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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추억이라 더 아름다운 걸까? – 올레7, 8코스

폭풍의 언덕, 외돌개, 돔배낭길, 약천사, 자리물회

by 깡통로봇 Jul 21. 2022

 2022년 4월 7일 올레 7, 8코스 중간 ( 제주올레여행자센터 – 중문)      


올레 7코스는 많은 사람들이 올레 코스 중 최고라고 꼽는 아름다운 길이다. 그래서 이미 여러 번 걸어본 경험이 있고 그 경험들마다의 좋았던 추억들을 가지고 있긴 한데, 그래서 오히려 처음 걸어본 코스들보다는 신선감은 조금 떨어졌다.      



서귀포 칠십리 공원은 아침 산책과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원이 넓고 모여 운동하기에도 시설이 좋다. 공원을 빠져나오면서 방향을 놓쳤는데 앞선 올레꾼들도 잠시 헤매는 눈치를 보인다. 다시 길을 알려 주는 리본을 찾으니 반가운 마음이 든다.    


  

외돌개로 가기 전에 폭풍의 언덕이라고 불리는 동너븐덕 바위에 앉아 문섬과 범섬 너머의 툭 트인 바다의 시원함을 즐기다 간다. 서귀포 앞바다의 같은 바다를 계속 보며 이어 걷고 있지만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느낌도 감정도 다르다는 게 참 신기한 일이다.      


그 유명한 외돌개를 지나는데 조금 이른 시간이기는 해도 사람들이 거의 보이질 않는다. 코로나로 인해 나타난 현상이리라. 이 멋진 풍경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어 좋은 한편으론 일상생활이 빨리 정상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게 느껴진다.


이어지는 돔배낭길은 걷기가 좋고 풍경도 더할 나위가 없는데 특히 야자수가 이국적 정취를 더해 준다. 길 오른쪽의 야자수와 왼쪽의 소나무의 조합은 이질적인 면이 있으나 어우러짐이 좋다. 주상절리의 기암절벽을 감상하며 걸을 때는 눈 맛이 시원하다. 




속골로 내려가는 길에 길가에 놓고 무인 판매하는 천혜향을 한 봉지 사들고 가는데 공방을 겸한 카페에 라면이라는 종이가 크게 붙어 있다.

어제 오후에 느닷없이 라면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반가운 마음이 들어 아침부터 라면을 시킨다. 시식용 삼각김밥을 곁들여 주시면서 먹고 평을 해 달라고 부탁을 하신다. 먹고 나서 되지도 않는 평을 해드리고 나서 고맙다는 과분한 감사 인사를 받고 간다. 


야자수를 농원처럼 심어 놓은 속골 바닷가 길을 거쳐 올레지기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졌다는 수봉로를 갈 때는 길을 열었던 분들의 노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온다.

하나의 일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숨은 노력이 깃들어 있음을 새삼 고맙게 느끼며, 들길 느낌 물씬 나는 길을 꼭꼭 찍어 음미하듯 걸어간다.  


법환포구는 바닷가 작은 집들 벽에 그려진 벽화가 기억에 남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작고 낮은  집들이 없어지고 번듯번듯한 큰 상가 건물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어 여행객으로서는 여간 아쉬움이 남는 것이 아니다. 


서건도를 못 미쳐 앉아 쉬기 딱 좋은 작은 해변에 짐을 풀고 앉아 바닷물에 발을 담가본다.

기분 좋을 만큼의 살짝 차가운 느낌에 발의 피로가 싹 풀려나가고, 작은 해변을 혼자 차지하고 앉아 발을 담그고 있으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      



바닷가 거친 돌길을 다듬어 만들어진 강정의 바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앞으로 커다란 항구 방파제가 보인다.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라고 이름 붙여진 제주 해군기지이다. 지역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극한적 갈등을 만들어 마을을 초토화시켜 버린 문제의 장소이다. 

지금도 그 아픔이 치유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듯이 해군기지 정문 앞에서는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국가정책사업을 추진할 때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많이 생각게 하는 사업 집행이었는데, 지금도 제주는 제2 공항 문제로 다시금 엄청난 갈등이 예고되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이다.           

