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일도 다 하려고 하고 애도 다 키우려고 하고 그건 욕심이지
맞다. 내 욕심이다.
주20시간으로 근로 시간을 줄인 것은 정말 내 욕심이었다.
일도 하고 싶고 아이도 내 손으로 최대한 키우고 싶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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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직이 아니라 퇴사가 아니라 일 하는 시간을 줄이는 건 내 일자리를 잃고 싶지 않은 욕심 때문이었다. 일하는 사람이 출산과 육아에 시간을 투자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휴직을 쓰거나 재택근무를 하거나 퇴사를 하거나 이외에도 내가 생각 못한 방법이 있을 거다. 나는 어떻게든 일도 하고 싶었다.
주20시간으로 단축 근무를 하는 것은 월급은 반토막나지만 내 일자리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내 자리가 사라지지 않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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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0시간이면 아르바이트나 파트타임 직업이나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이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보장된 고용이다. 즉 회사와 나의 고용 계약은 유직되어 있다는 점이다.
회사는 나를 자르지 않는다. 물론 나도 그만큼의 최선을 다해 일은 해준다. 줄어든 시간만큼 말이다.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걱정이 없다는 게 얼마나 삶에 든든한 버팀이 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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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아이에게는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 아이를 위해서나 엄마를 위해서나.
가족의 도움도 필요하지만, 기관과 정부의 도움도 들어오지만
내 아이를 키우는 시간은 필요하고 소중하다.
실제로 일하는 시간을 줄여서 아이에게 투자하면서 아이가 더 감정적으로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어가는 걸 느꼈고, 나 역시 아이와의 유대에서 행복과 심리적 충전감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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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도 가정도 만족스러워했다. 내가 일을 줄이면서 육아를 도와주시던 부모님도 본인들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집안일도 미루지 않고 돌아갈 수 있었다.
안정되고 쾌적한 집이라는 건 사실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음 날 일을 하러 가기 위해서라도 중요하다.
그럼 소는 누가 키워?
내가 없는 제도를 만들어서 한 것은 아니고 규정되어 있는 회사 제도를 활용한 것이기는 하나 시작은 내 욕심이었던 것이 맞다. 보통은 주35시간, 또는 주30시간 정도로 단축해서 일하지 주20시간으로 과감하게 근로시간을 줄이지는 않더라. 무리했지만 욕심낸 만큼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언제고 충분히 아이가 컸을 때, 내가 다시 일터에 내 모든 시간을 투여해도 아이가 걱정 없을 때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와 안정감. 이 역시 내가 일을 놓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힘이기도 했다.
일도 하고 아이도 돌보고 다 하려는 게 욕심이면 또 어떤가.
이런 욕심이 모이면 어떻게든 더 나은 방향으로 모두가 원하는 대책이나 대안이 나올 거라고 믿는다.
오늘도 아이를 돌보고 일을 한다.
아이의 엄마로, 직장인으로, 주부로, 그리고 나로 살아가려기 위해
정해진 24시간을 효율적으로 야무지게 쪼개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