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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SNS를 보면 '고백 대참사'라던지 수많은 실패 유형들을 재밌게 보여준다. 이 세상에 소위 말하는 '고백하기 좋은 타이밍'이라는 게 정말 있을까? 그들이 말하는 대참사의 기준이 과연 타이밍이 잘 못된 것일까?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한국 드라마, 로맨스 영화, 연애소설과 순정만화들을 봐오며 거쳐왔다. 그것들은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우리들을 가르쳤다.
고백은 반드시 로맨틱해야 하며, 철저한 계획 아래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되어야 하고, 이것을 받는 상대방은 항상 감동을 받아야 한다고. 눈물 한 방울 나오면 더욱 좋지.
이에 상응하지 못한 고백은, 상대방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치부해버린다. 사랑이란 두 글자의 특별함을 저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현실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고백들을 봐왔고, 혹은 실행해 오면서, 고백의 타이밍은 다양할 수 있음을 배워왔다.
예를 들면, 즐거운 데이트 후 헤어지기 전 아무렇지 않게 갑자기 "나 너 좋아해." 라던지, 버스 옆자리에 우연히 같이 앉아 무심코 "너를 좋아해"라고 작게 말을 하거나, 밥을 먹다 고기를 씹으며 "좋아해"라고 툭 던지거나, 사람 많은 길거리에서 "너를 좋아해"라고 소리치거나 등등.
열 명의 사람이 있으면 열 가지 사랑이 있고, 백명의 사람이 있으면 백 가지 사랑이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방법도 각각 있는 법이고, 고백을 하는 방법도 타이밍도 각각 존재한다는 것이다.
가지각색의 방법을 누가 일반화시켜 조언을 해 줄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한 가지 일반화시킬 수 있는 문제가 존재한다. 만약 상대방이 이미 그 사람을 백 퍼센트 좋아하고 있다면, 고백의 방법과 타이밍이 중요할까?
고백은 그저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하는 수단일 뿐, 사랑의 본질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서로가 좋아하고 있다면 고백을 해서 성공할 확률은 99% 라 확신한다. 나머지 1%의 실패는 그 순간, 심한 냄새가 나거나 보기 흉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상대방의 마음을 정확히 안다면, 그냥 무작정 찾아가서 좋아한다고 고백을 해버리면 되는 것이 아닌가? 어차피 고백의 방식은 그저 표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니. 고백의 방법은 결과를 바꿀 수 있는 본질 적인 것이 아니니.
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고백의 시기를 심사숙고하는 그 마음이, 어떻게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진지하게 전할지 고민하는 그 마음이, 그리고 마침내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되는 그 순간의 행복감이, 그리고 인생의 기억 속에 가장 인상 깊이 남을 그 순간이, 그것을 위해, 나를 위해, 상대방을 위해, 우리를 위해.
얼마나 간절했고 소중한 마음인가.
나는 줄곧 꿈꾸던 고백의 타이밍을 매번 놓치고, 그 아이와 이도 저도 아닌 그냥 친한 친구사이로 애매한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연락은 자주 했으며, 일주일에 서너 번 밤마다 즐거운 통화를 했다. 달에 한 번은 만나 밥을 같이 먹거나 커피를 마셨으며, 때로는 다른 지역으로 놀러 갔다. 나의 휴대폰 사진첩에는 그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 쌓여만 갔다.
그리고 나는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나는 문득 오토바이를 타고 뒤에는 그 아이를 태워, 아무도 없는 고즈넉한 작은 길을 달리며 고백을 해야겠다는 상상을 했다. 현실은 오토바이가 아닌, 스쿠터를 선택했지만 그때 나는 이 생각에 몰두되어 다른 것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그마한 중고 스쿠터를 구입했고, 근사한 헬멧도 구입했다. 나는 신이 나서 사진을 찍으려 휴대폰을 들었고, 운 좋게 그 아이의 메시지가 보였다.
"바빠?" 나는 메시지를 보냈다.
"응 조금, 과제하는 중이야. 왜 아직 안자?"
"오늘 같은 날 잠이 올리가 없지, 이번 주 주말에 뭐해? 근사한 거 보여줄게."
"음, 별일 없을 거 같아. 좋아!"
내 주위는 반짝이는 빛이 휘감고 있었으며, 그것을 모두 가지고 그 아이를 만나러 갈 것었다.
하지만 순탄하지 못했으니, 하루 전 스쿠터를 타다 사고가 나버렸다.
공사현장 옆을 지나가다가 방향을 틀다가 스쿠터가 미끄러지면서 넘어졌다. 바닥에 널린 모래 때문에 스쿠터 바퀴가 미끄러졌던 것이다. 나는 넘어지면서 한 팔로만 땅을 짚었던 탓에, 팔에는 금이 갔고 붕대는 피할 수 없게 돼버렸다. 이대로는 계획 실패였다.
