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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릉 Mar 17. 2024

가제 : 뫼비우스의 띠

3

"무슨 혼잣말을 그렇게 중얼거려?" 

"내가?" 

나는 옆을 돌아보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는 오랜 친구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주안'이다.

"그럼 너지 내가 누굴 보고 그러겠냐, 그나저나 오늘 알지? 어제 잃은 거 복수하겠어"

"어디 한번 해봐"

최근에는 학교에서 화투패를 가지고 하는 게임이 유행했고 나 또한 화투패를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면서 수업시간마다 뒷자리 옆자리 가리지 않고 화투패를 돌렸다.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화투 패로 치냐? 돈으로 치지." 내 앞의 자리의 친구가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내 목소리가 조금 컸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굽혔던 허리는 그래도 두고 고개만 올려 칠판을 바라봤을 때는 이미 늦었다.

"너네 다 나와" 선생님의 딱딱한 목소리는 등의 식은땀을 흐르게 했다.

왼손에 들고 있는 화투패를 한 손으로 숨기기에는 나의 손이 너무나도 작았다. 어떻게든 숨겨보려던 나의 노력은 새하얀 교실 바닥이 붉게 물들었음을 보았을 때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새 선생님은 가까이와 바닥에 뿌려진 화투패를 하나씩 줍고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눈을 감았다. 그 닫힌 눈꺼풀 아래 나를 처벌할 오만가지 생각이 들고 있을 터였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대폭발을 기다리는 듯 누구 하나의 숨소리 없이 고요했다. 나는 이때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히는 게 무슨 느낌인지 느꼈다.

"점심시간에 교무실로 와" 선생님은 눈을 떴다.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선생님의 표정은 매우 온화했다.


평소라면 몸에 돌덩이를 매달은 것 마냥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시곗바늘이었지만, 오늘은 날개라도 단것 마냥 12시 정상을 향해 날아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12시가 왔다.


수업시간에 화투패를 가지고 놀았던 것이 그렇게 잘못했던 것일까, 살면서 그렇게 선생님이 화를 내는걸 처음 봤다. 다행히 아버지에게는 말을 하지 않는 대신 여름방학 전까지 남아서 청소를 하기로 했다.

교무실을 나오니 점심시간이 거의 끝이 나고 있었다. 그제야 나의 배는 음식물을 넣어달라고 소리를 내고 있었다. 혼자 급식실로 들어가 밥을 먹으며 잘못을 했다는 뉘우침보다는, 그때 화투패를 숨기지 못한 억울함이 밀려왔다.

"그것만 주머니에 넣었어도..." 고기완자를 씹으면서 그때 그 장면을 고기완자와 함께 곱씹어 삼켰다.

 

혼자 밥을 늦게나마 먹고 교실로 들어갔다. 다른 과목 수업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담임 선생님도 나의 소식을 들었는지, 담임선생님이 교탁 앞에 서있었다. 나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조용히 자리에 들어가 앉았다. 하지만 이건 나를 위한 스포트라이트가 아니었으니, 고개를 들어 보니 담임선생님 옆에는 더운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카디건을 걸치고, 자기 체구보다 조금 큰 가방을 메고 있는 여학생이 있었다.


"오늘 새로 온 학생이니 잘 지내도록 하고, 자리는 저기로 앉아라"

선생님은 손으로 내 옆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 옆에 있어야 할 주안이 없다는 것을 이제 알아차렸다. 아마 오전의 사건으로 주안은 저 멀리 나와 격리되었다. 대신 나의 옆은 뜨거운 해를 담고 있는 커다란 창문과 처음 보는 여학생이 차지했다. 

"하아..."

나는 미간을 모으고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의 수업시간에 보냈던 행복을 다시 찾을 수 없다는 절망감과 앞으로 남은 청소를 할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선생님의 다음 한마디에 내 머릿속은 굴욕감으로 하얗게 비워졌다.


"저 애가 공부를 방해하면 언제든지 말하렴"

나의 얼굴은 여드름 때문인지, 여학생에 대한 창피함 때문인지 그날따라 더욱 붉게 보였다.

기분 좋은 달콤한 냄새가 내 코안으로 밀려 들어와 뇌를 마비시킨다. 그 여학생의 카디건이 풍기는 냄새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익숙하고, 머릿속에서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가득 채웠다.


나의 단짝이었던 화투패 없이 수업을 들은 소감은?

지루하다. 오늘의 스포츠뉴스를 기다리며 시답지 않은 정치 이야기가 난무하는 9시 뉴스를 보는 것만큼. 그리고 매주 수요일마다 찾아오는 근현대사 시간은 정말이지 옆에 있는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다.

나의 학업 성적은 수학을 빼고는 머리가 빠질 정도로 정말 엉망이다. 언어 지문을 읽고 있자니 두줄만 읽어도 뒤에 읽었던 말이 무슨 말인지 기억이 안 나고, 당연하게도 영어 지문은 읽히겠는가. 이 정도만 말해도 다른 과목은 얼마나 처참한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래서 아까 그 질문으로 돌아가서, 화투패가 없이 수업을 들은 소감은? 아니 그 여학생 옆에서 수업을 들은 소감은?

고통스럽다. 난처하고 곤란하고 매우 불편하다.

나는 내 옆의 여학생을 힐끗 보고 주안이 있는 자리로 시선을 옮겼다. 주안 역시 수업시간에 가만히 수업을 듣는 것이 어지간히 힘든가 보다. 역시나 오래 지낸 단짝 친구여 서일까 주한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눈을 마주친 나와 주안은 미소를 교환했다. 서로의 그 웃음만 봐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을사조약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의미를 말해볼래?"

주안과의 의미심장한 미소를 교환하고 있을 그때, 내게 선생님이 질문을 했다. 애석하게 나는 그 질문을 듣지 못하고 천진난만하게 주안의 얼굴을 보며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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