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좋아해 줘서 고마워

에필로그

by 그릉


나는 무사히 수의대를 졸업했고 그와 동시에 동물병원에 들어가 그동안 쌓아온 나의 지식을 뽐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가 고양이와 강아지들을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그저 그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 것뿐인데.

오늘도 작고 소중한 존재들을 돌보며, 그들의 아픔을 하루빨리 낫게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밤 11시가 다되어서야 퇴근을 했다. 그리고 휴대전화에 남겨진 메시지를 보고 놀람과 동시에 설레는 감정을 느꼈다.

치열한 생존에 살아남기 위해 설렌다는 감정은 그저 쓸모없는 소모품이라고 느껴 저절로 버려졌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쿵쾅쿵쾅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잘 지내? 나 드디어 정식으로 선생님이 되었어! 너는 혼자서도 잘 해내곤 했었으니, 분명 좋은 수의사가 되었겠지?'


그 아이와 연락을 하지 않은지 꽤나 오래되었다. 나는 곧바로 답장을 했다.


'정말? 축하해! 지금 혹시 전화할 수 있어?'

곧이어 바로 그 아이의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직까지 나를 신경 써주고, 감동이네." 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먼저 말을 했다.

"감동은 무슨, 그래도 네가 나를 10년이나 좋아해 주었는데, 인생에 있어 어떻게 너를 잊겠어." 그 아이는 투덜거리며 말은 했지만, 목소리는 굉장히 신나 보였다.

나는 오랜만의 그 아이와의 통화를 금방 끝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 아이를 오랫동안 마음에 두고 있었으니, 항상 나의 여자 친구는 그 아이에 대해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여자 친구와 싸우지 않기 위해 자연스럽게 그 아이와의 연락이 뜸해졌다. 뜸해지다 보니 서로의 대화거리도 줄어들게 되었고, 그렇게 연락은 점차 없어졌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그 아이와의 대화는 정말 소중하게 생각이 되었다.


우린 여전처럼 밤늦게 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하여, 추억들이 단숨에 쏟아져 나왔다.

동시에 내 감정도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에 휩싸여, 기분 좋은 기억 속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중간에 대화가 끊길 때도 있었지만, 우리는 전화를 끊기를 정말 아쉬워했다.


"예전에 혹시 기억나? 우리 처음으로 데이트하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내가 너 좋아한다고 했잖아." 나는 분위기에 맞춰 이런 질문을 건네었다.

"그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니. 나는 대답하려 했는데 네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참 이상해." 그 아이는 우쭐거리며 말했다.

"그때는... 너를 놓칠 수 있다는 생각에 용기가 없었어. 하지만 지금은 듣고 싶어."

"너는 이미 기회를 놓쳤어." 그 아이는 웃었다.

나도 웃고 있었다.


"사실 그때 정말 이해가 안 되었어. 왜 너를 좋아한다는 내 대답을 듣고 싶지 않았는지 말이야. 하지만 네가 굳이 말하지 말라니까 나도 안 했을 뿐이야."

나의 웃음은 쓴웃음으로 번졌다.

"너는 나를 그렇게 좋아하면서, 막상 중요할 때는 소심해져서 말이야." 그 아이가 놀렸다.

"그저 너를 너무 좋아해서, 만약 거절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너를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는 솔직히 말했다.

"나도 뭐 잘한 건 없지."

"네가?"

"나도 네가 나를 오랫동안 좋아해 줬으면 좋겠었어. 실제로 연인이 되어 오래 사귀게 되면 처음에 느꼈던 많은 감정들이 사라져 버린대. 그래서 나는 네가 나를 더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좋아해 줬으면 했었어."

"뭐? 그럴 줄 알았으면 바로 말해달라고 했을 텐데." 나는 괜히 분했다.

"그럼 우리 둘 다 반씩 책임이 있네!" 나는 말했다.

"네가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되지. 조그만 시련도 못 견디고 먼저 도망친 사람이 누구더라? 곧바로 여자 친구 사귀던데? 나를 정말 많이 좋아한 거 맞아?" 그 아이는 나를 다시 놀렸다.

"그럼 곧바로 남자 친구 사귀던 게 누구더라? 유치하게." 나는 반박했다.


우리는 곧이어 웃음을 터트렸다.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니 속이 시원했다.


"오늘 연락 먼저 줘서 고마워." 나는 아쉬움을 가득하여 말했다.

"잠깐만, 내가 하나 더 재밌는 얘기 해줄까?" 그 아이는 다급하게 말했다.

"뭔데?"
"사실 너 여자 친구 사귀고 나서 정말 괘씸했거든. 그래도 네가 아직 나를 많이 좋아하니까 금방 헤어질 줄 알았어. 근데 두 달 세 달, 일 년을 기다려도 너희는 헤어지지 않고 잘 지내더라고. 부러웠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지."

나는 그 아이의 속마음을 듣고 얼떨떨했다. 그 당시 나는 새로운 세상을 쌓아갔고, 또 다른 사람과의 기억 새겨나가고 있었으니, 이 또한 귀하게 지켜야 할 소중함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지, 나는 원래 누군가를 좋아하면 끝까지 가는 스타일이었으니. 방법은 달랐지만." 나는 대답했다.

"그러니까. 그런 여전한 너여서 좋아."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이렇게 시원하게 들을 줄이야.


"그래서 나는 네가 헤어지면 내가 먼저 사귀자고 하려고 했었어." 그 아이의 말투는 가벼웠다. 후회는 묻어 있지 않았다.

"진짜야 농담이야?" 나는 엄청 놀랐다.

"진짜로. 네가 싫다고 하면 웃으면서 보내 줄 수 있었고, 만약 좋다고 하면,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거고."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전혀 너 답지 않은데?" 나는 말했다.

"그렇다면 그렇지 뭐."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일 거야." 그 아이는 다시 가볍게 말했다.


오늘 밤의 이 통화로 나는 감동을 가득 느꼈다.

비록 이제는 우리는 함께 할 수는 없지만, 내가 전력을 다해 좋아했던 이 소녀는 결코 자신의 마음을 아껴두지 않고, 나의 완성되지 않은 그 기억들을 내 마음 깊은 곳에 모두 쏟아부어주었다. 따듯함이 가득하도록.


나는 스쿠터의 헬멧을 쓰는 대신, 멍하니 조금 전의 그 아이와의 통화 내용을 다시 상기하며 되새겼다. 그러면서 3년 전의 그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 아이의 표정을 상상했다. 오늘은 그 아이가 무척 보고 싶었다.





완성되지 못한 사랑이라도 그 감정은 눈부시게 찬란하다.

그 찬란함을 경험한 것만으로도, 나의 청춘은 후회 없었다.


나의 청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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