4차선 넓은 도로에 비해 교통량이 거의 보이질 않던 해군기지 앞 도로에 이어지는 크루즈터미널도 코로나 여파인지 지나가는 내내 어떤 움직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강정을 지나며 바닷가 옆으로 그늘이 없는 길이 이어진다. 도로 옆으로 풀길이 이어져 있던 곳이었는데, 그 절반을 자전거도로로 만들어 자전거를 타기에 편하고 안전해진 것으로 보였는데 대신에 넓은 풀밭 길을 길게 걸어가는 풍미는 사라졌다. 월평포구를 지나면서도 예전에 걸었던 들길을 기대했으나 어떤 이유에선지 포장된 길로 안내가 되어서 걸으면서 마음이 좀 상했다. 추억 속의 것이 자꾸 더 좋게 생각되는 것이 혹시 나이가 들어가는 현상은 아닌 지 생각해 보며 살짝 쓴웃음을 지어 본다.  

    



올레 8코스를 들어서 얼마 안 지나 약천사라는 절을 만난다. 느닷없이 만나게 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법당에 살짝 당황해서 얼른 검색을 해보니 동양 최대 규모의 법당이라 한다. 규모가 있어서인지 꽤 많은 관광객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최대라는 수식어가 붙는 건축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사람이 많은 곳은 빨리 벗어나고 싶어 절의 규모만 일별하고 지나간다.  


    


늦은 점심으로 뭐를 먹을까 생각하다 회를 먹지는 못하니 회덮밥이나 물회를 먹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식당을 찾는데 횟집들마다 1인용 식사를 하지는 않는다고 해서 몇 군데를 들렀다 나와 결국 대포항까지 와서야 식당을 찾아 들어가 제주 토속 음식이라는 자리물회를 시켜 본다. 오늘 걸을 거리를 거의 다 소화해서 5km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마음에 여유가 생겨 차가운 소주를 한 잔 곁들여 물회를 천천히 음미하며 먹는다.

자리물회는 자리돔으로 만드는 제주의 전통적인 서민 음식이다. 우리가 잘 아는 옥돔이 귀하고 비싼 반면 자리돔은 흔하게 많이 잡히는 생선으로 봄에 특히 맛이 좋다고 한다.  시간이 좀 늦어 배가 고픈 상태라 그런지 맛이 좋은 시기라 그런지 음식이 아주 입맛에 맞게 시원하고 맛이 있다.       


배릿내 오름을 올라 중문의 절경을 보고 내려오는 길은 사람이 없고 흥에 겨운 기운이 있어 노래를 흥얼거리며 내려온다. 예전 직장 동료들 여럿과 같이 걸었던 기억이 떠올랐는데, 친구들과 다니면 항상 무언가 웃을 거리가 생기며 흥겹게 다니기에 그랬던 것 같다.     


중문색달 해수욕장은 사람들이 많다. 사진을 찍고 물에 발을 적시는 사람들도 많지만 서핑을 즐기고, 배우는 사람들도 많다. 올레길을 잠시 벗어나 해수욕장 모래사장을 걷고 위로 올라가는데, 이런, 공사장 한가운데로 들어와 버렸다. 하얏트 호텔 장소를 다른 호텔로 바뀌느라 온통 공사 중인데, 그 가운데를 헤집고 나오느라 애를 먹었다.


여미지 식물원을 지나 미리 예약해둔 게스트하우스엘 도착했는데, 약간 난감한 상황이다. 걷는 거리만 생각하고 평점 좋은 곳을 예약한 것인데, 도착해 보니 젊은이들만 북적이고 특히 젊은 여성 게스트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젊은 남녀들이야 서로 잘 어울려 금방 친해지곤 하는데 이런 자리에 끼어 있으면 처신이 조금 어색해서, 공용 공간에는 가질 않고 밖에 나가 식사를 하고 들어와서는 방에 콕 박혀 오랜만에 책을 꺼내 읽는 시간을 가져보는데, 젊은이들이 게임을 하며 노는 소리가 신나게 들려온다. 오랜만에 나이로 인한 자격지심을 느껴 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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