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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조 Oct 25. 2024

어떤 영국에 대한 소설들

코니 윌리스, P.D 제임스


어떤 영국에 대한 소설들 :
코니 윌리스의 옥스퍼드 시간여행 시리즈, P.D 제임스

by 민조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인 <둠즈데이북>을 볼때만 해도 초중반 전개에 경악을 했다. 이런식으로 미스테리의 해소를 미루고 또 미루다니, 이 작가는 정말 악마가 아닌가. 이 사람의 확실한 클라이맥스를 약속받지 못하고 보던 시기라서 읽는 중에 하차 위기가 오천번은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든 키브린이 간 시대가 당최 정확히 몇년도인지, 2060년 런던을 덮친 바이러스의 정체는 무엇인지 너무 궁금해졌기 때문에 보기는 봤고, 결국 결말을 봐버렸다. 이후로 나는 코니 윌리스에게 클라이맥스라는 인질을 잡혀 그 앞을 떠도는  길크리스트 교수의 유령들을 수도없이 견뎌야만 했다. 그냥 코니 윌리스 소설들을 죄다 보게 됐단 뜻... 무능하고 꽉막힌 사람들의 소통 불능이 빚어낸 혼돈으로 인해 자꾸만 지연되는 해소의 순간들. 코니 윌리스 소설은 그거다. 초코송이 꼬다리 과자부분 꾸역꾸역 먹다가 꼬다리 다 먹은 후에 남은 초코 부분들 와라락 털어먹는 거 (그게 한입거리였으면 진작에 관뒀을거다.)


그러나 긴 장편소설을 읽거나, 한 작가를 사랑하게 되어 그의 작품들을 하나씩 읽어나가다 보면 언젠가 그런 순간이 온다.앞서 미뤄두었던 어떤 의혹들이 이제는 결단을 내려달라며 내게 한꺼번에 달려드는 것이다. 그 의혹이란 것이 꼭 작가의 잘못은 아니다. 그냥 내 눈에 보이는 사소한 단점들일 뿐이고 누군가에겐 그것이 그 작품이 훌륭한 이유라고 할 지도 모른다.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 중 하나인 블랙 아웃을 읽으며 닥쳤던 바로 그 순간은 두가지 모두에 해당되었다. 이것은 세 장편 소설들로 구성된 기나긴 시리즈에 마침표를 찍으면서도 그 자체로도 긴 장편 소설이었고, 내가 사랑해서 단편집까지 게걸스럽게 찾아 읽던 작가의  -한국에 번역된 순서로- 가장 최신작이기도 하다. 정말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이제 나는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는, 이 작가의 소설을 읽기 시작한지 햇수로 거의 5년이 지난 지금까지 판단을 유보해온 여러가지 의혹들을 재차 맞닥뜨리게 되었다. 여러 선량한 ‘영국인‘ 들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미 죽어 사라진 또 다른 영국인들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으로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하는 이야기에서 나올 수 있는, 예상 가능하면서도 생각보다 많이들 시도하지 않는 아이러니를 낱낱이 낭만적으로 그려내는 이 멋진 소설을 보면서 내가 품었던 가장 강렬한 감상 한 줄은 이러했다. 아, 한계가 다가온다.


제 2차 세계대전을, 이미 편집증적으로 관련 기록들이 수집되고 또 연구된 사건을 또 역사학과 학생들 수십명이 직접 가서 폭탄 맞을 위험을 무릅쓰고 두눈으로 보고오기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제 2차 세계대전 현장에 역사학과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뭔가 꼬이게 되었다는 설정의 의도가 블랙 코미디가 아니라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다. 영국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서양인들의 믿음이 자꾸 내 한계를 시험하고 몰입에서 튕겨져 나오게 만듦.


이것은 또 영국이 배경인 소설 '사람의 아이들'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데, 박물관의 약탈품들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고즈넉하고 -몇 세기를 버텼다는 점에서- 안정적인 제국의 박물관을 그토록 애틋하게 바라보고 정성들여 묘사하는게 재미있었던 것이다. 인류가 아이를 낳지 못해 멸종해가는 세상에서 작가의 의식이 미치는 곳이 그 '박물관' 이라는 사실이 참 영국 답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에 일말의 설득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좀 얄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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