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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 아이와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선이 있었다. 그 아이를 쫓아다니던 나는 끝내 도무지 넘을 방법이 없던 그 선을 넘지 못했다. 선을 넘으려 발을 디딛는 순간 그 아이는 항상 나의 눈을 또렷이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던 그 눈을 하고서는. 그러면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시 뻗었던 발을 굽히며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나는 지금도 그 선 밖에서 고통스럽게 머물러있다.
하지만 포기는 더 고통스럽다. 선 밖에 있음에도 계속해서 그 안으로 들어가려 했던 노력들, 하지만 이내 들어갈 수 없었던 현실들보다, 등을 돌려 그 선과 멀어지는 것이 도대체 무엇에 비유를 해야 할지 모를 만큼 힘들었다.
그날 이후로 '그 아이와 함께할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닫고 배워가는, 익숙해져 가는 나날 동안, 나는 그 아이와의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 가야 했다. 일부러 피해보기도, 오랜 시간 동안 연락을 안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참을 수 없을 만큼 힘들었기에, 종종 연락을 하여 안부를 묻고, 그들의 커플 이야기를 들으며 잘 지내라고 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우린 지극히 평범한 친구처럼 되었다.
나의 새로운 연애는 내게 있어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연애였다. 애초에 처음 여자 친구를 사귀었던 것도 있었지만, 나는 그 아이와 지냈던 시간 동안 내 에너지와 감정을 써버린 터라, 그 아이에게 했던 만큼 여자 친구에게 해주지 못했다.
그냥 덤덤하게 나의 여자 친구를 좋아해 주었다. 그렇게 새로운 방식을 익혔다.
이렇게 나의 또 다른 세상은 다시 쌓아져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생은 역시 순탄하지 않았던 탓일까, 몇 달 후 그 아이는 내게 연락이 왔다.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고 한다.
"벌써 헤어졌어? 왜?" 나는 놀랐지만 기분은 정말 좋았다.
"왜 놀란척해? 그렇게 배실배실 웃으면서 말하는 거 보면 하나도 놀라지 않은 거 같은데?" 그 아이의 목소리에는 전혀 상심이 묻어있지 않았다.
"나보다 더 너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난 거 아니야? 그런데 어쩌다 헤어졌어?" 이 질문은 내가 정말 궁금했기에 진지하게 물어봤다.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나보고서야 느끼게 되었어. 네가 나를 얼마나 좋아해 주고 소중히 해주는지."
"..."
"네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은 꽤나 오래전부터 알았지만, 나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주지는 이번에 느꼈어. 나를 소중하게." 그 아이는 뒷말을 강조했다.
"너한테 나는 정말 소중했구나. 나는 참 행복하구나라고 생각을 했지."
그 아이가 천천히 눌러 말하는 묵직함에 나는 가슴이 찡했다.
"그럼, 나를 한 번도 싫어한 적은 없었어?" 나는 참아왔던 호흡을 토하며 말했다.
"어느 누가 싫어할 수 있겠어... 나는 정말 좋았어 누가 나를 좋아해 준다는 게." 그 아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아이의 진심이 나를 눌러왔다. 나는 한참 침묵을 했고, 그 아이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근데 왜 헤어진 거야? 아직 대답 안 해줬는데."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가볍게 물었다.
"그냥... 나를 충분히 좋아해 주지 않은 것 같아서가 전부야. 나도 이런 이유로 그 사람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는 게 맞는지 안 되는 걸 알지만, 헤어지자는 말을 안 할 수가 없었어." "네가 나를 얼마나 좋아해 주는지 알게 되니 비교가 안되더라고..."
그 아이의 말을 듣고 있는 휴대전화를 잡은 손이 떨려왔다.
"네가 나를 좋아해 주는 그 느낌이, 정말 행복한 거였는데, 나는 그걸 소중히 생각을 못하고 어느 순간 당연하게 생각한 것 같아." "이게 그 대가인가 봐." 그 아이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의 대답을 그때 들었으면 얼마나 기뻤을까." 내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지금은 기분 나쁘다는 거야?" 그 아이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 아니, 정말 기뻐 정말이야."
나는 나의 소중한 기억이 그 아이에게도 똑같이 새겨졌다는 것에 정말 기뻤다. 하지만 정작 웃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이미 나와 그 아이의 관계는 애정의 영역이 아닌, 우정의 관계가 구축되었는데. 깨진 틈 사이로 가늘게 들어온 빛들이 이젠 가득히 들어와 비추어지고 있는 영역이 되었으니.
이곳은 어떠한 보답도 바라지 않은 공간이었으며, 나와 그 아이가 한 번도 와보지 않은 공간이었다.
"나도 정말 행복했어. 너를 좋아했을 때." "너를 좋아했던 나는 항상 시도 때도 없이 빛이 나고 있었으니까."
"나를 좋아해 줘서 정말 고마워" 그 아이가 말했다.
이야기는 그 가디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2009년 여름, 분당고등학교 2학년.
자신의 얼굴에 올라온 여드름 때문에 불긋한 얼굴은 언젠가는 새하얗게 바뀔 거라고 굳게 믿는 소년이 있다. 소년은 수업시간이면 친구들과 놀기를 좋아하며, 늘 화투패를 가지고 다니며 친구들과 내기를 하곤 했다. 유행은 꽤나 지났지만 타짜에 나오는 것을 흉내 내며 킥킥대고 웃었다.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화투 패로 치냐? 돈으로 치지." 내 앞의 자리의 친구가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내 목소리가 조금 컸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굽혔던 허리는 그래도 두고 고개만 올려 칠판을 바라봤을 때는 이미 늦었다.
"너네 다 나와" 선생님의 딱딱한 목소리는 등의 식은땀을 흐르게 했다.
왼손에 들고 있는 화투패를 한 손으로 숨기기에는 그때의 나의 손이 너무나도 작았다. 하지만 나의 오른손에는 가장 좋은 패 두 장이 손에 들려있었으니, 나는 이것만은 어떻게는 놓칠 수가 없었다. 나의 처절한 노력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나머지 왼손에 들려있던 붉은 화투 패들은 새하얀 교실 바닥에 붉게 물들게 뿌려졌지만, 나는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고 쥐고 있었다.
물론 그날 선생님께 살면서 가장 심하게 혼났다. 하지만 그 소년은 생긋 웃고 있었다. 작은 손으로 꽉 쥔 손 안에는 소년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패가 쥐어져 있었으니.
그리고 이 소년은 알다시피 새로운 여학생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이 이야기는 붉은 화투 패로부터 그 여학생의 새하얀 얼굴 위로 옮겨진다.
새하얀 교실 바닥에 붉게 뿌려진 화투패처럼, 소년의 붉은 얼굴은 새하얀 여학생의 얼굴에 이미 가득 뿌려져 있었다.
소년의 붉은 청춘은 이미 깔리기 시작했다.
수필이 아닌 소설로써 처음 써본 글이기에, 전개나 마무리가 많이 미흡하여 조금 허무했더라면 죄송합니다.
이번 글은 완전한 허구의 이야기가 아닌, 저의 학창 시절을 바탕으로 써보았으며, 반 정도는 사실이며 나머지는 소설로 써 내려갔습니다.
다음 글은 에필로그 형식으로 짧게나마 써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 내주어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조금이나마 공감이 되셨길 바라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