수병에 시달리던 그녀는 가끔 꼬냑 한 잔으로 잠을 청했다. 그녀는 자신만의 비밀 술창고에는 비상용 수면 유도술을 숨겨두고 있었다.
“소아의 수면장애는 매우 흔한 증상이고 비교적 나이가 들면서 쉽게 호전되기는 합니다. 하지만 수면장애를 겪는 어린자녀를 보호 양육하는 부모는 역시 매우 심한 스트레스를 겪습니다.
어린 자녀의 수면개선은 부모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절대 중요합니다. 특별한 병이 없는 한 나이가 들면서 점차 호전되고 사춘기 이전에 대부분 좋아집니다만. ‘꼬냑 1티스푼, 설탕 1티스푼, 보리차 1티스푼’을 흔들어 섞어서 먹이세요. 좋은 결과를 보일 것입니다.”
의사는 약품처방대신 수면을 유도하는 민간요법을 전래하였다.
나는 어린아이에게 극소량일망정 술을 먹일 생각은 못해봤다. 그러나 친구에게 영국의 민간전래요법을 전해 듣고, 어느 날 극약처방을 내리는 심정으로 내 아이에게 ‘꼬냑 1티스푼, 설탕 1티스푼, 따뜻한 보리차 1티스푼’을 잘 흔들어 섞어서 먹여본 적이 있다.
사진출처:shutterstock
아이는 온 세상에 평화가 찾아온 듯 안심 푹 잠 들었고, 나도 아이를 품에 안고 눈을 붙일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아이가 커서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하지만 내 아이는 사춘기를 지나오면서도 성인이 되어서도 술 근처에도 안 간다. 잠이 고파서 한 자락의 잠이라도 더 끌어다 덮기 위해 잠 욕심은 내지만, 술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한 번 잠이 들면 깊게 오래 평온하게 잘 잔다. 잠 못 드는 일도 없고, 술자리가 주어져도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분명 내가 낳았는데, 나를 닮지 않았다.
일본인 친구에게 내 수면유도 비법을 전수했더니, 그녀도 자기 나름의 수면제를 알려줬다. 홋도위스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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