당일, 그 아이를 만나고 내 팔에 감겨 있는 붕대를 보자 그 아이는 눈이 동그래져 쉴 틈 없이 무슨 일인지 물었다. 나는 지금껏 일어났던 일을 신나게 들려주었고, 점점 흥분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너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그 아이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생전 느끼지 못한 기운이 느껴졌다.
"무슨 말이야?"
"이렇게 위험한 걸 왜 하는 거야? 무슨 의미가 있는데?" 그 아이는 화를 냈다.
"무슨 의미냐니, 근사하잖아. 이걸 타고 아무도 없는 곳을 거닐고 다닌다는 게. 그리고..." 나는 말문이 막혔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도로도 아니고, 위험한 길로 굳이? 그리고 아직 운전도 못하는 초보 아니야? 뭐가 그렇게 근사하다는 건지 나는 모르겠는데. 도대체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니?" 그 아이는 점점 더 크게 화냈다. 꼭 선생님과 같은 말투로.
"뭐?" 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
"이게 너에게 다치게만 하고 도대체 너에게 뭘 주는 건데? 이 정도가 다행이라고는 생각 안 해봤어?" 그 아이는 따져 물었다.
"꼭 나에게 무얼 줘야만 해야 해?" 나의 계획은 갈기갈기 찢겼다. 나의 마음도 산산조각 나 버렸다.
"적어도 위험하다는 건 알아야 하지 않아? 만약 다른 사람을 같이 다치게 했다면?"
나는 그 아이의 말을 들을수록 가슴이 답답하게 쌓여갔고, 점점 슬픔이 밀려왔다. 나는 그것을 삼키고 싶지도 않았고, 참지 않았다.
"너는 너랑 같이 멋진 경험을 만드려고 한 거야. 그냥 나랑 같이 기뻐해 주고 슬퍼해주면 안 되는 거야?" 화를 냈다.
잠시 침묵이 대신했다.
"계속 이거 탈 거야?" 그 아이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안 할 이유가 없잖아? 다음엔 절대 넘어지지 않을 거라고!" 나는 아직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여전해." 그 아이도 화를 냈다.
"나한테는 중요한 일인데, 왜 이해를 못 해주는 거야? 나를 가장 잘 알고 이해해 주는 사람인데 그것도 몰라줘?" 나는 깊은숨을 마시고, 다시 목소리를 낮추었다.
"중요한 일이 너를 다치게 하고, 위험하게 하는 일이야?"
나는 이 말에 대답을 할 수 없었으며, 내 마음을 몰라주는 그 아이의 말들이 나를 날카롭게 찔러왔다.
나는 처음 느껴보는, 날카로운 것으로 가슴을 찔러대는 이 느낌에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슬프네" 눈물이 났다. 더 이상 화를 낼 수도, 그 아이를 바라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곧이어 아픔 대신 찾아온 것은, 이해받지 못했다는 상심이 나를 덮쳤다.
"이제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앞으로 나아갈지 모르겠어" 나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 해야 너를 더 좋아할지, 너에게 인정받을지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파."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과, 덜덜 떨리는 목소리, 나는 그날 가장 커다란 결심을 했다.
먼저 등을 돌려 그곳을 빠져나왔다.
너를 포기한 내 뒷모습을 바라보았던 너의 눈망울에서도 슬픔이 쏟아져 내렸을까? 너의 그 모습이 어떤지 나는 영원히 볼 수 없었지. 고등학교 시절 나의 여전한 그 마음이 너를 이렇게 오랫동안 좋아할 수 있었는데.
나의 이 여전함이, 결국 너에게는 아무 의미 없었던 것이었다니.
너를 좋아하던 하루하루의 시간들, 그것들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하였고 움직이게 해 주었다. 매일 학교를 나가야 하는 의미를 주었고, 공부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주었다. 그 시간들이 나를 기쁘게 했다.
나의 세상에는 오롯이 너라는 사람만 있었다. 가장 소중한 존재를 마음속에 품고 살아왔다.
오늘은 나와 그 아이의 사이에 존재하는 성격 차이를 느꼈다. 처음 만난 고등학교 때도 뚜렷하게 존재하였고, 알고 있었지만 이것을 그저 낭만으로 치부해버리고 외면해왔다.
오늘의 일은 뜻밖의 사건이 아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도 마찬가지지만, 결국 이렇게 될 운명이었을 뿐.
내 고백에 대한 그 아이의 대답을 듣지 않았던 것, 고백의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 그 아이와 맞지 않은 고백의 방법을 확신에 차서 선택하였던 것들 때문에 가장 소중한 사람과 갈림길 위에 서게 되었다.
그렇게 싸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대학에서 여자 친구를 만들었다. 당당하게 그 아이에게 보란 듯이.
그리고 그 아이도 남자 친구를 사귀었다.
하지만 나와 그 아이가 여기까지 오게 한 마음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친구보다 특별하고, 연인보다 충실했던 그 감정이 우리 사이에 있었다.
나의 세상은 깨져버렸지만, 깨진 틈 사이로는 가느다란 빛이 들어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