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한 해가 죽고 나는 조금 더 낡았구나.
곧 재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서른 세 명의 얼굴을 떠올리며
사주에 들었다는 외로울 고 자를
차고 검은 창에 입김을 불어 써 볼 것이다.
종소리와 폭죽은
축하일까 위로일까 자위일까, 아님 협박일까.
올 가을에는
오래전 담임을 맡았던 아이가 죽었다.
영어 성적 좀 올리라는 말에
눈물을 쏟던 얼굴이 유난히 희고
큐레이터가 꿈이었던
눈동자가 새까만 아이였다.
너는 늙어가는 대신
죽음으로 어리고 서툰 조문객들에게
짧았던 삶을 해설하는구나.
이웃들의 불빛을 내려다 보며
나는 한 잔의 와인을 들고
다행히 살아 있고
많은 죄는 짓지 않았다고
안도해야 하나.
너는 죄짓지 말아라,
수염이 날 때를 기다리며
조금씩 말이 없어지는 아들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말해야 하나.
고마웠던 얼굴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단체문자를 전송하며
선량한 밤을 보내야 하나.
그리고
이제는 덜 새로운 날들을 살아야 한다.
지나온 한 해 동안
너무 많은 장면에 밑줄을 그었구나.
그 사이 새로운 표정과
웃음을 배운 탓에
평판이 조금은 나아졌다.
갈피가 부족해.
마스크를 쓴 홍콩의 밤은
오늘 평화로울까,
이 밤 기계 앞에 선 소년공은 없을까를
생각하는 동안에도
나는 부끄럽게도 안온했다.
가벼워진 달력의 마지막 장을 뜯어내며
시간을 열 두달로, 삼백 육십 오일로
절단한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죽어야 할 자들은 너무 오래 살았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폭죽의 소리가 바깥에서만 들린다.