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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마스쿠스 Jul 24. 2024

밝은 파라과이의 미래,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힘듦이 곪아터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파라과이의 밝은 미래를 남편은 예상했고, 그 예상은 보란 듯이 들어맞았다.

그가 말한 대로 지금 이곳은 건축 붐이 불어 엄청난 수의 건물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한국의 90년대와 비교할 수 있는 파라과이의 경제는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 큰 경제적 성장을 꿰뚫어 보고 기대에 가득 찬 남편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비극은 예측하지 못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그다음 날, 2017년의 우리는 서로를 부목 삼아 어기적 어기적, 주춤주춤 나아가고 있었다. 

가히 기괴한 모습일 수도 있었다. 막 돌아가신 아버님의 발인을 마친 다음날, 운명의 장난같이 남편은 아버님이 평소에 타시던 차를 타고 현장으로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타던 자리에 타서 그가 만지던 핸들을 잡아 그 대신에 그의 자리에서 인부들을 지휘해야 했던 갓 서른하나가 된 어린 사장아들. 

토목에 아무런 지식도, 오래 쓰지 않아 조금은 어색한 스페인어도, 현장 사람 전체 중 한국인이라곤 전무후무한 곳에 그는 아버지의 장화를 신고 그의 안전모를 쓰고 걸어 들어갔다. 

 

아버님은 우리가 10월에 도착하고 3월에 먼 길을 떠나셨지만, 그 5개월 동안 남편에게 인수인계를 전혀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일을 가르쳐주신 적도 거의 없고, 누구에게 도움청하란 말도 없으셨다. 그냥 타이밍을 잘 맞춰서 하면 돈을 벌 수 있다, 그리고 정직해라. 인사 잘해라. 


아무것도 모르는 현장에 남겨져서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는 높은 곳에 올라 돌아가고 있는 우리 기계를 보며 너무나 마음이 답답하고 힘들었다고 한다. 아빠가 보고 싶었다고 한다.


남편은 마음이 너무 아파 하루에 초콜릿 몇십 개와 탄산음료를 하루종을 마시고, 점심은 아무 데서나 튀긴 음식을 먹었다. 저녁에는 맥주를 들이마시고 괴로움에 잠에 들었다.

다 잊고 싶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그 고통은 떠나지 않는다. 내일 다시 하루를 아침 5시에 시작해야 한다.

 

매일매일 온라인 게임은 3-5시간을 하며 다른 생각을 하려고 무던히 애쓰지만 드는 생각이 많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남편의 아픔을 보며 마음이 아프지만 그 모습이 한심했다. 

그렇지만 그 상황에 처해있지 않으면 판단하기 어렵고 판단해서도 안된다. 

나는 또 나대로 마음이 아파지기 시작한다.

우울증에서 허덕거리며 매일 잠만 잤고, 깨어나지 않을 것처럼 하루에 세네 시간 낮잠을 자고 밤에는 늦게 잠들어 또 늦잠을 잔다.


악순환이다.

남편은 게으른 나를 이해 못 하고 나는 술과 담배로 얼룩져가는 그의 어두운 얼굴 빛깔을, 절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며 미친 듯이 싸워댔다.

그리고 우리에겐 서로의 힘듦을 보듬어줄 여유, 마진이 1센티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힘들지- 대신에

내가 너보다 힘들다며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며 위로를 바랐고, 마찬가지로 그 위로를 받지 못하자 힘들어하며 속으로 절규하고 곪아갔다. 이 악순환을 없애줄 방법은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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