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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마스쿠스 Aug 07. 2024

기대지 말고 앞으로 나가란 말이다.

독립이라는 것은 늘 필요하다. 

"네가 파라과이로 오는 것은 온전한 네 결정이지 나 때문이 아니야."

남편은 우리가 여기 도착하기 전, 뉴욕에서 내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그럼 파라과이에 한번 와본다고 했을 때는 결혼할 거면 그냥 생짜로 와야 한다고 왜 못 박은 건데?)

그는 내가 여기 와서 본인을 원망할까 봐 미리 이런 이야기를 해놓은 것 같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이런 이야기를 미리 들었기에 "내가 너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어쩌고 저쩌고..."라는 레퍼토리는 단 한 번도 이민 내내 꺼내본 적이 없다(오기로라도). 그래. 내 결정이었다. 


늘 독립적인 성격의 나였다. 

첫딸이기도 하고, "네가 잘해야 동생도 잘한다"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살았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에 보이는 모습이라도 늘 동생에게 귀감이 되려 했다. 

그렇게 독립적으로 고등학교부터 부모를 떠나 살아온 나였지만 마음속으로는 내내 누군가의 그늘 안에 맘 편히 살아가고 싶다고 막연히 느끼고 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독립적인 생활을 하기가 불가능했던 것이 사실이다. 말도 못 하지, 친구도 없지, 차도 없지, 직업도 없지... 나는 남편에게 기생하여 사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그런 생각 자체를 못하게 나를 하드트레이닝을 시켰다.

든든한 버팀목이라는 느낌보다는 그는 헬스장에서 볼법한 트레이너 같았다. 나를 무섭게 혼내기도 했고, 보상을 주기도 했지만 베이스라인은 그것이다. 그는 나를 더 낫게 만들고 싶어 했다. 꼭 그의 프로젝트가 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시어머니는 운전을 못하신다. 

어머니를 끔찍이 아끼시던 아버님은 혹시나 사고가 날까 봐 운전을 대신해주시거나 운전기사를 붙여주셨고, 남편은 그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답답해 보인다며 내가 어디든 운전기사 없이 혼자서 다니기를 원했다. 그래서 첫 결혼기념일날 차를 사는 것을 목표로, 운전을 지독하게 가르쳤다... 욕을 밥보다 배 터지게 먹으며 운전을 배웠고, 그 덕에(?) 지금의 나는 나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나갈 수 있다. 나를 우쭈쭈 해주며 기대게 만들었다면 아마 몸은 편했겠지만 독립은 없었겠지? 


결혼생활 8년 차, 무슨 일이 있으면 잔말 없이 뚝딱 도울 때도 있지만, 나는 이제 혼자 거의 모든 일을 해나갈 수 있는 꼼수가 생겼다. 스페인어가 완벽하지도 않고, 부족한 면도 있지만- 모든 은행 업무, 회사 업무, 아이들 소풍을 한 시간 걸려간다면 따라가기고 하고, 집안에 무언가가 망가지면 어찌어찌 고치는 일도 많다.

 

배울 때는 야속했지만 아마 남편의 생각은 맞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나의 결정이었고 나의 온전한 선택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원망은 적게 하고 오기로 죽자고 무거운 타이어를 끌며 더 앞으로 낑낑대며 간다. 기대려고 할 때마다 혼자서는 법을 알려주었다. 눈물 쏙 빼고 싸울 때도 있었지만 저 인간, 그동안 장 본 봉지가 7개면 나는 한두 개 들라고 하고 자기는 나머지 낑낑 들고 가는 사람이다. 그래, 기대지 말고 10킬로 얹고 5킬로 더!  그렇게 하면 근육이 늘어있겠지. 인생 사는 짬밥, 이민생활하는 거친 잔근육. 충분하다. 내 옆에 지랄 맞은 트레이너가 눈에 불을 켜고 세트를 함께 세준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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