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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창준 Mar 23. 2023

호버링

  우리가 좀 더 순수하기를 바랐던 때가 있었다. 가장 순수했을 때다. 보이지 않는 곳에 주저흔을 만드는 이유처럼, 기타의 울림통 속에는 아직도 유년 시절의 노래가 새하얀 유치를 드러내며 말라붙어 있다. 변성기는 울음이 낯설어지는 계절, 보여주기 싫었던 사정들만 무성하게 자라는 우기雨期     

  서로를 향해 흐르는 일은 불가능해서 우리는 서로의 뒷모습을 번갈아 보며 자랐다. 들키지 않는 법에 능숙해지면서. 서로 다른 등고선을 지나며 누군가는 평야을 가르고 누군가는 계곡을 만들곤 했지만 오랜 시간을 준비해 내린 비처럼 선량한 마음들은 여전해서, 더 착한 얼굴을 갖고 싶은 날들,      

                              너는 평생 착한 표정으로 살아야 하는 벌을 받은 것 같아.      

  여전히 기타를 잡고 먼저 첫음을 짚어보다가 늘 같은 노래를 시작한다. 같은 노래를 평생 불러야 한다는 형벌, 어떤 표정은 오해를 불러오지만 우리는 다행히 모두 같은 후렴구의 환후患候를 합창했지.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아직 서로에게 아직 닿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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