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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창준 Mar 23. 2023

수성못

이긴 사람들만

이 도시에서 벗어날 수 있어 

이곳에 머무르는 것은 벌이지

그래서 우리의 방언에는

대못을 닮은 억양이 생겨나는 걸까     

수면처럼 낮게 깔려

고만고만한 삶을 사는

정겹게 고여 있는 느낌이야. 

먼 곳으로 갈 수 없는 오리배를 젓는 기분

부표로 만들어진 경계선까지 금세 도달했다가

다시 돌아와 무료하게 맴도는 기분     

서울이 아름다운 건 

우리가 없기 때문일까.

흘러서 닿지 못하는 우리는 

못 아래 켜켜이 쌓여 

침묵하는 바닥처럼 

할 말을 잃어 가며 살게 되겠지. 

못 주위로 무성한 풀들처럼 

이름 없이 모여서 우글거리면서     

아침마다 못 주위로 깔리는 

개 같은, 안개 같은 막막함, 

최소한의 생만 이곳에서 서식할 수 있어. 

나쁘지는 않지만 좋다고도 할 수 없는

노을을 닮은 제육볶음을 두고 

온 가족이 모여드는 둥근 밥상은

침묵에 능한 수성못을 닮아

조금씩 낡아 가는 얼굴들을 닮아 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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