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여개의 간헐천으로 유명한 옐로스톤 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에서의 에피소드다. 트레일을 걷다가 공중 화장실을 다녀온 우리 아이가 말했다. “우리는 밥상머리 교육인데 미국인들은 화장실 교육이네.”라며 미국인 아빠와 아들의 대화를 들려주었다. 손을 씻은 아이가 핸드타월 세 장을 뜯어서 손을 닦으니까 이를 본 아버지가 “마이클, 아빠 손과 네 손을 대보자.”라고 말했고 영문을 모르는 아들이 아빠 손에 자신의 손을 마주 댔다. 그때 “아빠 손은 네 손보다 훨씬 큰 데도 한 장으로 충분히 닦는데 넌 왜 세 장이나 쓰는지 궁금하구나.”라고 물었다. 그제야 아빠의 행동을 이해한 아들이 “미안해요, 제가 다른 사람 생각을 못 했네요.”라고 하자 아빠는 “특히나 국립공원엔 관광객들이 많이 오니까 너처럼 마구 쓰다 보면 정작 필요한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서 못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티슈 한 장이라도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사용했으면 해서.”라고 아빠가 말하자 아들은 하이파이브로 답하면서 기분 좋게 나섰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도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트레일을 걷는 내내 배려를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주 짧은 시간의 장면이지만 이를 통해 여행자는 그 나라의 문화를 알게 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것도 여행이 주는 선물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뜨거운 온천수를 분수처럼 하늘로 쏘아 올리는 올드 페이스풀 가이저(Old Faithful Geyser)와 각양각색의 간헐천들 그리고 그 간헐천이 야외 찜질방인 듯 오수를 즐기는 바이슨(아메리카들소)들의 모습만큼이나 그 에피소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요즘 마스크나 손소독제 사재기에 대한 기사를 보다가 문득 그때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미국인 아빠가 말한 ‘배려’가 우리와 같은 동양에서는 ‘자비’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가족이 우선이지만 나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 이를 떠올리며 양보하고, 거기에 위로의 마음을 얹어서 보낸다면 그것이 바로 자비를 실천하는 삶이라 생각한다. 손님은 없고 텔레비전 속보가 가게를 지키는 이모네 식당에서 뜨끈한 순두부찌개를 먹어주는 직장인, 오랜만에 재래시장에 들러서 어깨가 축 처진 할머니 앞에 놓인 싱싱한 봄나물을 사서 지친 가족을 위해 건강식을 준비하는 주부, 코로나19로 고생하는 의료진들에게 응원의 손 편지를 보내는 아이들과 그분들에게 정성껏 싼 도시락을 보내는 야시장 상인들, 마스크를 사기 위해 선 줄에서 뒤에 온 할아버지에게 기꺼이 순서를 양보하는 청소년들까지. 이들이 만드는 소소한 일상의 한 컷들을 모아보면 모습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 바로 자비로운 마음에서 나온 배려이리라. 마음은 아직 겨울이지만 어쨌든 봄은 오겠지요. 작은 배려가 주는 큰 기쁨을 화사한 꽃으로 피우면서. 그 봄에 대한 배려로 우리 집에도 수국 화분 하나 사다가 천천히 오는 봄을 맞이하고 싶네요. 결국 봄은 올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