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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 Jun 01. 2024

내 기쁨은 남의 기쁨이 아니다!

하지만 내 슬픔은 남의 기쁨이 될 수 있다.  

  

출처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13212796&menuNo=200018


  우리는 살아가면서 너무나 기쁠 때가 있고, 또한 자연스럽게 그것을 표현할 때가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나의 기쁨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진짜 열심히 살자! 그리고 내가 열심히 생활하면 내가 기쁜 일이 있을 때 나를 아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축하해 줄 것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그러한 완전착각을 나는 무려 3번이나 하여 결과적으로 나의 인생은 어쩌면 나락에 이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돌이켜 보면 나의 기쁨은 남에게 전혀 기쁨이 되지 않았고, 나아가서 결과적으로는 내 인생에 두 번이나 쐐기를 박아버리는 뼈아픈 경험을 주었다.


 너무나 순진했던, 그야말로 천진난만한 아기처럼 행동했던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서 때늦은 많은 후회도 하지만 이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 그래도 혹시 이 글을 보는 인생후배나 공무원후배분들이 계신다면 도움이 되라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피를 토하는 느낌으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는 공무원 직장생활 35년 동안 세 가지 기쁨을 얻었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했고, 자랑스럽게 사람들에게 알렸다. 다소 순진해 보이는 나의 언행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나를 의아해했을 것이고  나를 나대는 사람으로 점점 인식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나는 남에게 절대로 피해를 주지 말자는 목표를 가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좋지 않게 생각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도리어 그러한 생각은 상대방에게 "재는 아무리 공격해도 걱정 없어"하는 이미지를 주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나의 직장인생의 세 가지 기쁨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았다.


   첫 번째는 첫 직장인 공무원에 입사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직장에서 남들보다 3~4년 빠른 특별진급을 했을 때였다. 나는 너무 기뻐했고 가족들도 기뻐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했고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일부는 질투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두 번째 기쁨은 공무원 직장생활 중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야간대학으로 강의를 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거의 10년 동안 강의를 하면서 나는 경제적인 수입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사회적 대우를 받기 시작했다는 자부심으로 내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나는 자신만만했다. 나는 내가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음을 자랑하고 더욱 더 홍보했다. 하지만 직장 동료들은 더욱더 의아해 하기 시작한 것 같고 지난번 특별진급에 이어 대학으로 출강까지 다니기 시작하자 "재 뭐야! 완전 똘아이 아냐"하는 험담을 무성하게 본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래도 거기서라도 멈추었으면 좋으련만 조직생활에 염증이 난 나는 계속 무엇인가의 성취감을 찾아 돌진하기 헤메게 시작했다.


  세 번째 나의 기쁨은 공무원 직장생활 중 음악봉사활동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었다. 우연히 해금을 배우고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서울시와 문화재단의 지원으로 버스킹도 하고 복지업무를 통하여 알게된 어르신과 장애인시설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누워계신 와상환자 어르신과 몸과 지능이 발달이 늦은 장애청소년들을 위한 완전히 봉사활동에 빠져서 보람차게 봉사활동을 진행하여 1,000회의 봉사활동목표를 달성하였다. 하지만 그때에도 하지만 직원들의 "진짜 가지가지하네, 이젠 또 뭐야?" 하는 나의 대한 비난이 자자하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나만 빼고, 심지어 과장하자면 나의 가족이나 동네사람들까지 다 알고 있었다.


  남들이 일반적으로 하지 않는, 세 번이나 남들이 기뻐하지 않는 나만의 기쁨을 추구하면서 35년이 흘러버혔다. 나의 기쁨은 남의 기쁨이 아니다는 명쾌한 명제는 종국적으로 나에게 씻을 수 없는 오점인 동시에 아픈 상처가 되는 두 가지 경험을 갖게 해 주었다.


  결국 나의 기쁨은 남의 기쁨이 되지 못하고 나의 불행이 남의 행복이 되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말이다~


  첫번째는 징계를 당한 것이다. 업무를 중요시하고 자기 자신의 신변보호에 철저하게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강의활동과 더불어 봉사활동을 1,000회를 실시하고 자축하는 동안 나는 너무 허점이 많았고 나의 동료들의 시기와 질투, 그것을 받아들인 인사권자는 여론에 힘입어 한 번의 경고 없이 나를 그대로 가차 없이, 그야말로 본보기를  삼아 인정사정없이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그 와중에 내가 믿었던 지인의 행동은 나를 더욱더 실망시켰다. 정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속담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커다란 그 고통을 감내하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나는 더욱 반성과 성찰 속에서 성장하고 성숙해질 수 있었다.   


 두번째는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마지막 승진심사에서 누락되는 고통을 갖게 되었다. 한번 찍히면 영원히 찍히는 것일까? 나는 반성과 함께 뼈를 깎는 노력으로 열심히 일하였고, 그동안 세월이 흘러 인사권자도 바뀌고 직원들도 많이 교체되었지만 나는 직원 다면평가에서 아주 낮은 점수로 마지막 진급을 하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퇴사를 하게 되었다.

  

  나는 인생의 두 가지 경험으로  인해 누구보다도 좌절하고 누구보다도 큰 상처를 입었다. 이번 인생은 망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엄청난 희생뒤에 소중한 값진 경험을 갖게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날을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과거에 정말 바보같이 행동했다고 하더라도, 어리석고 바보 같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나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조용히 생각해 본다!


  나의 기쁨은 남의 기쁨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슬픔은 남의 기쁨이 될 때도 있다.


  그러면서도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명대사처럼 내 삶도 때로는 불행했고, 때로는 행복했다. 하지만 하루도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다 라는 말이 가슴에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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