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이야기
매우 춥거나 명절 때면 생각나는 단어
어렸을 때는 연례행사였으나, 요즘은 매일 이용하는 아파트 사우나이다!
요즘같이 매우 춥거나 명절 때가 되면 목욕이 생각난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닦기를 싫어하는 아이였다. 닦기를 싫어하기보다는 추위를 잘 타서 특히 겨울에는 얼굴이나 몸을 씻으려면 연탄불에 세숫대야를 올려놓고 한참 동안 물을 데워야 하는 데 그러한 것이 귀찮았다.
게다가 어머니는 말을 잘 안 듣는 막둥이인 나를 강제적으로 꽉 붙잡고 씻어 주셨기 때문에 닦는다는 것이 너무 답답하고 힘들었다. 거의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였다. 나는 항상 울음을 터뜨리기 십상이었다.
서울 흑석동의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난 나의 어린 시절에는 우리 집안에는 목욕시설뿐만 아니라 화장실 자체가 아예 없었다. 우리 집은 아버지가 무허가로 지었기 때문에 집안에 화장실이 없었다.
우리 가족 모두는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화장실은 푸세식이었고 냄새가 심하고 위생상태가 엉망이었다. 하지만 학교 들어가기 전이었던 철없는 나는 화장실을 그래도 매우 친근감 있게 생각하였다.
집안에 화장실이 없었으므로 수돗가에서 엎드려 씻어야 하는 데 겨울에는 매우 춥고 불편하였다. 그런지인지 우리 동네 사람들은 공중목욕탕을 선호하였고, 가난한 우리 집도 간신히 명절 때에만 갈 수 있었다.
명절 때에는 우리 동네 목욕탕은 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 또한 목욕탕에는 상주하고 있는 때밀이 아저씨가 있었는데 항상 비싸다고 생각한 목욕탕에 근무하는 분이어서 어린 마음에 정말로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70년대에는 모든 사람이 가난했지만 당시 때밀이 아저씨는 인기가 좋았고 항상 신나게 노래 부르면서 세신을 하였다. 목욕탕 주인처럼 보였다.
하지만 집안이 가난했던 나는 한 번도 때밀이 세신을 받은 적이 없었고 오직 나이 많으신 아버지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때를 밀어주셨다. 몸을 밀어 주신 다음 등을 밀어주었다. 얼마나 열심히 때를 밀어주셨는지 몸무게가 20kg이 되지 않았던 나지만 얼마나 때가 많았는지 목욕탕을 갔다가 나올 때면 2kg이 줄어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어린 마음에 아버지가 때밀이 아저씨한테 우리들을 한 번도 때밀이 부탁하지 않는 것을 이상했다. 때밀이아저씨한테 부탁하면 간단한데 아버지는 왜 힘들게 때를 밀까 하고 생각을 했다.
철이 나름대로 든 지금은 돈이 전혀 없었던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당시 나는 때밀이 아저씨에게 부탁하지 않고 직접 아버지가 하는 것이 매우 불만이었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어머님도 돌아가시고 이제는 아무도 계시지 않고 기억만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입주자에게 무료로 운영되는 아파트 사우나에서 매일 혼자 사우나를 즐기며 돈이 없어서 자식들의 때를 열심히 밀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짠한 생각이 든다.
남에게 절대 고개를 굽히지 않는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어린 막내아들의 때를 미는 모습은 진짜 안 어울린다.
갱년기인지는 몰라도 사소한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